"죽어도 어쩔 수 없다"…피아니스트의 前남편 납치 사주[그해 오늘]

과거 속이고 결혼 후 외도·재산 문제로 관계 파탄
은밀 사생활 들통나자…심부름센터에 "혼내 달라"
"퍽치기 어떠냐" 계획도 마련…前남편, 결국 살해돼
檢, 살인 아닌 강도치사 적용…법원, 檢판단에 의문
  • 등록 2022-12-02 오전 12:03:00

    수정 2022-12-02 오후 1:47:39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2014년 12월 2일. 수원지방법원에서 강도살인 일당 3명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이들은 여성 이모씨(당시 41세)의 의뢰를 받아 이씨 전 남편 채모씨(사망 당시 40세)를 납치해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 오케스트라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던 피아니스트 이씨는 도대체 왜 공연예술가였던 전 남편에 대한 납치를 사주했던 걸까?
공연예술가 남편에 대한 납치·강도 등을 사주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13년형이 확정된 피아니스트 이모씨.
사건의 시작은 잘못된 결혼이었다. 과거 외국에서 결혼해 초등학생 자녀까지 뒀던 이씨는 이를 숨긴 채 한 살 어린 채씨에게 접근해 2010년 10월 결혼식을 올렸다. 채씨가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경제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끈질긴 구애를 보낸 결과였다.

채씨는 결혼 선물로 서울 서초동에 자신의 명의로 프랜차이즈 카페를 차려줄 만큼 이씨를 진심으로 다했다. 하지만 외국에 있는 자녀 양육비로 매달 수백만원을 송금해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았던 이씨는 결혼 직후부터 이 카페 자금에 몰래 손을 대기 시작했다.

결혼생활은 결국 불과 4개월 만에 파탄났다. 이씨는 결혼 초기부터 집에 들어오지 않는 일이 잦아졌다. 그 기간 동안 이씨는 다른 남자들과 만나 외도를 하며 임신·낙태까지 했다. 낙태 후에는 채씨의 아이를 유산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채씨가 다른 남성이 함께 있는 이씨 모습을 발견하며 감춰졌던 이씨의 이중생활 실체가 드러났다. 이씨와 함께 있던 내연 남성은 따지는 채씨에게 오히려 “내가 남편인데 당신이야말로 누구냐”고 화를 냈다. 실제 해당 남성은 집안에 이씨를 결혼할 사람이라고 소개까지 한 상태였다. 그렇게 채씨는 뒤늦게 이씨가 수많은 남자를 만나며 복잡한 사생활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은밀한 사생활 발각되자…위해 가하기로 결심

이씨와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기로 한 채씨는 결혼 전력 등을 속였던 것 등을 포함해 이씨에게 거짓말, 외도, 자금유용 등에 대한 피해 보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결국 이씨는 2012년 12월 채씨에게‘사실혼 부당파기 위자료 지급 확인서’를 써줬다. 매달 70만원씩 총 7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위자료로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한편, 자신의 사생활이 채씨에 의해 음악계에 알려질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채씨가 2013년 9월 이씨 가족들에게 “왜 결혼할 때 이씨 과거에 대해 알리지 않았냐”고 따진 것을 알게 됐고, 자신의 사생활이 가족들에게 알려질까 두려워 이씨에게 위해를 가하기로 마음먹었다.

피아니스트 이모씨가 난잡한 사생활이 들통나 남편 채모씨에게 써준 위자료 지급합의서. (사진=JTBC 갈무리)
그는 같은 해 11월 초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심부름센터 직원 A씨를 만났다. 이씨는 A씨에게 “사실혼 배우자였던 채씨에게 겁을 주고 내가 손해 본 만큼 재산을 빼앗아 그걸 심부름 보수로 충당하라”고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퍽치기를 하거나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갖게 한 후 강간으로 고소하는 등으로 채씨를 혼내줄 방법이 있느냐”며 “사람을 때리려면 사람을 가둬야 되지 않는냐”며 구체적 방법까지 제안했다.

A씨는 며칠 후 이씨에게 전화해 “단순 퍽치기는 1000만원, 납치까지 하면 1500만원”이라고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한 후, 승낙을 받았다. 경제적 어려움이 있던 이씨는 이 비용마저도 채씨에게서 빼앗도록 했다. 이를 위해 A씨에게 채씨 재산내역을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A씨가 “착수금을 스스로 충당한 후 피해자로부터 돈을 빼앗아 갖겠다”고 제의하자 이씨는 “빼앗은 돈은 다 가져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명 만들어달라”·“죽어도 어쩔 수 없다”

이씨는 이후 A씨를 만난 자리에서 “채씨를 실명하게 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 A씨는 여기에 “그 정도로 다치게 하려면 죽이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답했다. A씨가 수차례 “채씨를 죽일 수도 있다”고 밝혔고, 이씨는 “그런 상황은 원하지 않지만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고 사실상 이를 용인했다.

이를 계기로 범행은 더 구체화됐다. 이씨는 범행 준비 비용에 쓰라며 A씨에게 200만원가량을 지급했고 A씨는 범행에 동참할 공범들과 범행 도구들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A씨가 구체적 살인계획까지 마련하자, 겁에 질린 A씨 일당 중 일부는 범행 가담을 회피하려 잠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씨는 오히려 A씨 일당이 채씨를 쉽게 유인·납치할 수 있도록 구체적 범행 시나리오까지 제공했다.

A씨 일당은 시나리오에 따라 2014년 1월 4일 채씨를 유인해 자신들의 차량에 태우는 데 성공했다. 채씨가 차량에 탑승한 직후 A씨 등은 흉기를 꺼내 보이며 “여자한테 잘못한 것 있지요?”라고 말한 후 결박했다. 이들은 미리 물색해 놓은 경북 안동의 한 빈집으로 가기 위해 채씨를 태운채 고속도로로 이동했다.

그리고 용인휴게소에서 정차한 사이, 채씨가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차 밖으로 탈출했다. A씨 일당은 곧바로 채씨를 차량에 다시 강제로 태우려 했고, 이 과정에서 채씨의 외침을 들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채씨가 차량에 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저항하자 차량 안에 있던 A씨는 흉기를 꺼내 채씨 하체를 수차례 찔렀다.

흉기에 찔린 채씨는 차량에 강제로 태워졌고 A씨 일당은 차량을 다시 출발시켰다. 다량의 피를 흘리는 채씨가 차에서 살려달라고 호소했지만 A씨 일당은 이를 무시했다. 시민들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곧바로 A씨 일당이 탄 차량 추적에 나섰고 이들은 30여분 만에 강원도 원주 고속도로에서 검거됐다. 경찰이 A씨 일당을 검거했을 당시 채씨는 이미 과다출혈로 사망한 상태였다.

공연감독 채모씨를 살해한 A씨 일당이 2014년 1월 9일 용인휴게소에서 진행된 현장검증에서 범행을 재현하고 있다. (사진=뉴스1)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A씨 일당으로부터 “이씨 사주를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해 곧바로 이씨를 강도살인 공범으로 체포했다. 하지만 이씨는 “A씨에게 제가 의뢰한 것을 숨기고 그저 ‘여자를 괴롭히지 말라’고 겁만 주라고 했다”며 “강도 범행을 공모하지도 않았고 사망을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A씨 일당을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하는 한편, 이씨에 대해선 살인 공모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강도살인이 아닌 강도치사 혐의만을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아내 “죽일줄 몰랐다”→공범 “모두 알렸다”

이씨는 법정에서도 수사기관에서와 같이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사람을 죽여달라고 심부름센터에 의뢰를 했겠나. 200만원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겁을 주는 게 최대한이라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범인 A씨가 법정에서 “이씨에게 세세한 얘기까지 다 했다. 이씨가 납치를 주장했고 구체적 납치 계획까지 알려줬다. 연장을 챙기는 얘기까지 이씨에게 전했다”고 증언하며 이씨 주장을 직접 반박했다.

1심은 “이씨가 피해자에게 원한을 품고 심부름센터에 연락해 강하게 폭행·협박하고 금품을 강취해 달라는 의뢰를 한 후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고, 결국 피해자는 A씨 일당에게 무참히 살해됐다”며 이씨의 강도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겐 징역 25년, 범행에 동참한 일당 2명에겐 각각 징역 13년과 10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는 “강도 범행을 공모하지 않았고 채씨 사망도 전혀 예견할 수 없었다”고 재차 주장했다.

하지만 2심은 “객관적으로 범행이 인정되는 상황에서도 이를 극구 부인하며 죄를 뉘우치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며 “”피해자 사망에 가장 근원적 책임을 져야 할 이씨에 대한 1심 형이 너무 가볍다“며 징역 13년으로 형을 올렸다. A씨 등의 항소는 모두 기각했다.

특히 2심은 이씨에 대해 강도살인이 아닌 강도치사를 적용해 기소한 검찰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2심은 ”여러 의심스러운 정황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죽음을 용인했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공범들과 달리 강도치사죄로 기소됐다“고 지적한 것. 이씨와 A씨가 모두 상고했지만 대법원에서 기각돼 형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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