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벌써 1000만원 날렸다"…속 타는 태양광 사업자들[르포]

[르포]‘출력제한에 시름’ 제주 태양광발전소 가보니
올해만 20차례 정지에 손해 누적
17억원 투자에 원금 절반도 못 갚아
첫 출력제한 소송…전국 확산 가능성
  • 등록 2023-06-26 오전 5:01:00

    수정 2023-06-26 오전 5:42:19

[제주=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지난 21일 오전 10시 제주공항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달려 도착한 제주시 회천동 제주강산에너지 태양광발전소. 이곳에선 1만㎡ 부지에 750킬로와트(㎾) 규모의 발전설비가 143.4㎾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었다. 비 오는 궂은 날씨 탓에 발전량은 평소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제주강산에너지 태양광발전소 전경. 홍상기 대표는 2016년 이곳 1만㎡ 부지에 총 17억원을 들여 750킬로와트(㎾) 규모의 태양광발전 설비를 갖추고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급증하는 출력제한…속 타는 태양광 사업자들

홍상기 제주강산에너지 대표는 궂은 날씨가 원망스럽겠다고 묻자, 손사래를 치며 “날이 좋으면 더 무섭다”고 말했다. 홍 대표에게 적은 발전량은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햇볕이 좋을 때면 어김없이 한국전력 제주본부로부터 날아오는 출력제한(계통제한) 문자때문에 속앓이를 해야 했다. 출력제한이란 태양광과 풍력 발전량이 많아지는 낮에 송·배전망이 이를 다 수용하지 못해 발전을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목 때마다 영업정지를 당한 셈”이다. 영업정지 횟수는 빠르게 늘었다. 작년엔 17차례에 그쳤으나, 올해는 벌써 20회 이상 영업정지를 당했다. 홍 대표는 “작년 손해액은 600여만원이었는데, 올해는 벌써 1000만원에 육박한다”고 답답해했다.

홍 대표가 노후를 위해 지난 2016년 17억원을 들여 조성한 이곳 발전소는 이제 이들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안에 투자 원금이 회수되고 돈을 벌기 시작해야 하지만, 아직 원금의 절반도 갚지 못했다. 당시 2.7%로 시작한 대출 금리는 7%대까지 오르며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홍 대표는 참다 못해 최근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제주 태양광발전 사업자 12명과 함께 지난 8일 광주지방법원에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전력거래소를 상대로 출력제한 조치를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낸 것이다. 출력제한과 관련한 국내 첫 소송이다.

홍 대표는 “출력제한 피해는 계속 늘어나는데, 정부는 대책 없이 태양광·풍력을 계속 늘리고 있다”며 “출력제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걱정에 속이 타들어간다”고 말했다. 전력 계통의 안정성 확보를 최우선시하는 전력당국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아니다. 다만 보상 등에 대한 기준도 없이 이틀에 한 번 꼴로 영업정지를 당하는 상황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홍상기 ㈜제주강산에너지 대표가 본인이 운영하는 태양광발전소에서 한국전력 제주본부가 최근 발송한 계통제한 안내 문자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2016년 이곳 1만㎡ 부지에 총 17억원을 들여 750킬로와트(㎾) 규모의 태양광발전 설비를 갖추고 전기를 생산하고 있는데 최근 계통제한이 급증하며 손실 확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사진=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전국 확산 가능성 커…“대응 마련 시급”

이 같은 출력제한 피해는 일부 개인사업자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실현하겠다는 전 세계적 목표에 따라 태양광·풍력을 비롯한 신·재생 발전 비중을 늘려야 한다. 전임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을 180도 뒤집은 윤석열 정부조차도 2036년까지 신·재생 발전 비중을 30% 이상 높이기로 했다. 현재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전체 전력의 9.3% 수준인 걸 감안하면 3배 이상 확대한다는 의미다. 이같은 목표를 달성하려면 현재 24.2기가와트(GW, 6월 기준)인 태양광·풍력 발전설비를 2036년까지 99.8GW로 4배 이상 늘려야 한다.

이와 맞물려 신·재생 출력제한도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규모 저장이 힘든 상황에서 계통 안정을 유지하려면 공급량과 수요량을 실시간으로 맞춰야 하는데, 태양광·풍력의 경우 인위적으로 생산량을 조절할 수 없어 계통 연결을 차단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전력 공급과잉을 방치하면 대규모 정전, 이른바 블랙아웃 발생 가능성도 있다.

전력거래소는 최근 2036년 신·재생 출력제어량이 연 8.8테라와트시(TWh)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작년 출력제어량 추산치가 30기가와트시(GWh)였던 걸 감안하면 약 300배 규모다. 올 들어 89차례 이뤄진 출력제한에 따른 신·재생 발전 사업자의 손실은 약 50억원으로 추된다. 전문가들은 10년 후엔 출력제한 피해액이 조 단위로 불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제주가 신·재생 비중이 높아 문제가 불거졌지만, 점차 내륙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지난해 처음으로 호남 지역에서 3차례의 신·재생 계통제한이 발생한 데 이어, 올해도 4월30일과 5월1일 두 차례에 걸쳐 내륙에서도 출력제한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국은 통상 연 2회이던 내륙 지역 원자력발전소(원전)의 감발(출력감소) 횟수를 7차례로 늘려 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정부는 앞서 10차 송·변전설비계획을 세우며 설비 투자에 56조5150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2년 전 발표한 9차 계획(29조3170억원)과 비교해 두 배 남짓 늘린 규모다. 특히 출력제한 문제가 심각한 제주도에 오는 2026년까지 총 160㎿ 규모의 대용량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BESS) 설치하고, 연내 제주와 내륙을 잇는 세 번째 초고압 직류 송전선로(HVDC)를 가동할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송배전 사업의 실행 주체인 한전이 지난 2년간 45조원의 누적적자를 기록하는 등 사상 최악의 재정난에 빠져 있는데다, 사업자에 대한 보상을 비롯한 당국 계통제한 규정이 미비하다는 점에서 발전사업자들의 우려는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갈 길 바쁜 신·재생에너지 산업이 위축하거나, 수급 불균형에 따른 전력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정부의 발 빠른 대책을 강조하고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신·재생 확대는 RE100(사용 전력 100% 신재생에너지로 조달)‘ 등에 대응한 전 세계적 추세인 만큼 출력제한 문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송·배전망 확충과 함께 전력 수요가 많은 수도권 중심의 신·재생 확대, 전력 다소비 사업장의 지방 이전 등 정책을 병행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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