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원태연 “멋 안 냈다…독자여, 같이 늙읍시다”

너에게 전화가 왔다|124쪽|은행나무
20년 만에 신작 시집 펴내
사랑·이별의 감정 담은 시 85편
달달한 시어로 90년대 신드롬
원태연표 말랑한 감성, 솔직함 여전
그 시절 청춘 공감했다면 절반 성공
  • 등록 2022-11-30 오전 3:10:00

    수정 2022-11-30 오전 7:21:10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1990년대 감성 연애시의 원조 원태연(51)의 시를 수식하는 말은 “솔직함과 대중성”이다. 마치 내 이야기 같은 절실함이 담겨 있는 그의 시어는 ‘날것의 감성’과 ‘공감’이 특징처럼 따라붙는다. 원태연의 시에는 우리가 사랑하며 겪는 모든 감정들이 거짓 하나 없이 민낯 그대로 담겨 있다.

‘감성시인’ 원태연이 신작 시집을 들고 독자 곁으로 돌아왔다. 2002년 ‘안녕’ 이후 20년 만에 시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써낸 시집 ‘너에게 전화가 왔다’(은행나무)는 1990년대를 지나온 청춘이라면 모를 수 없는 원태연표 감성을 오롯이 펼쳐놓는다. 25일 서울 서초동 자택 겸 작업실에서 만난 원 시인은 “이번 시집을 쓰는 동안 1990년대 내 시집을 읽어준 독자들이 시집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불안한 마음이 컸다”면서도 “데뷔 후 30년 동안 줄곧 나를 기다려준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

20년만에 신작 시집으로 돌아온 원태연 시인은 “1992년 첫 시집을 낸 이후 30년의 긴 세월 동안 여전히 내 시를 기다려준 독자들에게 고맙다.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사진=은행나무출판사 제공).
원 시인은 스물두 살에 낸 첫 시집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1992)가 150만 부 이상 판매되며 출간과 동시에 스타 시인이 됐다. 이어 ‘손끝으로 원을 그려봐 니가 그릴 수 있는 한 크게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1993) 등 출간 시집마다 연이은 흥행으로 업계 추산 총 600만부 이상 팔리며 국내 시집 판매 1위의 주인공이 됐다.

정작 그이 손에 들어온 인세는 전무했다. 인세는커녕 출판사에서 일해주는 대가로 첫 책을 낼 정도로 시심(詩心) 가득했던 시절이었다고 기억한다. 이후 작사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연예기획사 프로듀서로 변신해 활동하다 2020년 11월말 전작시 70편과 신작시 30편을 묶어 다시 시인으로 복귀했다. 가장 많이 읽힌 시를 썼음에도 문단계에선 시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문단계 이단아, 비주류 취급을 받았다.

그는 이번 신작 시집을 쓴 13개월28일이라는 기간에 자신의 작업실에서 처박혀 지냈다고 했다. 2층 복층 구조의 2평 정도 되는 작은 작업실에서 밤을 새워가며 시를 쓰고, 또 고쳐 썼다. 시 ‘사계’는 7개월, 단 한 문장으로 이뤄진 시 ‘버퍼링’(“끊어진다// 마음/ 이”)을 고쳐 쓰는 데만 9개월 걸렸다는 게 원 시인의 고백이다.

“시 ‘사계’는 무려 87개의 버전이 있어요. 시집의 기준이 되는 시를 써야 하는데 감을 잡는 데만 한참이 걸렸습니다. 나중에는 시들이 나한테 욕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날 17개의 시만 남기고 써왔던 시 전부를 버렸어요.”

이를 일컬어 “시한테 많이 혼이 났다”고 표현한 시인은 “전 세대를 아우르고자 했던 예전의 나는 교만했다는 걸 알았다. 멋은 안 냈다. 기다려준 독자들이 한 페이지도 허투루 읽게 하지 않게끔 쓰자는 게 나의 다짐이었다. 독자들의 1990년대를 소환해냈다면 일단 절반의 성공이지 않을까”라고 웃었다.

이번 시집은 사랑과 이별을 통과하며 겪는 슬픔과 기쁨, 그 과정에서 성숙해가는 마음을 담아낸 시 85편을 실었다. 시인 특유의 말랑한 감성과 군더더기 없는 솔직함, 섬세한 시어는 여전하다. 총 8장으로 구성된 시집은 상대에게 자신을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화가 옵니다/ 당신입니다/ 겁도 없습니다/ 받기라도 하면 어쩌려고”(표제시), “나는/ 머물기/ 좋은 장소입니까”(‘너에게 나를 묻는다’)라며 ‘나’는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너에게 좋은 존재인지를 고민한다.

30년이란 세월이 흘러간 지금까지 시인은 어떻게 매번 감정에 ‘날것’일 수 있을까. 또 왜 많은 대중에게 읽힐까. “업계에서는 반전과 공감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정말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겸손도 상처도 아니에요. 열일곱살에 버스를 탔는데 나만 빼고 전부 다 행복해 보이는 거예요. 공부도 못했고 할 줄 아는 게 없었어요. 정말 바닥이었어요. 그냥 시를 쓰는 건 재밌었어요. 오늘의 나는 볼품 없지만, 어쨌든 시는 오늘 내가 쓸 수 있는 것, 마무리할 수 있는 거였어요.”

다시 돌아온 그의 바람은 독자들과 함께 늙어가는 것이다. 원 시인은 “대학에 들어가려고 사격을 열심히 했던 적은 있지만, 이렇게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면서 “작업실 의자에 앉아 있는 내가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독자들에게는 “나랑 함께 늙어갑시다. 재미있게 해드리겠습니다”라고 전하며 “하하” 웃었다.

원 시인은 “내 식으로 풀어쓴 단어의 뜻을 모은 ‘사전’ 쓰기에 몰두 중”이라며 “이를테면 ‘감성’의 경우 국어사전을 보면 ‘자극이나 자극의 변화를 느끼는 성질’이라고 써 있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어감적으로 ‘말랑말랑 촉촉’한 의미를 담고 있다. 원태연식으로 표현하고 예문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작사 관련 에세이도 쓰고 있다고 했다.

시집 차기작과 관련해서 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시집을 내면서 시인이 왜 요절하는지 알겠더라고요. 시집을 또 낼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아휴, 시집 나온 지 얼마 안됐잖아요. 두고봐 주세요. 시나리오 작가나 영화 일에 대해 흔들리는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하하.”

20년만에 신작 시집으로 돌아온 원태연 시인은 “1992년 첫 시집을 낸 이후 30년의 긴 세월 동안 여전히 내 시를 기다려준 독자들에게 고맙다.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했다(사진=은행나무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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