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17일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AI기본법에 대해 조속한 입법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일부 독소조항에 대한 추가 입법이나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 위반에 대한 신고나 민원만으로 정부가 AI 기업의 사업장에 출입해 조사할 수 있다’는 제40조 2항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 조문은 경쟁사가 허위로 신고하거나 단순 민원만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현장 조사가 가능해져 조사권 오남용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나 이데일리 취재 결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해당 조항에 대한 우려에 공감하며, 자체 내규(훈령)를 통해 사실 조사 기준을 명확히 하여 AI 기업들이 불필요한 규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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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나 민원만으로 AI기업 자료 내야 하나
법사위를 통과한 AI기본법에는 정부가 법 위반에 대한 과태료를 부과하기 전에 사실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조문(제40조)이 있다. 그런데 △법 위반 사항을 발견하거나 혐의가 있을 때(1항)뿐 아니라 △법 위반에 대한 신고를 받거나 민원이 접수되었을 때(2항)까지 사실조사가 가능하도록 돼 있어, 단순 신고나 민원만으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속 공무원들이 AI 기업의 사무실에 들어가 장부나 서류, 그 밖의 자료를 조사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AI 기업 관계자는 “경쟁사의 허위 신고나 단순 민원만으로 정부가 사실조사 명목으로 AI 기업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면, 국내에서 AI 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주소지를 해외로 옮기거나 아예 국내에서 영업을 하지 않게 될 우려가 크다”며 “이로 인해 국내 AI 산업에 대한 투자도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심지어 검찰의 압수수색은 법적으로 영장 제시와 사전 통지 등의 절차가 규정돼 있지만, AI기본법에는 조사 대상의 권리 보호를 위한 조항이 전혀 없다. 즉, 조사계획 통보나 관계인 입회, 조사 증표 지참 등의 규정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과기부, 훈령에서 조건 구체화할 것…증거자료·기관 소명 등 담길 듯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단순 신고나 민원만으로 AI 기업의 장부를 들여다보는 것은 문제라고 보고 있다. 과기부는 법사위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 이 같은 입장을 전달하며 해당 조문의 삭제를 추진했으나, 독소조항이 그대로 통과된 상황이다.
이에 따라 과기부는 훈령(내규)을 통해 사실조사 조건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내규에는 신고 시 충분한 증거자료를 확보하고, 기관의 소명을 받아오는 등의 조건을 명시할 예정이다.
과기정통부 고위 관계자는 “AI기본법 위반에 대한 허위 신고가 늘어나면 AI 산업 진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행정력도 낭비된다”며, “사실조사는 의무사항이 아니고 기업이 거부해도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지만, AI 기업들의 우려를 반영해 훈령에서 사실조사의 조건을 구체화하겠다”고 밝혔다.
AI기본법이 연내 국회를 통과하면 2020년 7월 첫 법안 발의 이후 4년 만에 성사되는 것이다. 통과된 법안에는 최대 3000만원의 과태료 부과 조문이 포함됐다. ① 이용자 수와 매출액 등 일정 기준을 초과하는 오픈AI, MS, 구글 등 빅테크 기업들의 대리인 지정 의무 미이행, ② 정부의 시정 명령 위반, ③ 생성형 인공지능 이용자 고지 위반 등을 구체화해 예측 가능성을 높였다.
또한, 이날 법사위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간의 합의를 깨고, 문체부 국장이 AI기본법에 ‘생성형 AI 학습 데이터 공개 의무’ 규제를 신설해 달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상임 과기정통부 장관은 “문체부가 의견을 철회했다”고 언급했으나, 정향미 문체부 저작권 국장은 현장에서 조문 추가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위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유 장관은 “문체부 장관님과 여러 차례 소통을 했고, 오전에 (한덕수) 권한대행님께서 정리하셔서 문체부 이견이 해소됐다고 통지받았는데, 국장님이 위계를 맞추지 않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김현 과방위 법안심사소위원장도 나서 “모든 사항을 다 담아내면 기본법 제정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일단 기본법 제정부터 하고 그 이후 제기되는 문제들은 후속법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 회의의 입장”이라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