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모의실험 해보니 "통신 끊겨 신용카드 안 되도 CBDC는 사용 가능"

1월 모의실험 1단계 결과 발표 후 2단계 결과 발표
그라운드엑스 등 참여해 39.1억원 소요
"피크타임 때 거래처리 시간 지연은 문제"
한은 "CBDC도입 결정하지 않아…기술 연구에 목적"
  • 등록 2022-11-07 오후 12:00:00

    수정 2022-11-07 오후 12:00:00

[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의 기술적 구현을 위해 모의실험 2단계를 진행한 결과 통신사 전산망이 고장나서 신용카드 결제 등이 불가한 상황에서도 CBDC 거래는 가능하다고 밝혔다. 다만 거래건수가 누적될수록 거래처리 지연이 나타나는 등 성능 개선은 필요하다는 평가했다.

한은이 올 1월 1단계 모의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2단계까지 결과를 내놨지만 CBDC 도입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단지 기술적 구현 연구 목적의 실험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출처: 한국은행)


오프라인 거래·NFT매매·국가간 송금 가능

한은은 7일 발표한 ‘CBDC 모의실험 연구사업 2단계 결과 및 향후 계획’에 따르면 한은은 작년 8월부터 10개월간 CBDC 모의실험 연구를 진행했다. 1단계(작년 8월~12월)에선 CBDC 제조·발행·유통 등의 기본 기능을 실험했고 2단계(작년 12월~올 6월)에선 오프라인 거래, 디지털 자산 거래, 정책 지원 업무 등 확장 기능을 실험했다. 그라운드엑스를 주사업자로 총 12개 업체와 협업해 이더리움 오픈소스 기반의 허가용 분산원장 네크워크를 구성해 모의실험을 진행했고 총 사업비 39억1000만원이 소요됐다.

(출처: 한국은행)
2단계 모의실험 결과 통신사 장애, 재해 등으로 신용카드 등 민간의 지급결제 서비스를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CBDC를 실물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는 지를 점검했는데 성공적으로 평가됐다. 스마트폰, IC카드,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이 모두 인터넷 통신장에 연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거리무선통신(NFC) 등 해당 기기에 탑재된 자체 통신 기능을 통해 거래가 가능했다. 오프라인 CBDC 거래는 시스템에 자료가 남지 않아 현금 거래처럼 익명성도 보장했다. 불법 자금 거래 유통을 막기 위해 이용자별 보유 한도를 설정한다면 이 역시 개인, 사업자와 구분해 한도 설정 후 거래가 가능했다. IC카드는 실물 신용카드처럼 만들어 충전이 가능하도록 구현할 수도 있었다.

이더리움 등으로 구입할 수 있는 NFT(대체불가 토큰) 미술품 등 디지털 자산도 CBDC로 거래가 가능했다. 디지털 자산을 판매 등록하고, 누군가 구매 요청을 하면 정보 확인 등이 이뤄진 후 CBDC 송금 및 디지털 자산 이전으로 동시에 이뤄진다. 현재 모든 결제는 일일 단위로 은행간 차액결제가 이뤄져야 결제가 완결되나 CBDC에선 거래와 동시에 채권, 채무관계가 사라진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는 이더리움 기반의 원화가 발행되는데 만약 미국에서 달러 기반의 다른 분산원장을 가진 CBDC가 발행될 경우 ‘국가간 송금’에도 문제가 없는 것으로 평가됐다. 한국, 미국이 각각 다른 분산원장을 기반으로 CBDC를 발행했더라도 중개기관간 스마트 계약 등 환전을 통해 거래가 가능하고 각각 분산원장에 기록이 남게 된다.

그밖에 중앙은행이 CBDC에 이자를 지급하게 될 경우, 법원 등에서 CBDC를 상대로 추심 행위가 이뤄질 경우, 의심거래 보고제도(STR), 고액 현금거래 보고제도(CTR) 등 의심 거래에 대한 규제당국 자료 제출 등 기존 제도도 구현이 가능한 것으로 연구됐다.

(출처: 한국은행)


◇ 거래 몰리면 업무처리 속도 떨어져…“최악의 경우 1분 소요”


그러나 업무 처리 속도 등 성능에는 한계가 있었다. CBDC 모의시스템에 500만개 계정을 생상하고 30분간 지속적으로 임의의 가상 거래를 발생, 누적시키며 성능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초당 약 2000여건이 처리되지만 거래 건수가 증가할수록 수신까지 응답대기 시간이 1분 정도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분간 초당 4200건의 거래가 집중될 경우를 가정한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하위 네트워크를 구성한 결과 네트워크별로 초당 약 700여건 수준으로 처리가 가능하지만 개별 네트워크간 거래가 증가하면 이 역시 성능 저하로 나타났다. 또 거래 상대방에게 신원 정보를 노출하지 않고 자신이 해당 자산의 소유주임을 증명하는 ‘영지식 증명 암호 기술’ 활용 가능성도 점검했지만 이는 개별 거래당 최대 14초까지 처리시간이 추가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 한국은행)
모의실험을 주도한 유희준 한은 디지털화폐기술반장은 “분산원장 기술을 통해 CBDC의 여러 기능이 가능한지를 확인한 결과 기능 확인은 가능했지만 성능에 대해선 면밀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이번엔 보안 진단 관련 테스트가 빠졌는데 향후엔 보안 컨설팅 업체, 모의해킹 업체 등을 통해 사이버리스크를 확인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이밖에도 CBDC가 실제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금융결제원을 비롯한 14개 은행과 협력해 추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한은이 개발한 CBDC 모의실험 시스템을 각 은행의 하드웨어에 설치하고 이종 클라우드 등을 연결해 기능, 성능 등을 측정하는 내용이다.

다만 한은은 현재까지 CBDC를 실제 도입할지 여부에 대해선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분산원장 기술 방식으로 CBDC의 기능을 구현하는 실험을 하는 것일 뿐, 이것이 최종 모델로 확정된 것도 아니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달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내부적으로 CBDC를 법적, 기술적으로 검증하고 있을 뿐, 한은이 먼저 도입할 것이냐에 대해선 보수적”이라며 “(먼저 도입했다가는) 국제 정합성 문제가 생길 수 있어 미국, 유럽 등에서 국제적으로 도입하면 여기에 바로 대응할 수 있수 있도록 하는 것이 CBDC 전략”이라고 밝혔다. 이어 “미국, 유럽 등은 수년 내 CBDC 도입을 적극 고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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