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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우 KB증권 연구원은 13일 보고서에서 “SVB은행이 실패한 이유는 대규모 예금 인출 수요에 대응한 충분한 유동성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SVB는 보통주 자본비율, 기본자본비율이 모두 바젤3 규제 비율을 상회하지만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등 유동성 규제를 적용받지 않고 있다는 점이 취약 요소였다”고 평가했다.
SVB는 팬데믹 이후 자산, 부채가 급성장했다. 미국 전체 은행 자산은 2019년 대비 2021년말 38% 급증했는데 이 기간 SVB는 710억달러에서 2110억달러로 자산이 급증했다. 이 과정에서 부채 항목인 예금 규모도 620억달러에서 1920억달러로 206% 증가했다. 주로 테크, 헬스케어 기업, VC 등이었다.
SVB는 주 고객들로부터 받은 예금을 기존 사업 방식대로 테크 기업, VC, PE 등에 대한 대출 자산으로 융통했는데 유동성이 워낙 급격히 늘어난 탓에 투자처가 부족하자 여윳돈을 미국 국채와 에이전시 채권(MBS) 등에 투자했다. 이에 따라 총 자산 중 만기보유증권 비중은 14.4%에서 46.5%로 급증했다.
박 연구원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만기보유증권은 금리가 상승하더라도 회계상 손실이 발생하지 않고 이자수익이 꾸준히 발생하므로 외부 충격에도 안전한 자산처럼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유동성이 급해지면 자산을 매각할 수밖에 없고 만기보유증권의 실질 가치가 수면 위에 드러나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더구나 예금보험공사가 보증한 한도만 25만달러인데 SVB의 예금 계좌 중 약 88%가 잔액 25만달러를 상회해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니 예금 인출 사태가 더 가속화됐다. 현재는 미 당국이 전액 예금 지급 보증을 약속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박 연구원은 “SVB사태로 소형 은행들의 리스크는 커졌다”며 “최근 1~2년 현금성 자산이 대형은행 대비 빠르게 감소했고 일부 은행은 SVB와 같이 채권 자산의 미실현손익이 크거나 만기 보유로 실제 자산의 가치 하락이 드러나지 않은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출 자산이 특정 섹터에 집중돼 있을 위험도 크다. 다만 대형은행은 금융위기 당시보다 건전성, 유동성이 견고한 상태로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번지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그러나 그는 “금리 상승에 따른 자산 가격 하락과 리파이낸싱 리스크, 자산의 장부가 평가는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자산을 장부가로 평가하거나 분기나 연간 단위로 재평가를 느리게 진행하는 경우에 재평가로 자산 가치가 하락하면 담보가치가 저하되면서 자금조달 리스크가 커지게 된다. 대표적인 예들이 사모사채, PE, VC 등”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작년 12월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인 블랙스톤이 부동산 펀으의 환매를 제한했는데 이런 자산들의 특징은 가치가 실시간으로 측정되지 않아 잠재 리스크가 공모 주식, 채권보다 훨씬 커진다.
한편 박 연구원은 “SVB 사태는 긴축에 따른 실물경제 여파가 확실하게 나타난 이벤트이기 때문에 디스인플레이션 기대도 높일 것”이라며 “연준의 50bp 인상이나 6% 최종 금리 가능성은 낮아지고 장기 금리가 종국에는 하향 안정될 것이라는 주장에 힘을 가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