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기술25]①‘공공의 적’ 된 플라스틱… PCR 기술로 ‘미래’ 꿈꾼다

‘인류 축복’이었던 플라스틱 퇴출 위기, 리사이클링 기술 ‘부각’
폐플라스틱서 원료 추출해 만드는 PCR, 환경오염 대응 적격
회수부터 혼합까지 5단계 거쳐, 기존 물성 구현하는 게 관건
PCR 시장 연평균 6% 성장 전망, 화장품 용기 등 수요
  • 등록 2020-09-22 오전 6:00:00

    수정 2020-09-22 오전 7:53:29

고부가 합성수지(ABS) 이미지. LG화학은 폐플라스틱에서 원료를 추출, 새 제품으로 만드는 PCR-ABS 제품군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사진=LG화학)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세계 최초의 플라스틱은 뜬금없게도 ‘당구공’에서부터 비롯됐습니다. 1869년 미국의 발명가 존 웨슬리 하이엇이 기존 당구공 소재인 상아를 대체하기 위해 질산섬유를 활용, 최초 천연수지 플라스틱 셀룰로이드를 개발하면서 시작됐죠. 열을 가하면 원하는 모양으로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소재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이후 충격에 더 강한 합성수지 플라스틱이 또 탄생합니다. 미국의 화학자 리오 베이클랜드가 석유 부산물을 통해 개발한 최초의 합성수지 플라스틱 베이클라이트입니다. 합성수지 플라스틱이 나오면서 플라스틱은 일상용품부터 건축자재 등 모든 분야에서 두루 사용되며 인류의 삶을 바꿔나갑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창의적인 소재’라는 찬사와 함께 플라스틱은 인류의 삶 속에서 필수적인 소재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미세플라스틱의 역습… 떠오르는 PCR 기술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인류의 욕심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걷잡을 수없이 커집니다. 오늘날 전 세계적 문제로 떠오른 플라스틱의 남용과 무분별한 폐기 등이 욕심의 결과죠. 미국 우즈홀 해양연구소에 따르면 플라스틱 병 하나가 분해되려면 450여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폐플라스틱은 다양한 형태로 세상에 남아 생태계를 교란합니다. 예를 들어 바다 속 플랑크톤이 5mm 미만의 미세플라스틱을 섭취하면 먹이사슬을 따라 축적되고, 결과적으로 포식자일수록 더 많은 미세플라스틱이 체내에 쌓이게 되죠.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한 사람이 한 해에 섭취하는 미세플라스틱의 무게는 모자 한 개에 해당하는 250g에 이를 정도입니다. 이에 ‘신의 축복’이라 불렸던 플라스틱은 결국 인류 ‘공공의 적’으로 전락하며 세계 각국에서 퇴출 바람까지 일어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럼에도 플라스틱의 완전한 퇴출은 쉽지 않습니다. 대체할 소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그간 화석원료로 플라스틱을 생산해 온 석유화학업체들은 기존 플라스틱을 대체할 기술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시점인 만큼 플라스틱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죠. 이에 석유화학업체들은 식물 등에서 원료를 추출해 만드는 ‘바이오 플라스틱’, 폐플라스틱을 원료로 다시 완제품으로 리사이클링(재활용)하는 ‘재생(PCR·Post-Consumer Recycled material) 플라스틱’ 등 친환경 플라스틱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사탕수수 등 식물성 원료로 만든 바이오 플라스틱은 자연적으로 분해가 가능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PCR 플라스틱은 최종 소비자가 사용하고 버린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제품인만큼, 바이오 플라스틱에 비해 즉각적으로 환경 문제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최근 애플, 코카콜라, 로레알 등 글로벌 기업들이 PCR 플라스틱을 원료로 사용해야지만 관련 제품을 납품받겠다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재생 고부가 합성수지(PCR-ABS, 왼쪽)과 기존 ABS. 외관 상 큰 차이가 없지만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든 소재다. (사진=LG화학)


펠릿 형태로 쪼개 분리·혼합… 기존 소재 수준 물성 구현이 관건

일반적으로 플라스틱 리사이클링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됩니다. 폐플라스틱을 수거해 물리적 형태만 바꿔 동일 플라스틱 원료를 추출, 제품으로 재가공하는 ‘기계적 방식’, 플라스틱 분자 구조 자체를 변화시켜 원료로 재생하는 ‘화학적 방식’, 폐플라스틱에서 열에너지를 회수하는 ‘열적 방식’ 등입니다.

이중 PCR 플라스틱은 기계적 리사이클링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PCR 플라스틱은 크게 △회수 △분쇄 △세척 △선별 분리 △혼합 등 5개 단계의 공정을 거칩니다. 최종 소비자들이 사용하고 버린 폐플라스틱을 회수하고 이를 분쇄 과정을 통해 알갱이 단위의 원료인 ‘펠릿’(Pellet) 형태로 만듭니다. 이어 해당 펠릿을 깨끗하게 세척한 후 비중 차이를 이용해 선별·분리 작업을 진행합니다. 선별 공정에는 원심분리(원심력을 이용해 액체에 부유하고 있는 고체를 침전시키는 방식), 적외선 분광법(적외선을 통해 화학적 정보를 얻는 방법) 등이 활용됩니다. 이 같이 분리된 PCR 재료들은 품질이 낮기 때문에 기존 원료와 적당한 비율(20~50%)로 혼합하면 비로소 PCR 플라스틱 소재로 재탄생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 가지 소재가 혼합된 상태로 버려지는 폐플라스틱을 종류별로 분리하는 것도 어렵지만 이를 분쇄할 때 최대한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도를 높게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불어 이렇게 만들어진 PCR 원료와 새로운 원료를 혼합해 최종 제품으로 만드는 단계에서도 여러 물성 저하를 어떤 식으로 극복하는 지도 관건입니다. 특히 폐가전제품 등에서 추출한 플라스틱 원료를 활용하는 PCR-고부가 합성수지(ABS)의 경우 밝은 색상을 구현하는 것이 기술력인데요, 여러 색상들이 혼합된 폐가전제품을 원료로 하는 만큼 결국 어두운 색상을 재활용할 수 밖에 없는 한계점이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개발이 활발합니다. 최근 국내 화학업체 LG화학(051910)이 기존 ABS 수지와 동등한 수준의 물성을 갖춘 PCR-ABS를 ‘화이트’ 색상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해 이목을 끌었죠. 원료 제조 단계에서부터 PCR용 맞춤형 ABS를 별도 개발하는 등 새로운 시도들이 이뤄졌습니다. 밝은 색 구현과 함께 기존 소재와 동일한 물성을 구현하는 것 역시 기술력입니다.

이 밖에도 PCR-페트(PET), PCR-폴리프로필렌(PP) 등 다양한 소재의 재활용화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PCR ABS가 주로 가전제품 등에 활용된다면, PCR-페트와 PP는 식품 및 화장품 용기 등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실제 글로벌 화장품 업계는 오는 2025년까지 화장품 포장재를 최대 50%까지 PCR 제품으로 확대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내 화장품 용기 시장에서도 약 60%가 플라스틱 소재인 만큼 성장성이 커 보입니다. 이를 통한 전체 PCR 플라스틱 시장 규모도 급속도로 커질 전망입니다. 시장조사업체 마켓샌드마켓에 따르면 글로벌 PCR 플라스틱 시장은 지난해 77억 달러(한화 약 8조8300억원)에서 오는 2024년 102억 달러(약 11조8300억원)로 연평균 약 6%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운 오리 새끼’가 돼 버린 플라스틱의 변신. 폐플라스틱은 더 이상 일개 ‘쓰레기’가 아닌 PCR 플라스틱 원료로 사용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플라스틱 리사이클링 생태계의 순환고리 구축이 필요하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입니다. 여전히 영세한 재활용 업체, 원료로 사용될 수 있는 폐플라스틱의 부족 등 숙제도 많은 상황인데요. 이를 위해 정부의 재활용 정책 개선과 함께 화학업체들과 재활용 관련 중소 협력업체간의 협업 확대 등이 필요하다는 주장입니다. 인류의 축복으로 불렸던 플라스틱이 이 같은 노력으로 다시금 인류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요. 혁신적인 플라스틱 재활용 기술개발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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