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에서 비슷한 예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지자체들의 이러한 움직임이 십분 이해된다. 나라가 소멸할지도 모르는 공포 속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다양한 형태의 저출산 대책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젊은 공무원들에게 조금이라도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지자체장들의 책임감도 칭찬받을 만하다.
그러나 이런 땜질식 처방, 산발적 정책이 유의미한 출산율 반등을 이끌 것인가 하는 물음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결혼과 임신, 출산은 눈에 보이는 인프라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주 3일, 주 2일, 나아가 일주일에 하루도 출근하지 않는다 해도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이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52.9%, 남성의 33.1%가 출산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여건보다는 출산에 대한 욕구나 희망, 가족이 주는 행복 등의 가치와 회복이 문제의 본질 중 으뜸인 것이다.
사람들이 ‘결혼은 구속, 임신은 족쇄, 양육은 고통’이라 생각하는 한 돈을 아무리 많이 주고 일하는 시간을 줄여줘도 출산율은 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결혼은 구원, 임신은 축복, 양육은 행복’이라 생각하면 비록 살림은 팍팍하고 몸은 피곤해도 아이를 낳을 것이다.
물론 현금성 지원, 보육 편의 제공도 중요하다. 지금껏 우리 사회가 그 문제에 안일했다는 점을 지금이라도 인정하고 고치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지자체의 주 4일제 도입은 앞으로 더 큰 변화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정책들보다 더 중요한 가치관의 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이 모든 대책들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 사회 전반적으로 가정은 곧 안정과 행복의 원천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도록 정책을 세워야 한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가치’에 두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족의 가치, 아이가 주는 행복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고 거기에 돈을 써야 한다. 임신과 출산, 육아가 공포와 부담이 아닌 기쁨과 성취로 받아들여지면 낳지 말라고 해도 낳을 것이다.
세계적 현상인 개인주의의 확산은 삶의 생존과 의미를 다양한 색깔로 인식한다.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다른 선택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 행복의 현세화에 대한 시각도 바뀌고 있다. 이렇게 변화한 결과의 산물로 나타난 저출산은 선진국 공통의 현상이고 심지어 중국에서도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더욱 극심하게 반응할까. 사회의 위기와 연동해 생각해 보면 미래의 불안을 부추기는 쓸데없는 잡음(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인생의 부담)과 분절적 분쟁(남 탓, 환경 탓으로 돌리는 제반 현상)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늘 가치의 충돌은 역사 속에 있어 왔고 우린 우여곡절 끝에 바른 방향으로 수정해 왔다. MZ세대의 저출산 현상은 선진국일수록 당연한 결과라고 하지만 미국도, 유럽도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작년 미국과 영국은 출산율 1.62명, 1.42명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2배가 넘는 수치다. 과연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출산율 꼴찌를 할 만큼 정말 살기 힘들고 애 낳기 어려운 환경일까? 의무는 외면한 채 권리만 주장하는 개인주의를 가장한 이기주의에 마음이 씁쓸하다. 개인과 사회 선상에서 바람직한 개인주의는 어떤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 미국은 개인의 행복이 가족과 가정 속에 있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사회 분위기를 유도한다. 우리도 그 가족 중심적 문화를 이어가야 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은 사회 분위기와 인식에 기인하는 것이 많고 인식의 기초는 가치에서 온다. 이제 출산 환경과 함께 가치의 문제에 사회적 일념과 열망이 모여야 할 때다. 돈 주면 애 낳을까. 행복하면 애 낳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