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돈은 돈인데 은행에는 없다. 다시 말해 어느 정부나 중앙은행, 금융기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건 디지털을 등에 업고 있기 때문. 온라인에서만 작동하는 가상화폐이자 글로벌 전자화폐인 비트코인은 당연히 실물이 없다. P2P 네트워크 기반의 암호화 프로토콜을 사용, 분권화된 화폐를 발행할 뿐이다.
여기까진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주목할 일은 올 초에 벌어졌다. 이 신생화폐가 심하게 꿈틀거린 거다. 태어난 지 4년 된 이 돈은 미 달러 대비 환율을 공시한 그해 1비트코인의 가치가 0.0008달러에 불과했다. 지난 1월만 해도 13달러에 그쳤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했다. 4월에 이르자 266달러까지 치솟은 거다. 10월인 지금은 조정국면을 거쳐 200달러를 넘긴 가격대에 안착해 있다. 게다가 캐나다 밴쿠버에선 이달 28일부터 비트코인을 사고팔 수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가 등장한다. 기기에 손바닥을 스캔하는 간단한 절차를 거쳐 비트코인을 캐나다달러로, 또 캐나다달러를 비트코인으로 바꿀 수 있다.
인간이 화폐를 쓰기 시작한 이래 가장 강력한 도전. 비트코인이 3000년 화폐역사를 뒤집을 파격으로 떠오르고 있다. 책은 한국비트코인거래소 ‘코빗’의 공동설립자인 저자가 비트코인이 몰고 올 다분히 파괴적 혁신과 미래상을 그려낸 것이다. 정부나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발행하고 쓸 수 있는 돈. 그것이 지닌 가치와 의미다.
▲해커들의 장난감인가 제3의 화폐인가
가장 큰 이유로 저자는 편이성을 지적한다. 은행의 독과점 지위에서 벗어난 것만 해도 엄청난 자유라는 거다. 소수의 범죄를 막기 위해 다수의 이용자를 불편하게 했던 관료적 시스템의 폐해도 비켜갈 수 있다고 했다. 무분별한 발행으로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구매력이 줄어드는 기존 화폐의 한계도 깰 수 있다. 유통량을 제한한 덕이다. 화폐량이 이미 정해져 100년 정도 후엔 발행이 끝난다. 국경 없는 거래도 강점이다. 은행에 바치는 수수료 따윈 고민거리가 못 된다.
실물 없는 디지털 형태란 점은 보통의 가상화폐와 같다. 하지만 ‘다르다.’ 운영에 어떤 통제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참여자 모두가 관리에 뛰어든다는 것도 특이하다. 흔히 말하는 사이버머니와 차별화되는 건 비트코인의 가치다. ‘열린 화폐.’ 특정 회사나 어떤 사이트에서만 사용되는 닫힌 화폐가 아니란 거다.
▲화폐를 넘어선 화폐…돈 관념 깨는 역발상
과연 정직한 돈이 될 것인가. 누구나 만들어내고 거래할 수 있다는데. 비트코인에 대한 의심은 대개 이쯤에서 시작한다. 의구심을 잠재울 근거는 투명성과 익명성에서 찾았다. 비트코인의 거래내역은 전체 네트워크에 공개된다. 발행과정도 만만치 않다. 컴퓨터의 연산과정이 고도의 수학암호를 푸는 것처럼 난해해 ‘마이닝’(mining·채굴)이라 불리기도 한다. 금을 캐내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고유식별코드는 누가 얼마를 송금했는지까지 비밀에 부친다.
그러나 허점이 없진 않다. 최근 마약밀거래사이트인 ‘실크로드’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화폐가 비트코인이란 게 한 예다. 미국 FBI에 따르면 지난 2년 9개월 동안 950만비트코인(약 1조 4000억원)이 여기서 거래됐다. 불법거래의 온상으로도 충분히 위협적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비트코인의 진보적 형태를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령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 대부분이 이미 실물이 아니란 거다. 누가 요즘 월급을 화폐로 받는가. 돈이 그저 숫자가 돼 버린 건 오래전이다. 이 시점에 지금 세상에 나온 비트코인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내일의 사회와 경제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오늘의 기술적·경제적 상상력의 최신 버전”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기축통화를 대체할 거란 보장은 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화폐가 품고 있는 고정관념을 뒤엎을 순 있다는 것. 돈이 굳이 지갑 속 실물이라는 관념은 깨진 지 오래다. 이젠 돈으로서 경제적 공평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역발상도 가능해졌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