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했던 물건이 낯설게 느껴질 때”…회화로 만나는 ‘미스터리한 사물’

강동호 개인전 'Detachment'
'Mountain' 등 신작 10여점 선보여
"사물 새롭게 이해하는 과정 즐거워"
4월 15일까지 휘슬갤러리
  • 등록 2023-03-14 오전 5:30:00

    수정 2023-03-14 오전 5:30:00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스릴러 영화에서는 우리가 알던 사물이 연출자에 의해 전혀 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핸드폰이 공포영화에서는 오싹한 물건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말이다. 강동호 작가도 이러한 느낌을 작품에 차용한다. 어느날 오븐 속에서 구워지고 있는 쿠키가 차가운 수술대 위에 놓여진 시체들 같은 느낌이 들었단다. 이같은 낯선 느낌은 그로테스크한 느낌의 쿠키 그림(‘Basic Cookies’)으로 재탄생했다.

강동호 작가의 개인전 ‘디태치먼트(Detachment·거리를 둠)’가 오는 4월 15일까지 서울 용산구 휘슬갤러리에서 열린다. 2020년 이후 3년 만에 갖는 개인전으로 그동안 작가가 준비한 신작 10여점을 선보인다.

최근 휘슬갤러리에서 만난 강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대상과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바로 사물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이라며 “잘 아는 사물도 마치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그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한다”고 설명했다.

강동호 작가가 전시작 ‘Mountain’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이윤정 기자).
강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젊은 나이에 여러 기획자에게 주목을 받고 있는 신예 작가다. 그는 이미지와 사물이라는 두 가지 화두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포털 사이트를 떠도는 사물이미지의 첫인상을 포착하고 가공해서 그린다. 무작위로 찾은 이미지를 바라보다가 대상의 형태, 색과 질감 속에서 은밀하고 불길한 인상을 포착한다.

이렇게 재현된 이미지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실제 강 작가는 영화감독의 연출 방식, 특히 흑백영화에 관심이 많다. 현장 기록 사진처럼 강한 조명을 받은 와인 따개(‘Corkscrew’)나 워커를 신은 누군가의 하체(‘Mountain’) 등의 그림이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강 작가는 “작업을 할 때 영화를 많이 참고한다”며 “스릴러 영화 등의 장르물을 좋아해서 작품에도 이러한 분위기가 반영되는 것 같다”고 했다.

“산 위에 누워있는 남자를 찍은 사진을 보고 좀 으스스한 느낌을 받았어요. 사실 평화롭게 낮잠을 자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범죄를 저지른 후에 산 위에 올라와 쉬는 것일 수도 있죠. 와인 따개도 마찬가지예요. 클로즈업해서 그리다 보니 중간에 있는 나사 두 개가 저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죠.”

강동호 작가의 ‘Back Pocket’(사진=휘슬갤러리).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평소 우연히 지나쳤던 사물이 달리 보인다. 반쯤 벌어진 바지의 뒷 지퍼를 그려놓은 ‘백 포켓(Back Pocket)’은 뚫어져라 쳐다보는 커다란 눈 같다. 신발의 밑창을 확대해서 그린 ‘윈터 슈즈(Winter Shoes)’의 미끄럼 방지 장치는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제가 이미지를 그리는 것은 사물을 이해하는 과정이에요. 처음에 어떤 뉘앙스를 느꼈는데 어떤 느낌인지 한번에 딱 알 수가 없어요. 그림으로 자세하게 하나씩 그리면서 ‘그래서 이런 느낌이 들었구나’ 하는 식의 이해를 하는 거죠. 그런 작업 과정이 즐거워요.”

사물이미지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앞으로도 강 작가만의 시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물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얘기다. 강 작가는 “관객들이 그림을 감상하는 순간이 내가 그림을 그리는 순간과 닮았으면 좋겠다”며 “앞으로도 대상의 이미지를 한정짓기 보다 어떤 제약도 없는 자유로운 시선으로 사물을 그려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강동호 개인전 ‘Detachment’ 전경(사진=휘슬갤러리).
강동호 작가의 ‘Corkscrew’(사진=휘슬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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