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소영 작가 "문명 이전 혹은 그 끝의 세계…마음껏 상상하세요"

개인전 '천산수몽' 열어
자연·인간 관계 시각화 11점 선보여
"대조와 은유로 '영원성'과 '시간성' 표현"
4월 1일까지 P21 갤러리
  • 등록 2023-02-21 오전 5:30:00

    수정 2023-02-21 오전 5:30:00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제 전시를 보러 오는 분들이 상상에 동참했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곳곳에서 클리셰(판에 박은 듯한 문구 또는 진부한 표현)를 많이 접하잖아요. 그걸 가능하면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갇혀 있지 말고 (생각을) 열어놔라.’ 박성소영 작가의 전시를 더 흥미롭게 즐기고 싶다면 꼭 기억해야 할 말이다. 그의 그림에선 형태의 경계가 사라진다. 문명 이전의 풍경인지, 언젠가 맞이할 그 끝의 풍경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는 몽환적인 그림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어떤 것을 먼저 보고 상상하든 그건 관객의 몫이고 자유다.

서울 용산구 P21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성소영 작가의 개인전 ‘천산수몽’에서 만나는 모습이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작가가 회화적 실험을 선보이는 전시다. 자연과 인간의 관계, 경이로운 사건을 시각화 한 11점의 작품에서다.

최근 P21 갤러리에서 만난 박성소영 작가는 “‘문명이 존재하기 전이나 멸망하고 나서의 모습’에 대해 매우 궁금했었다”며 “이런 주제 의식 아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과 자연이 혼재되는 세계들을 시각화했다”고 설명했다.

박성소영 작가(사진=이윤정 기자).
그의 설명대로 작품들은 비현실적인 풍경들이 많다. 어떤 그림에선 여성의 하이힐과 폭포가 겹쳐 보이기도 하고(‘성스러운 산’), 이파리와 씨앗을 그린 한 작품은 어느 순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의 형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기원의 씨앗’).

“유한한 인간의 신체가 자연과 하나되는 모습에서 ‘만물일체 사상’을 떠올리는 분들도 있어요. ‘영원성’과 ‘시간성’이라는 정반대의 개념을 대조와 은유를 통해 표현하려 했어요. 가령 그림 속에 공기나 구름은 영원성을 상징하는 것이고, 그 속에 있는 손이나 발 등 인간의 신체는 시간성의 개념이죠.”

전시장 한켠에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토마스의 행성’도 이런 맥락에서 탄생했다. 토마스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12 제자 중 한명인 ‘도마’의 원래 이름이다.

“그림에 나오는 손에 상처가 있어요. 성경에서 토마스는 부활한 예수가 진짜 맞는지 의심하면서 예수의 상처를 손으로 만져봐요. 그 모습을 상상하면서 손에 상처를 그려봤어요. 작가가 나름의 의도와 콘셉트를 가지고 그림을 그린다지만 50%는 우연이나 무의식에서 나오는 것도 있어요. 그러니 작가의 의도보다 관객들이 어떻게 느끼느냐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박성소영 개인전 ‘천산수몽’의 전경. 왼쪽에 보이는 커다란 그림이 ‘토마스의 행성’이다(사진=P21 갤러리).
‘밤의 폭포’는 ‘향수’가 모티브가 됐다. 독일에서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새벽 시간에 자전거를 타다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단다. 박 작가는 “내가 말하는 ‘향수’는 고향에 대한 향수라기보다 ‘막연한 그리움’”이라며 “그리운 어떤 상대를 만났는데도 외롭다거나, 어렸을 적 일하러 간 엄마를 기다릴 때 느꼈던 그리움 등이 떠올랐다”고 했다.

“회화는 상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인 것 같아요. 문명이 있기 전과 후를 상상하며 표현하는 지금의 작업이 마음에 들어서 좀 더 발전시켜나가고 싶어요. 앞으로 덜어낼 것은 덜어내면서 제가 전하고자 하는 이미지를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나가려 해요.”
박성소영의 ‘밤의 폭포’(사진=P21 갤러리).
박성소영의 ‘기원의 씨앗’(왼쪽)과 ‘성스러운 산’(사진=P21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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