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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리보는 경제신문)삼성 R&D에 5년간 47조 투자
- [이데일리 백종훈기자] 다음은 11월9일자 경제신문 주요기사입니다.(순서는 가나다순) ◇매일경제신문▲1면-삼성 R&D 인력 3만명 채용 -구글-MS `사이버 패권경쟁`-日, 한국 김치주문 절반 `뚝` -프랑스 폭동지역 야간통금▲경제/종합(A2/A3)-`가이테크 패션`이 뜬다 -"스포츠산업 경영자 키우자" 美 MBA바다 강좌개설 붐-발효중인 FTA 117개..한국은 단 1개-농업시장개방, 스크린쿼터가 장애-韓美中日 무역전쟁 번질 가능성-전세계무역 55% 무관세 거래-고유가에 석유모래도 개발한다 ▲경제/종합(A4/A5)-정부, 12개품목 특소세 폐지 추진 -윤종용 부회장의 `이공계 사랑`-北 개풍에 경제공동개발구 건설-소비심리 되살아나나-지로로 낸 자녀학원비도 소득공제-메세나가 기업 키운다③ 공연지원, 미술품 구입은 `투자활동`-경제계 `색깔 논쟁` 비화..금산법 개정안 첫 공청회▲정치/외교안보-한나라 "예산 8조9천억 삭감"-DJ "輿 전통지지표 복원 힘써라" -남북관계엔 내가 적임..우파 닉슨이 미중 수료 이끌었듯-6자회담 어제 남북 접촉-국회 지방행정개편 첫 회의 -"손님인 日 총리와 만나는게 도리"..盧 대통령▲금융/재테크-기업 엔화대출 크게 증가 -은행 충당금 더 쌓아야 한다 -부부소득 5천만원 넘어도 가능..생애 첫 대출 궁금증 풀이-인피니트카드 회원모집 중단-보험료 소득공제 서류 간편해진다▲국제-中 내륙 투자환경 개선한다-미국인 집값 싼 중서부로-베이징시 가금류시장 전면 폐쇄-관광객 발길 `뚝`..유로화 급락..12일째 계속되는 프랑스 소요사태▲기업과 증권-삼성 차세대 성장엔진 5개 추가..에너지, 광원, 크루즈선, 정밀화학기기, 전자재료-LG·SK 장단점 따져 새 지배구조 만들 것..두산호 맡은 유병택부회장-SK `행복날개` 도심을 날았다▲기업/경영-"구경오는 손님조차 없어요"..휴대폰 보조금 부활 앞둔 매장 돌아보니-지구촌 생활정보 포털 등장▲중기/벤처/과학기술-中企 보증대란 일단 모면-한밤에도 120m밖 물체 촬영-일진그룹 "모든 걸 다 바꿔"-조류독감 백신 원숭이 실험 성공-삼성 모든 상장사 1만원 넘었다-롯데칠성 中 진출 확대◇서울경제신문▲1면-삼성 "R&D에 47兆 투자" -퇴직연금도 예금자보호 추진-새해 시작도 안했는데 내년 세수 벌써 `구멍` -수도권中企 특별세액 감면..여당, 1~2년 연장 검토▲경제/금융 -중산층 재무 컨설팅시장 뜬다-"세계증시 연말 랠리이어 내년도 15% 성장 보일 것"..도이치방크 보고서 -쌍용차노조 "15일 총파업 투표"-공직자 재산정보 미리 알려준다-"초일류 R&D가 초일류 기업 만든다" -인텔, IBM 등 보다 많아..47조 투자-협력업체와 상생경영도 강화..삼성▲종합-輿, 금산법 `분리대응` 가닥-외국인 보유토지 분당 8.4배-北에 인천전용공단 조성 제의..인천시, 황해도에 2000만평 규모 추진-58조 우체국 자금이 움직인다-경제장관들 "우리도 블로거"-나라 곳간 채우기 `발등의 불`-경기회복 기대속 가계는 `꽁꽁`▲금융 -"지역상공인 경남, 광주銀 인수 안돼"-"국내銀 대손충당금 적립 강화"-두집살이 청산 `골머리`..신한금융, 국민, 우리, 하나은행 등-후임 産銀총재 `안갯속`▲산업 -SK `행복날개` 활짝 폈다 -동국제강 브라질공장 내년 1월 착공 -두산 비상경영위 7~8명선 될듯 -GS홀딩스, LG에너지 인수-STX팬오션 "복합물류사 도약"-삼성, 현대차, LG그룹 빅3 회장 APEC CEO서밋 불참한다-롯데칠성 中 진출 `가속페달`-"허브항 경쟁 원가절감에 달렸다"-일진, 벤처투자 본격 나선다-엔피텍, 은나노 한복 소재 개발-넥센나노텍, 금호석화에 기술이전-"연말은 와인 최대 성수기"-유통가 "겨울 준비하세요"-`미치코런던` 교복도 만든다▲증권-피델리티 계열, 내수주 공략-증권사, 코리안리 `러브콜` 줄이어-방림, 부동산 팔아 8년만에 배당-`연말랠리` 기대감 고조◇한국경제신문▲1면-삼성 R&D에 5년간 47조 투자 -佛 소요 사태로 유로화 23개월만에 최저-15조원 美 AIDS 퇴치사업 잡아라-美 어린이들 1300만명, 기업가정신 배우기 열풍▲종합-인터넷시장 三國志-게임 주제도 오락아닌 서비스 -"AI 확산 시간문제"..이종욱 WTO총장-정부위원회 위원 인사검증 제외될듯-M&A시장 외국계만 `떼돈`-우리금융 公자금 전액회수 `청신호`-"올들어 흑자폭 커진 은행 대손충당금 많이 쌓아야"..금감원 정례브리핑▲국제-위기의 할리우드 "비상구가 없다"-中 "은행도 망할 수 있다"-IEA "석유 의존도 낮춰라"-美MBA `스포츠경영학` 뜬다▲사회-740억 수출사고..LG상사·대우인터, 몽골서 대금 못받아 -지하철 9호선 2008년말 개통..1년 연기▲산업 -해운 `500년만의 호황` 끝나간다-GS그룹, LG에너지 인수-스포티지, SUV성능 `톱`-"성장의 주역은 임직원" 가족사랑 음악회 열어-두산 비상경영 체제 6개월 이상 지속될듯-삼양사, IT소재사업 진출한다-한진해운, 지중해 항로 개설-"반도체 내년 전망 밝다"-MP3, 내년초 30% 더 싸진다-팬택, 가수 비와 모델계약..아시아시장 본격공략 나서-삼성(전자), 수출용 슬림폰 5종 공개-LG(전자), 자바기반 스마트폰 세계 첫 개발-기내 인터넷 공짜..하나로텔, 이달말까지-국내 최대 게임전시회 `지스타` 내일 킨텍스서 개막-콩 식품 전성시대-사과 배값, 작년보다 20% 싸다
- (한국경제 반세기)”위기의 도래”…외환대란③
- [이데일리 이종석기자] 구제금융 협상의 상대는 표면적으로 IMF였지만 막후에서 조정하는 실세는 미국이었다. 나이스 단장 등 IMF 파견단은 협상 실무자였을 뿐 최종 결정은 미국 재무부가 주도했다.◇ 협상 상대는 미국실무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97년 11월30일. 데이비드 립튼 미 재무차관이 비밀리에 입국했다. 립튼 차관은 미 재무부에서 IMF를 관할하는 책임자였고, 당시 한국 상황에선 그가 곧 IMF였다.협상장은 힐튼호텔 19층이었고, 립튼 차관은 이 호텔 10층에 여장을 풀었다. 나이스 단장은 부지런히 10층을 들락거리며 차관의 지시를 받아 왔고, 협상장에 돌아와선 이를 그대로 요구했다.당시 미국 정부는 한국의 IMF행을 유도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서 자금을 빌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각 국 정부에 ‘한국에 자금을 빌려주지 말라’며 압력을 넣기까지 했다. 일본과 중국에 돈을 빌리러 갔던 정부 대표단은 “IMF로 가지 않으면 한 푼도 지원할 수 없다”는 앵무새 같은 답변을 들어야만 했다.협상이 막바지에 들어서자 미국 대통령까지 나섰다.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은 11월28일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협상의 조속한 타결을 요구했다. “12월 첫째주가 되면 한국은 파산이다.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짓는게 좋을 것”이라는게 통화의 요지였다고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은 증언한다.세월이 어느 정도 흐른 후 학계 일각을 중심으로 “한국 외환위기는 미국의 음모에 말려든 결과”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내부적인 원인이 분명히 있었지만 이 보다도 외부적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었다.음모론의 실체를 확인할 길은 아직 요원하다. 하지만 한국 외환위기의 수습 과정에서 미국이 모든 상황을 좌지우지 했던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당시 미국 정부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실례로 금융기관 외채만기 협상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정부 대표단의 노력도 주효했지만 이에 앞서 미국 정부 내부의 역학관계 변화가 협상 타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게 정설이다.97년 12월19일. 워싱턴 백악관.클린턴 대통령 주재로 국가안보회의가 열렸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 등이 둘러 앉았다. 이날 회의의 의제는 한국의 외채 만기연장 문제였다.루빈 재무장관은 시장논리를 들어 한국 채권의 만기연장 문제는 민간 금융기관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한국의 상황을 이끌어온 미국 재무부의 입장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반론이 제기됐다. 코언 국방장관이었다.“한국은 수만명의 미군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총을 겨누고 있는 나라다. 한국의 경제위기는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서 풀어가야 한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도 코언 장관을 거들고 나섰다.이날 회의의 결과는 한국에 대한 자금지원을 조기에 재개하고, 은행들의 외채 연장을 적극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한국을 옭죄어 왔던 경제문제가 안보논리로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이 회의 이후 미국 은행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호의적으로 바뀌었고, 결과적으로 한국의 외채 만기협상은 순탄하게 타결됐다.◇ 위기 극복도 '빨리빨리'외환위기는 부지불식간에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된 한국 경제의 고질병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결과였다. 정경유착, 금융부실, 차입경영, 부패관행, 족벌경영 등 우리 경제의 취약점들이 통제불가능한 수준까지 한꺼번에 노출된 결과가 바로 외환대란이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 만으로 외환위기가 발발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아무리 사소한 사고라 하더라도 따져보면 수십가지 요인이 동시에 잘못돼 사고가 발생했음을 발견하곤 한다. 97년 외환위기가 바로 그런 경우다. 누적된 병인과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있었지만 “당시 정부가 사태를 좀 더 냉철히 파악했다면, 좀 더 빨리 대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악화될대로 악화된 한미관계, 경제팀의 오판과 실기, 정치적 문제해결 노력 등 뒤돌아보면 위기를 조장한 현실이 한둘이 아니다. 위기가 터진 후 “모두 내 탓이오”라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경제학자와 애널리스트의 글이 언론에 떠돌았지만 다 부질없는 일이었다. 외환위기는 결국 현실화됐고, 엄청난 희생을 거치고 나서야 우리는 위기를 넘어섰다. 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대마불사의 신화가 깨졌고, 사상 초유의 구조조정이 단행됐다. 조기퇴직, 사오정, 노숙자 등 새로운 단어들이 등장했다. 위기속에서 한국인들의 저력은 빛을 발했다. 장롱속에 묻어 두었던 금붙이를 찾아내 나라 살리는데 써달라며 너도나도 긴 줄을 섰다. 세계가 경이의 눈으로 한국의 위기수습 과정을 지켜봤다.결과는 놀라움이었다. 한국을 압축하는 ‘빨라빨리’의 의미를 설명이라도 하듯 위기극복 과정 역시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97년 당시 바닥을 드러냈던 외환보유고는 불과 3년새 다시 1000억달러를 넘어섰고, 97년 82억달러 적자였던 경상수지는 2000년말 100억달러 이상 흑자로 돌아섰다. IMF에서 빌려온 빚도 4년이 안돼 모두 갚아버렸다.당시 구제금융 협상을 통해 IMF로 부터 차입한 자금은 보충준비자금 134억달러와 크레딧트란셰 자금 61억달러 등 모두 195억달러였다. 97년 12월 55억달러가 처음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99년 5월까지 모두 9차례에 걸쳐 입금됐다. 2004년 5월까지 분할상환한다는 조건이었다.한국은 이 자금을 당초 계획 보다 무려 2년9개월이나 앞당겨 2001년 8월 전액 조기상환 해버렸다. 보충준비자금은 2000년 6월까지 상환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98년 12월 첫 상환을 시작해 9개월만인 99년 9월 모두 갚아 버렸고, 크레딧트란셰도 2001년 8월 전액 상환했다. IMF 자금을 빌려 쓴 다른 동남아나 중남미 국가에서는 볼 수 없는 경이적인 성과였다. 하지만 우리가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위기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으며, 우리 경제의 취약점이 모두 개선됐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위기 수습의 마무리 사령탑을 맡아 2000년 8월 재정경제부 장관에 취임한 진념 전 부총리는 취임 직후 ‘CRIC’라는 표현을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CRIC란 “위기도래(Crisis) → 경제주체의 대응(Response) → 상황 개선(Improvement) → 위기를 잊는 자만감(Complacency) → 다시 위기 도래”의 머리 글자를 딴 것으로, “위기를 잊는 자만심이 결국 다시 위기를 부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는 이런 위기를 맞지 말자는 정책 책임자로서의 다짐과 충고가 배어 있다. 97년 외환위기는 한국에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미래를 위해 배워야 할 교훈 또한 적지 않이 남겼다. 위기가 단지 위기로만 끝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 (가판분석)10월 24일자 조간신문 주요기사
- [이데일리 좌동욱기자] ◇헤드라인-매경 : 한중일 부품소재산업 `먹이사슬` 더 심해진다-서경 : 연금받는 노인들 크게 늘었다..4대 공적연급 수급자 2년새 53%나-한경 : 발코니 확장, 전국 민원대란-한국 : 은행권, 불임휴직 전면도입◇주요기사-北 연형묵 국방위 부위원장 사망(전 일간지)-삼성, 2010년 인도시장 매출 55억달러 목표(전 일간지)-김윤규 "대북사업은 현대가 계속해야"(전 일간지)-내달 공정위 제재 잇따를 듯, 대기업 위장계열사·부동산 과장광고 등(전 일간지)-주식거래 수수료도 소득공제(매경)-북 경수로 폐연료봉 제 3국에 맡길수도, 리처드슨 美 주지사 회견(서경, 한국 등)-亞 공동통화 단위 싹튼다. ADB 내년부터 아시아통화단위 공표(매경, 서경 등)-은행 불임여성 휴직제 도입, 최장 1년간 무급으로(매경, 한국 등) -이통사, 무선인터넷 접속제한 제재(매경 등)-도요타차 영업이익 6년만에 줄었다(매경)-與 금융실명법 개정 추진..국제 핫머니 정보 외국과 교환(매경)-철도공 팀장급 이상 20% 외부 수혈..내달 조직개편(서경)-농지보전 부담금, 공시지가의 30%..내년 1월 22일부터 시행(서경, 한국)-조류독감, 英·스웨덴으로 확산(서경)-LCD업계, 광고판 시장도 넘본다(서경)-日 기업 60% "새 공장 국내에 짓겠다"(한경)-지주회사형 기업 크게 늘었다(한경)-화섬업계 "더 이상 설 곳 없다" 스판덱스 등 中 물량공세에 밀려 재고 급증(한경)-기가텔레콤, M&A에 휘말리나..미국계 펀드 지분율 12.32%..대주주 부상(한경)-포털, 이제는 동영상 검색 경쟁(한경)
- (주간전망대)물류대란 오나..추가협상 주목
- [이데일리 김수헌기자] 10월 마지막 주가 화물연대 파업에 따른 물류대란으로 시작할 뻔했다. 애초 이번주 초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던 화물연대가 일단 최종결정을 이번주 말로 연기함에 따라 협상을 진행할 수 있는 시간을 다소 벌기는 했다. 하지만 정부가 화물연대에 더이상 추가지원을 할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 법과 원칙에 따른 강경 대응방침을 밝히면서, 타협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3분기 GDP 얼마나? 4%대 중반 예상이 지배적 이번주에는 국회가 본격적으로 내년 예산심의활동에 들어갈 계획인 가운데 대정부 질문이 시작된다. 27일~28일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는 세제개편을 둘러싼 감세논쟁, 8·31부동산대책, 국가채무, 금융산업구조개선법 등 경제현안에 대한 여야간 치열한 논쟁이 예상된다. 여기에다 최근 천정배 법무장관의 검찰 지휘권 발동 이후 가열되고 있는 국가정체성 논란이 국회에서 확대될 전망이다. 25일 한국은행이 내놓을 3분기 GDP 속보치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GDP 추이로는 지난 1분기에 저점을 통과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각종 경기지수나 산업·서비스활동동향 등을 종합해 봤을 때 여전히 바닥을 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이번 3분기 GDP 성장세는 경기가 과연 바닥 다지기 수준을 벗어나 앞으로 본격회복 단계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전망이다. 3분기 성장률을 대체로 4%중반대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해 28일 발표될 9월 및 3분기 산업활동동향도 주목된다. 지난 8월에는 자동차 파업의 영향으로 산업생산이 큰 영향을 받았다. 9월 역시 초반에 자동차 파업기간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파업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전망이다. 주요지표로는 한국은행과 산업자원부가 28일 각각 10월 기업경기조사(BSI)와 4분기 제조업 BSI를 발표한다. 앞서 27일에는 한은이 9월중 국제수지동향(잠정치)도 제시한다. ◇정치 사회 분야 민주노총 산하 화물연대는 파업돌입시기를 일단 이번주말로 늦춰, 정부와 화물연대간 추가 협상결과가 주목된다. 김종빈 전 검찰총장의 후임으로 청와대가 정상명 대검 차장을 유력하게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져, 검찰 후속 인사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 차장이 총장에 임명될 경우 검찰 내 동기나 선배기수들의 거취문제가 부상할 전망이다. 김종빈 전 검찰총장이 예기치 못한 수사지휘권 발동 파문으로 중도퇴임함에 따라 기수가 빠른 고위간부들이 무더기로 거취 고민에 빠지게 돼, 검찰인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24일부터 대정부 질문에 들어가는 국회에서는 원내 비교섭단체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이 국회 역사상 처음으로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다. 그간 대표연설 기회는 원내의석 20석 이상인 교섭단체 정당대표에게만 주어졌으나 지난달 여야 5당 원내대표들이 비교섭단체 대표에게도 연설기회를 주기로 합의함에 따라 이번 정기국회부터 본회의 단상에 서게 됐다. 오는 26일 4곳의 재선거 승리를 위한 국회 밖 여야 표대결도 한층 가열될 전망이다. 한편, 북한과 현대간 갈등 당사자인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이 지난 22일 귀국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는 현대 대북사업의 해결책이 제시될 수 있을지도 관심거리다. 김 전 부회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대를 떠난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밝혔지만 복귀의사도 간접적으로 비쳤다. 그는 "역할이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하지만 현대와 떨어져 할 생각은 전혀 없다"면서 현대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 (한국경제 반세기)”위기의 도래”…외환대란②
- [이데일리 이종석기자] 97년 11월16일 오후 6시30분.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 스위트룸. 비밀리에 한국에 들어온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강경식 부총리, 이경식 한은 총재와 마주 앉았다. 강 부총리가 한국의 외환보유고 현황을 브리핑하고, IMF의 지원 가능성을 타진했다. 환율변동제한폭 확대를 골자로 하는 금융시장안정대책이 곧 발표될 것이라는 내용도 언급됐다. ◇ “은행 2곳, 종금사 12곳 폐쇄시켜라” 묵묵히 듣고만 있던 캉드쉬 총재가 입을 열었다. “얼마나 지원하면 되겠습니까?” “최소한 300억달러는 돼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의 경제규모라면 그 정도 돈은 있어야겠지요.” 300억달러 규모 IMF 구제금융 방안은 이렇게 가닥을 잡았다. 이날 회의에서 양측은 자금지원 규모 외에 몇가지 추가적인 사항에 대해서도 합의를 보게 된다. 잠정 합의된 사항은 “▲11월19일 한국 정부가 구제금융 지원을 공식 신청하고, ▲IMF는 구제금융 신청 다음날인 20일 실사단 1진을 한국에 파견하며, ▲300억달러 중 1차분은 연내에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최대한 노력한다”는 내용 등이었다. 논의가 마무리될 즈음 캉드쉬 총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건이 있습니다.” “뭐지요?” “대통령 당선자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당시는 12월18일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후보 등이 치열하게 경합을 벌이고 있던 때였다. “선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이경식 총재가 답하자 캉드쉬는 “그러면 후보들의 동의서라도 받아야 한다”고 재차 요구했다. 차기 정권을 잡을 지도자로 부터 IMF 요구사항을 충실히 따르겠다는 확약을 분명히 받아 두겠다는게 캉드쉬의 계산이었다. 강 부총리나 이 총재나 거부할 상황이 아니었다. 캉드쉬 총재가 돌아간 후 구체적인 지원조건을 놓고 한국 정부와 IMF간의 실무협상이 진행됐다. 협상이 막바지에 달할 즈음 IMF측이 새로운 부속합의서를 들고 나왔다. “서울, 제일은행 등 2개 시중은행과 12개 종합금융사를 즉각 폐쇄하라”는 것이었다. 거시 산업 노동 금융 대외거래 등 상당 부분에서 합의를 이루고 양해각서까지 교환하고 난 상태에서 IMF측이 추가로 내놓은 부속합의서였다. 당시 폐쇄대상 종금사로 청솔종금 한 곳만을 염두에 두고 있던 정부로서는 받아들이기 곤란한 요구였다. 한국 대표단이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IMF는 요지부동이었다. 특히 비밀리에 방한한 립튼 미 재무차관이 IMF 협상단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하기 시작하면서 IMF의 요구는 더욱 강경해졌다. 당장 사정이 급한 한국 대표단은 저자세로 돌아설 수 밖에 없었고, 결국 ‘9개 종금사를 영업정지시키고, 2개 은행 처리는 6개월의 여유를 두고 추진한다’는 선에서 막판 합의를 보게 된다. 밀고 당기는 협상을 거쳐 12월3일 마침내 “IMF 대기성차관에 관한 양해각서”가 체결됐다. 이로부터 이틀 후 IMF 1차 지원금 56억달러가 국내에 입금된다. 두고두고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IMF 경제신탁통치’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 "전쟁터에서 장수를 바꾸다"...강 부총리 경질97년 당시 상황에 대한 정부의 대처방식과 공과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당시 상황이 국가부도에 이를 정도의 중차대한 지경이었음에 불구하고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사이에 충분한 정보교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시 김 대통령은 강 부총리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지 오래였다. 강 부총리는 97년 9월부터 “열린 경제로 가기 위한 국가과제”라는 제목으로 전국 순회강연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국경제는 펀더멘털이 튼튼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게 강연의 요지였다. 하지만 10월중순 이후 예정된 강연은 모두 취소해야만 했다. “한가한 소리 좀 그만하라”며 김 대통령이 중간에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 이 무렵 부터 김 대통령은 강 부총리 보다는 이경식 한은 총재나 홍재형 전 장관 등 다른 루트를 통해 경제상황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한은 등 일부 기관에는 "재경부 지시를 받지 말고 내 지시만 받으라"며 엄명을 내리기까지 했다. 김 대통령이 강 부총리를 어느 정도 불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대통령은 결국 11월19일 강 부총리를 전격 경질한다. 후임에는 임창렬 당시 통상산업부 장관이 임명됐다. 강 부총리는 밤샘 작업을 해가며 마련한 금융시장안정대책을 보고하기 위해 19일 오전 대통령 집무실에 들어섰으나 “이제 그만 쉬라”는 대통령의 통고를 받고 돌아서야만 했다. 이유야 어쨌든 IMF 구제금융 협의가 막 시작되는 시점에 경제사령탑이 교체됨에 따라 적지 않은 혼선이 빚어지게 된다. IMF 구제금융 신청사실 공표가 예정보다 이틀이나 늦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사흘 전인 16일 캉드쉬 총재와 강 부총리간의 비밀회동에서 양측은 ‘한국 정부가 구제금융 신청 사실을 19일 공식 발표하고, 다음날인 20일 IMF 실사단 제1진이 한국에 입국’하는 것으로 잠정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19일 취임한 임창렬 신임 부총리는 이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캉드쉬 총재와 합의한 IMF 구제금융 신청 사실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기자들이 “IMF에 지원을 요청할 계획은 없느냐”고 묻자 “우방국들이 지원해주기만 하면 IMF 도움 없이도 해결이 가능하다”며 엉뚱한 답을 내놓기 까지 했다. 재경원 실무진들은 당황했다. 누구보다 당혹스러워 한 것은 미국과 IMF측이었다. 워싱턴에서 비행기표까지 끊어놓고 출국준비를 하던 IMF 실사단 3명은 다시 짐을 풀어야만 했다. 다음날 오전 예정에 없던 루빈 미 재무장관의 성명이 튀어 나왔다. “한국이 현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금융체제를 강화할 수 있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행동을 신속하게 취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더 이상 꾸물대지 말고 빨리 IMF에 지원을 요청하라는 암묵적인 요구였다. 그렇다면 임 부총리는 왜 캉드쉬와 합의한 IMF행을 19일 발표하지 않았던 것일까? 임 부총리는 후일 이에 대해 “IMF행이 논의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날 발표해야 한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해명했다. 부총리에 임명된 당일 곧바로 금융시장안정대책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적절한 업무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 IMF 지원여부에 따라 하루에 수억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던 당시 상황에 비추어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실책이었다. 외환대란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정부의 정책집행시스템이 사실상 제 기능을 상실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임 부총리는 세부사항을 다시 보고받은 후 결국 합의한 날짜보다 이틀 늦은 21일 밤 IMF 구제금융 요청 사실을 대외에 공표하게 된다.(→)
- (한국경제 반세기)”위기의 도래”…외환대란①
- [이데일리 이종석기자] 1997년 12월3일. 우리 역사에 기록된 경제 국치일(國恥日)이다. 임창렬 당시 경제부총리와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밤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IMF 구제금융을 위한 정책이행각서에 서명했다. 이른바 “IMF체제”의 시작이었다. IMF체제는 국민생활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대마불사의 신화가 무너지면서 은행, 대기업 등이 줄줄이 문을 닫거나 통폐합됐고, 100만명 이상의 실업자가 한꺼번에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가계는 가계대로 얇아진 월급봉투에 맞추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만 했다. 불과 1년전 선진국 사교클럽이라는 OECD에 가입해 어깨를 으쓱대던 자부심은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온 국민의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가혹한 시련이 한국민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GET OUT OF KOREA. RIGHT NOW” 97년 외환위기 일지는 한보철강 부도에서 부터 출발한다. 신년 벽두, 한보철강이 5조원대의 부도를 낸 것을 시작으로 삼미 진로 뉴코아 등 대기업들의 부도가 연쇄적으로 이어졌다. 누적된 경영부실에 경기불황 까지 겹치면서 잘 나가던 대기업들이 잇따라 자금난에 내몰렸다. 7월15일 당시 재계 서열 8위였던 기아가 마침내 부도방지협약 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 사실상의 부도였다. 투자자들은 위기를 감지했고, 발빠른 선수들은 자금을 빼내가기 시작했다. 한보가 위기의 서막이었다면 기아는 클라이맥스였다.대외 여건도 악재투성이였다. 7월2일 태국 바트화가 폭락한데 이어 8월14일 인도네시아 루피아화가 붕락했고, 이어서 10월23일에는 홍콩증시가 대폭락했다. 특히 홍콩증시 폭락은 외환위기의 경계선을 넘나들던 한국시장에 치명타였다. 동남아 투자를 늘려왔던 종금사들과 이들을 상대로 금리장사를 해왔던 국내은행들은 10.23 홍콩사태를 계기로 결국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게 된다. 외국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려 동남아국가 채권을 매입하고 이를 다시 담보로 넣는 소위 레버리지 레포(REPO)거래를 해온 종금사들로서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동남아 사태로 인해 담보가치가 떨어져 부족분만큼 돈을 더 넣어야만 했지만 자금이 있을 리 없었다. 종전에는 시중에서 달러를 빌릴 수 있었지만 이미 은행들도 라인이 끊어진 상황이었다. 홍콩 사태의 파장은 즉각 반영됐다. 다음날인 24일 종합주가지수는 33.15포인트 폭락했다. 스탠더드앤푸어즈(S&P)는 이날 AA+(우수)였던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양호)로 한 단계 떨어뜨리며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사실상 외환위기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이었다. 이런 와중에 모건스탠리증권이 10월27일 전세계 투자가를 대상으로 한 장의 긴급 전문을 날렸다. “아시아지역에 투자된 자금을 회수하라. 즉시 팔아치우고 빠져 나오라”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대됐다. 다음날인 28일 종합주가지수가 또다시 35포인트 폭락하면서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500선이 붕괴됐다. 환율은 가격제한폭 까지 뛰어 올랐다. 당시 외국인투자자들의 한국 탈출은 엑소더스를 방불케 한다. 10월 한 달에만 무려 1조원 이상의 자금이 서울을 빠져나갔다. 상황이 악화되면서 “한국을 탈출하라”는 외국계 기관들의 경고 사이렌이 잇따라 울려대기 시작했다. 11월5일 미국계 블룸버그 통신이 “한국의 가용외환보유고는 20억달러에 불과하다”며 위기감을 조장했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등 세계 주요 언론들이 블룸버그를 인용해 한국의 경제위기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같은 날 저녁 홍콩페레그린증권이 한국경제의 운명을 가르는 결정타를 날린다. 이날 홍콩페레그린증권이 전세계에 뿌린 보고서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Get out of Korea. Right Now”이유 불문하고 지금 당장 한국에서 빠져 나오라는 급전이었다. ◇ 한달새 1조원 이상 빠져 나가외국계를 중심으로 경고사이렌이 잇따라 울려대고 있었지만 정작 한국 정부의 대응은 미온적이었다. 무엇이 잘못됐는 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 지, 도무지 감을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이었다.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IMF행을 포함한 대응책을 논의한 것은 블룸버그와 홍콩페레그린증권의 경고사이렌이 울린 직후인 11월7일이었다. 이날 김영삼 대통령은 강경식 부총리로 부터 “최악의 경우 IMF에 갈 수도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윤진식 청와대 비서관이 대통령과 면담해 “각하, 돈줄이 꽉 막혔습니다”며 직보를 올린 것도 바로 이 즈음이다. 상황을 보고받은 대통령은 다음날 이경식 한은 총재에게 확인전화를 걸었다. “이 총재. 갱제(경제)가 이래 가지고 되겠나?” “각하 큰일입니다. 나라가 부도나기 직전입니다” “그러면 우에 하노?” “미국은 돈 안줍니다. IMF에 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설마 IMF에 가기 까지야 하겠나..”라며 안이하게 생각했던 대통령은 이날 이 총재와의 통화 이후 “IMF로 가야 한다”로 생각을 바꾸게 된다. ("잃어버린 5년, 칼국수에서 IMF까지" 동아일보) 대통령의 결심은 11월14일 강 부총리의 청와대 보고 자리에서 표면화됐다. 김 대통령이 먼저 “나라가 결딴날 판국이다. IMF로 가라.”며 확답을 내려준 것이다.이로부터 일주일 후 정부는 캉드쉬 총재와의 비밀 협의를 거쳐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 요청하기에 이른다. <97년 외환위기 일지> - 1월23일 ; 한보철강 부도- 3~6월 ; 삼미 진로 등 대기업 연쇄 부도 - 7월2일 ; 태국 바트화 폭락 - 7월15일 ; 기아 사실상 부도, 협조융자 신청 - 8월14일 ;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폭락 - 8월25일 ; 정부 대외 금융기관 채무보증 약속 - 9월19일 ; 주가 700선 붕괴- 10월13일 ; 16개 종금사에 1조원 한은 특융 - 10월22일 ; 기아자동차 법정관리 신청- 10월23일 ; 홍콩증시 폭락 - 10월28일; 주가 500선 붕괴- 11월1일 ; 해태그룹 게열사 화의, 법정관리 신청- 11월4일 ; 뉴코아그룹 화의 신청- 11월5일 ; 블룸버그 “한국 가용외환보유고 20억달러” 보도 - 11월5일 ; 홍콩페레그린, “Get Out of Korea” 보고서 발송- 11월10일 ; 환율 사상처음 달러당 1000원선 돌파- 11월14일 ; 김영삼 대통령 IMF행 결심 - 11월16일 ; 캉드쉬 IMF총재 극비 방한, 구제금융 방안 논의 - 11월19일 ; 강경식 부총리 경질, 임창렬 신임 부총리 임명 - 11월20일 ; 스탠리 피셔 IMF 수석부총재 방한- 11월21일 ; IMF 구제금융 신청 공식 발표 - 11월23일 ; IMF 실사단 1진 입국- 12월3일 ; 대기성 차관제공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 - 12월5일 ; IMF, 1차 지원금 56억달러 제공 (→)
- (글로벌 워치)美 언론의 위기 대응법
- [이데일리 조용만기자] 10여년전 기자 초년병 시절.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참사…. 웬 대형사고가 그리 많은지. 취재하는 것 보다 훨씬 힘든 건 데스크 통과하기. 항상 듣는 질책은 도대체 기사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 소위 `야마`가 뭐냐는 것이다. "예전에도 위험 경고가 있었는데 유야무야 했다는데요""야! 그러면 야마가 한 눈에 팍 들어오게 써야지..예고된 인재구만"데스크는 공사를 시작하고, 허름한 작문은 어엿한 기사로 포장이 됐다. 문제는 가끔씩 데스크가 팩트와 주제를 침소봉대하는 데 있다. 기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로 `초를 치는` 것인데, 팩트를 앞지르는 `빙초산`이 쓰이는 경우도 없지 않다. 경제기사도 종종 과잉이 문제다. 조짐이 감지되면 `대란`과 `위기설`로 치고나가 이슈를 선점하는 식이다. 부실정리 과정은 환매대란, 신용대란, 카드대란으로 이어졌고 주택가격 상승은 전세대란으로 지면을 장식했다. 채권 만기도래가 집중되는 시기는 `0월 위기설`로 포장되기 일쑤였다.언론의 선제적 경고는 감시견 본연의 책무이기도 하다. "펀더멘털은 좋다"는 호언장담을 믿다가 IMF 경제 식민지를 경험한 국내언론이 위기 가능성에 경각심을 보일 필요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과유불급, 상습적이고 지나치다면 이로울 게 없다. 초유의 재난을 전하는 미국 언론의 대응은 우리와 좀 다르다. 위기 가능성을 충분히 언급하지만, 한편으로 냉정하고 실속도 챙긴다. `카트리나`는 사회적 이슈였지만 발발 초기부터 유가급등을 불러오며 경제적 관심사로 급부상했다. 참상과 피해규모가 드러나면서 인플레이션과 성장 둔화 경고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들은 피해규모가 불어나고 경제적 위기감이 고조되던 9월초에 `카트리나가 미국 경제에 이롭다`는 엉뚱한(?) 기사를 써댔다. 경제 펀더멘털이 튼튼해져서 웬만한 자연재난은 극복할 수 있고, 건설붐이 일면서 꺼져가던 부동산 불씨가 되살아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부시 대통령이 막대한 복구자금을 투입, 재난대응에 적극 나서면서 카트리나발(發) 리세션은 없다는 전망은 확신 수준으로 굳어져갔다. 월스트리트나 뉴욕타임스 등이 경제에 끼칠 위험에 대해서 눈을 돌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유가 문제와 함께 피해규모, 일자리 감소 등 다양한 내용을 다뤘지만 발빠르게 치고 나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국제 투자은행과 신용평가사, 유수 언론들은 그동안 3위 일체가 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누구보다 빨리 위기 가능성을 전파해왔다. 하지만 카트리나발 위기에 대해서는 단기적 충격이 있지만 좀 더 길게 볼 필요가 있다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카트리나 타격후 휴가를 접고 부랴부랴 복귀한 부시 대통령은 "허리케인 복구에 수년이 걸릴 것이며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월가 투자자들의 속내는?"복구에 수년이 걸리면 앞으로 몇 년간 지속적으로 투자가 이뤄진다는 얘기로군. 비축유를 풀면 유가는 떨어질 테고. 원래 자연재해란 게 길게 보면 득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뉴욕도 아니고 딥사우스라니" 카트리나가 덮친 남부 3개주가 미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에 불과하다. 초기 대응을 잘못해 정치적 위기를 맞은 부시는 끌어안고 있던 비축유를 푼다고 했다. 앞으로 정부가 투입할 복구비는 재산피해 규모를 웃돈다. 하락한 GDP는 복구작업이 진행되면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해진다. 단지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월가의 대변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신문외에 통신(다우존스) 주간지(배런스) 등을 통해 세계 금융시장과 투자자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단기적으로 부정적 영향이 있겠지만 월가는 장기적·긍정적 요인에 초점을 맞췄고 이들의 입장은 신문, 통신을 통해 충실히 전달됐다.카트리나 쇼크는 물가, 실업, 소비 등을 통해 지표에 꾸준히 반영되겠지만 미국 언론의 `사려깊은` 대응으로 금융시장에는 연착륙했다.유수 언론들이 실속을 차리면서도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신중하고 편중되지 않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월스트리트저널과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3대지 기사는 대부분 장문이다. 제목은 방향성을 가지되, 하나의 기사에서도 다양한 의견을 싣는다. 언론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신문이 기사에서 인용하는 취재원 수는 2명이 채 안된다. 뉴욕타임스가 인용하는 취재원은 10명이 넘는다. 미국 언론계에는 하나의 기사에 최소한 2명 이상의 취재원을 활용하도록 하는 `투 소스 원칙`이 자리잡고 있다. 1~2명의 전문가로 `위기론`을 대변하기는 수월하다. 하지만 10명이 넘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한 기사가 한쪽으로 방향을 잡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어떤가. 기업도 1차 부도는 보도를 삼가던 시절, 외환위기때 우리 언론은 `국가부도 임박`이라고 썼다. 앞서 치고 나가면 됐지, 누구 좋은 일 시키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후에도 조짐이 보이면 내쳐 달렸다가 중간에 상황이 진정되면 "어? 여기가 어디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대란과 위기가 현실화되지 않으면 언론의 사전 경고 덕분이라고 우기는 `아전인수`도 있었다. 참여정부 들어서는 정치적 이유로 경제위기를 조장한다며 대통령과 보수 언론간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불신만 깊어졌고 나아진 것은 없다. 그만큼 겪었으니 우리 언론의 위기 대응 역량도 향상될 때가 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