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끝나자 고3 교실은 ‘텅텅’…교사·학생 모두 시간 때우기

수시 합격 학생들 가정학습 이유로 등교 피해
가정학습 모두 소진한 학생은 병결·조퇴 남용
교사들도 불만 “수업일수는 채워야 하는데...”
“대학연계 과정 등 학사운영 조정 필요” 조언도
  • 등록 2022-11-29 오후 4:20:00

    수정 2022-11-29 오후 9:52:18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가정학습 여분을 모두 써버려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나오고 있는데 시간 낭비하는 것 같다.”

29일 이미 수시 전형으로 대학에 합격한 이모(18)양은 얼굴을 찌푸리며 이같이 말했다. 학교에 나오면 교실에 있는 친구들은 10명 남짓. 등교부터 4교시까지 학교에선 아무런 수업도 진행하지 않는다는 게 이양의 설명이다. 이양은 “선생님들도 힘들어 보이시고 우리도 지겹다. 차라리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다른 것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난 뒤의 교실은 수시전형으로 합격한 학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썰렁한 곳이 많다. 고3 학생 중 가정학습·체험학습 등을 이유로 등교를 하지 않는 학생이 많아서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는 학칙에 따라 수업일수(190일)의 30%(57일) 범위에서 교외체험학습(가정학습·가족여행 포함)을 허용할 수 있다. 이미 허용된 가정학습 일수를 모두 소진한 학생들만 울며 겨자먹기로 등교하고 있는 셈이다.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지난 17일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한 수험생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교사도 학생도 힘든 수업시간

어쩔 수 없이 등교한 학생들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경기 지역 고3 김모(18)양은 “등교하지 않는 친구들은 운전면허를 따거나 알바를 하는 경우도 있다”며 “학교에 오면 다들 엎드려 자거나 유튜브만 보는데 왜 등교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일부 학생들은 조퇴·병결을 통해 등교를 피하고 있다. 경기 지역에서 고3 아들을 키우는 김모(55)씨는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며 아프지도 않은데 병원 가서 진단서를 떼어왔다”며 “화가 나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수능까지 다 치른 상태라 참고 있다”라고 불만을 표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규정하고 있는 수업일수(190일)를 채우기 위해 학사운영을 이어가고 있지만, 교사들도 힘들다는 반응이다. 충남의 한 고교에서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이모 교사는 “학생들의 약 40% 정도가 체험학습이나 가정학습으로 등교하지 않고 있고 일부 학생들은 대학별고사인 면접 대비를 위해 특별실에 있는 상황”이라며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하는 것도 이상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교과 수업을 진행하기 힘든 상황에서 현장 교사들은 각자도생식으로 수업시간을 때우고 있다. 경북의 한 고교 3학년 담임 박모 교사는 “교과 수업 때 도저히 할 게 없어 학교 예산을 어떻게든 끌어와 열쇠고리 만들기 같은 활동을 하고 있다”며 “학생들도 수업시간만 버티자는 마음”이라고 했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에서 2023학년도 수시모집 논술고사를 마친 수험생들이 학교를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교육부 대책에 현장은 냉담

대학 신입생 선발 비중이 수시모집에 편중되면서 수능 이후 고3 수업이 파행을 겪고 있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의 얘긴 아니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 8일 ‘수능 이후 학사운영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등교수업 원칙 하에 2학기 고3 학생들에게 금융교육·진로체험·대학탐방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라는 권고가 골자다.

하지만 현장 교사들은 교육부의 이러한 대책이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경기 지역 고3 담임 서모 교사는 “아이들은 학교에 이미 마음이 뜬 상태인데 무엇을 하든 수업 자체를 듣지 않을 것”이라며 “차라리 예산 지원을 대폭 늘려 체험활동의 질을 제고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했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사운영 조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수업일수에 묶여 있다보니 각급 학교에서는 제한적 활동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수업일수 조정도 고려해볼만 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육부가 좀 더 전향적으로 학사운영을 지원해야 한다”며 “대학과 협의해 학점을 미리 듣는 프로그램 등을 개발하면 수시전형에 합격한 학생들의 호응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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