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WP)는 23일(현지시간) “전쟁 초반에만 해도 러시아 경제가 오랜 기간 버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6개월이 지난 현재 러시아는 여전히 건재한 모습”이라며 이같이 보도했다. 그러면서 “서방의 제재가 장기적으로는 러시아 경제에 큰 피해를 입힐 것이라는 전망에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동의하고 있지만, 단기적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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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 부과 초기 폭락했던 루블화 가치는 비교적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러시아 내 실업률도 눈에 띄게 급등하지 않았다. 또 교역 통로가 상당 부분 차단됐음에도 친(親)러 동맹국들에게 석유·가스를 수출하며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 튀르키예와 중국과의 교역이 올 들어 급증한 것이 대표 사례다.
경제지표 측면에서 살펴보면 지난 12일 발표된 러시아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은 전년 동기대비 4% 감소했다. 이는 전문가 예상치인 마이너스(-) 4.7%보다 양호한 수치다. 올해 경제성장률 역시 국제통화기금(IMF)은 6% 위축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개전 초기 경제학자들이 예상한 10% 후퇴를 크게 상회한다.
물론 피해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고학력자들과 신흥 부호들이 대거 해외로 이주했고, 해외와 교류가 끊긴 기업이나 제조 공장에선 대규모 구조조정 및 임금삭감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지방 도시에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제재로 경제에 구멍이 뚫리고(crater) 휘청거리고(reel) 있다”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주장과는 다른 모습이라고 WP는 지적했다. 최소한 표면적으로는 러시아 경제가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붕괴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 스스로도 올 여름 축제, 친정부 음악회, 어린이를 위한 여름 군국주의 군사 캠프 등을 개최하며 서방의 경제 제재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있다. 아울러 제재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오히려 유럽에서 더 크게 나타나고 있다. 스페인 IE 비즈니스 스쿨의 경제학자 막심 미로노프는 “제재가 확실히 효과가 있긴 하지만 6개월 전 모두가 기대하던 것보다는 훨씬 더디다”고 진단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유럽 경제가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에도 러시아 경제에 확실한 타격을 입히려면 유럽연합(EU)이 러시아의 석유·가스 수입을 전면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수입을 지속하는한 에너지는 러시아에게 있어 큰 무기이자 생명줄이 되기 때문이다. 국제전략연구소의 제재 전문가인 마리아 샤기나 연구원은 “처음부터 러시아 석유에 제재를 가했으면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서방의 제재 부과 이후 러시아의 경제적 피해가 크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예일대학교 경제학자들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제재는 러시아 경제에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 러시아 경제가 회복한다는 패배주의적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러시아 경제는 모든 면에서 혼란에 빠졌으며, 지금은 제재를 완화할 때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러시아 정부의 재정적자가 GDP의 8%에 달하는 9000억루블을 기록한 것도 제재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아직까진 러시아가 제재 부과 전에 확보해 둔 현금으로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샤기나 연구원은 설명했다.
제재의 장기 영향에 대해서는 큰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데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의견을 같이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정치학자인 일랴 마트베프는 “선진국과 러시아 간 기술 격차는 이미 오랜 기간 확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협력이 사라지고 수십만명의 고숙련 전문가들이 나라를 떠나버려 더이상 혁신과 기술 발전은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