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리포트)만삭의 아내 울린 전세대란

  • 등록 2006-09-12 오후 6:21:09

    수정 2006-09-12 오후 6:21:09

[이데일리 이정훈기자] `전세대란`이라고 합니다. 얼마전 이데일리에서도 보도했듯이 8.31대책 세울 때부터 어느정도 예견됐었고, 또 간간이 듣긴 했지만 지금처럼 심각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경제부 이정훈 기자는 만삭의 아내와 전쟁같은 전세대란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들어보실까요.

세상 물정에 그리 밝지 않은 제 얘기 하나 하겠습니다. 다소 부끄럽고 민망한 얘기지만, 하소연도 할 겸 저같은 피해자가 없었으면 하고 글을 쓸 엄두를 내 봅니다.

저는 얼마전까지 서울 동쪽 끝자락에 있는 도봉구 쌍문동의 자그마한 아파트에 살고 있던 전세 세입자였습니다.

이달중에 전세계약 기간도 끝나고 10월이면 새로 아기도 태어날 예정이라 돈을 좀 보태 조금 큰 전세 아파트로 옮기려고 두 달 전부터 집 근처 아파트들을 돌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전세물건이 많지도 않을 뿐더러 그나마 제가 가진 돈과 원하는 평수에 맞는 마땅한 아파트가 좀처럼 나오지 않더군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저희가 점찍어 둔 아파트의 전세가격은 한 달 사이에 2000만원이나 올랐더군요.

돈도 부족하게 됐지만, 돈을 더 구하더라도 물건 자체가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더군요. 게다가 중개업소에서는 "전세물건이 귀하니 1000만원씩 웃돈 주고 채가는 사람도 있더라"고 하더군요.

결국 중개업소만 믿고 기다리기엔 불안하고 시간도 촉박해 누님이 살고 계신 경기도 의정부쪽으로 눈을 돌렸는데, 거기 사정도 서울과 마찬가지더군요.

그러던 차에 마침 한 신규분양 주상복합 아파트에 전세가 나왔다는 얘길 듣고 급히 달려 갔습니다. 새 집이니 당연히 깨끗하기도 하고 도봉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거실 풍경도 맘에 들었습니다.

집주인이 은행에서 중도금 대출을 꽤 끌어왔고 아직 잔금을 치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경쓰였지만, 저에게서 받는 전세금으로 잔금을 마저 치르고 대출도 상당부분 상환할 수 있으니 `나머지 2000만원 정도 구하지 못할까` 싶었죠.

`혹시나`하는 아내를 설득했죠. 다른 곳에서 전세 구하는 것도 어려웠고, 입주하고 나면 잘못돼도 전세금은 보호된다 생각했죠. "주인분이 믿을 만하고 요즘엔 대부분 대출끼고 분양받는 거죠"라는 중개업자 얘기도 힘(?)이 됐죠.

그렇게 이사갈 곳을 구했다는 만족감에 하루하루, 어느덧 이삿날이 됐습니다. 아내가 이삿짐센터 분들과 짐을 꾸리는 사이 잔금치를 돈을 수표로 바꾸던 제가 전화가 왔습니다.
집주인이 중도금 대출을 상환활 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홀로서기 2년차인 전 당황했지만, 이미 짐을 다 꾸린 아내를 안심시키고 집주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집주인도 고의가 아니라면 미안해했지만, 당장 어찌해야할지 몰라 하더군요. 주인은 연체이자까지 붙어 3000만원을 구할 대책이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현재 살고 있는 집도 대부분 담보로 잡혀있고 제게서 받은 계약금도 다 써버렸다는 겁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건설회사에서는 대출상환 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잔금을 치뤘어도 열쇠를 내주지 않았을 거라고 하더군요. 전 집주인과의 계약을 파기하기로 합의하고 아내에게 전화해서 싸놓은 짐을 이삿짐센터 창고에 넣자고 했습니다.

만삭인 아내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위로는 했지만, 저 역시 불안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은 전세 구하기가 더 힘들다는데 이제 어쩌나` 그 생각 뿐이었지요.

짐은 창고로 보내고 아내는 누님댁에서 쉬게 했습니다. 그리곤 의정부와 쌍문동 일대의 중개업소를 돌아 다니며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전셋집을 구하러 다녔지요.

물론 처음에 걱정했듯이 쉽게 집이 구해질리 없었지요. 쌍문동에서는 아파트는 물론 빌라, 다세대 어느 것 하나 물건이 없다더군요.

풀이 죽은 채로 그렇게 헤매다 의정부 중개업소에서 반가운 전화를 받았지요. 지금 막 전세물건이 하나 나왔다고. 10년된 아파트였는데, 곧장 달려가 집을 구경하고 곧바로 주인과 통화해 가계약을 해버렸습니다.

당초 옮기려던 집보다 평수가 크고 계약금도 못받고 있어서 이 집에 들어가려고 저는 대출을 받기로 했습니다.

저희는 다음주 금요일에 그 집으로 이사갑니다. 지금은 부부가 함께 누님댁에서 얹혀살고 있구요. 그래도 `계약파기`라는 충격보다 `전세대란 가운데 이렇게 빨리 집을 얻었다`는 기쁨에 웃고 지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하루하루 전세가격은 계속 치솟기만 하고, 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고, 가진 돈이나 시간은 제한돼 있고. 이런 기억들 다신 경험하기 싫습니다.

전세대란, 이 참에 확실히 실감했습니다.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을 듯 합니다. 기자야 그렇다치고 만삭의 아내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요?

마침 어제 경제부총리는 처음으로 전세대란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현장조사를 지시했고, 오늘은 필요할 경우 여러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서민들이 저와 같은 고생을, 아니 그 이상의 고생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실효성있는 대책도 없으면서 뒷북만 치는 정부의 이런 `립 서비스`만으로 어디 다 위로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데일리
추천 뉴스by Taboola

당신을 위한
맞춤 뉴스by Dable

소셜 댓글

많이 본 뉴스

바이오 투자 길라잡이 팜이데일리

왼쪽 오른쪽

스무살의 설레임 스냅타임

왼쪽 오른쪽

재미에 지식을 더하다 영상+

왼쪽 오른쪽

두근두근 핫포토

  • '집중'
  • 사실은 인형?
  • 왕 무시~
  • 박결, 손 무슨 일?
왼쪽 오른쪽

04517 서울시 중구 통일로 92 케이지타워 18F, 19F 이데일리

대표전화 02-3772-0114 I 이메일 webmaster@edaily.co.krI 사업자번호 107-81-75795

등록번호 서울 아 00090 I 등록일자 2005.10.25 I 회장 곽재선 I 발행·편집인 이익원

ⓒ 이데일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