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KIKO는 惡이기만 한 걸까?

  • 등록 2008-05-22 오전 11:52:20

    수정 2008-05-22 오후 2:07:59

[이데일리 김현동기자] 환헤지용 파생상품인 `키코(KIKO·Knock-In, Knock-out)`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투기세력보다 나쁜 S기 세력` 발언 이후부터다. `S기 세력`이란 익히 알려진 것처럼 일방적인 환율하락 가능성을 내세워 중소기업에 환헤지 상품을 판매한 `사기세력`을 뜻한다. 물론 여기서 사기세력이란 은행을 겨냥한 말이다.

강 장관의 발언이 나온 직후, 환헤지 상품에 가입했다가 손실을 본 기업들은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고, 금감원은 `키코` 때문에 수출기업들이 본 손실 규모가 지난 3월말 현재 2조 5000억원 대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올 1분기 결산보고서를 제출한 기업들 중에서 `키코`로 인해 적자로 돌아선 기업들도 속출했다. ☞관련기사 2008.05.16 `그 놈의 통화옵션 때문에`..적자 기업 속출

급기야 금감원은 지난 20일 은행과 수출기업간 파생상품 계약 체결시 거래정보를 은행연합회에 집중하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같은 날 중소기업중앙회는 `키코`가 불공정 계약조건을 담고 있으며, 이를 판매한 은행들에 대해 손실보전을 촉구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2008-05-20 수출中企 "환헤지 하다 망할 지경"

◇키코=惡, 은행=惡의 축?

이러다 보니 `키코`는 악(惡)이고, 이를 판매한 은행들은 `악의 축`으로 지목됐다.

`키코`는 달러/원 환율이 특정 기간(보통 1년) 동안 미리 설정한 상하단 구간에서만 움직이면, 기업이 시장가격보다 높은 환율로 달러를 팔 수 있게 해줌으로써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덜 수 있도록 만들어진 환헤지 상품이다.

그렇지만 환율이 녹인(Knock In) 이상으로 오를 경우에는, 약정액의 2~3배에 달하는 달러를 시장가격보다 훨씬 낮은 약정환율로 은행에 팔아야 한다. 환율이 크게 내려 녹아웃(Knock Out)을 벗어날 때에는 계약이 해지돼 환헤지 기회가 사라진다.

`키코`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떨어지기만 할 것 같았던 원화환율이 예상을 깨고 크게 상승하면서, 파생상품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환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다는 은행 말을 믿고서 `키코`를 구매했는데, 되레 손실이 발생했으니 기업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밖에 없다.

은행이 수수료 수입(보통 약정금액의 0.01%)에만 집착해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환율의 등락에 따라 웃고 우는 수출 기업들이 환헤지 상품이 지닌 위험성을 몰랐다는 것은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환헤지 상품에 가입하면서 어떤 위험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면, 은행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라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 자료: 한국은행
기획재정부는 `키코`를 환율하락 가능성에만 초점을 둔 투기적 상품이라고 몰아부치고 있다. 그러나 `키코`는 환율의 방향성이 아니라,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하고서 만들어진 변동성에 투자하는 상품이다.

`키코` 상품이 팔리기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다. 당시 1100원대였던 달러/원 환율은 이후 몇년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좌측 그림 참고) 특히 2004년에는 원자재 대란과 함께 원화환율이 1000원대 초반으로 추락하면서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몇년간은 글로벌 달러 약세 기조로 인해 원화가치가 끊임없이 올랐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환리스크를 헤지하려는 기업의 니즈에 맞춰 은행들은 `키코`와 같은 환헤지 상품을 적극적으로 판매했다.

기본적으로 파생상품은 환율 등과 같은 불확실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금융상품이다. 경제사학자이자 금융전문가인 피터 번스타인의 말처럼, 파생상품은 시대의 산물이지 변동성을 키우는 악의 세력이 아니다.

◇키코의 `잃어버린 고리`=환차익

현재 `키코`에 대한 비난은 환차손에 집중돼 있다. 수출기업들이 `키코` 상품 가입으로 막대한 환차손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키코`로 인해 막대한 환차손을 입게 된 수출기업들은 동시에 환율상승 덕분에 환차익도 얻고 있다.

오일탱크를 수출하는 성진지오텍은 올 1분기에 776억원의 파생상품거래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원화환율 950원의 보장환율 수준에서 `키코`에 가입했고, 올해 들어 환율이 950원을 넘어서면서 자기자본의 50%에 육박하는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성진지오텍이 실제로 부담해야 하는 거래손실은 10억원에 불과하다. 성진지오텍은 1분기 중 발생한 통화옵션거래에서 27억원의 이익과 함께 손실도 37억원이 났다. 회사가 현금으로 부담해야 하는 통화옵션거래 순손실은 10억원이라는 셈이다. 물론 739억원의 통화옵션평가손실이 발생했으나, 이는 만기가 2009년과 2010년인 통화옵션 계약분까지 포함한 전체 통화옵션거래에 대한 장부상의 평가손실로, 실제로 현금이 지출되는 부분은 아니다.

성진지오텍(051310)은 만약 원화환율이 향후에도 1040원 수준을 유지한다면 납품가격이 하락해 환율상승에 따른 환차익을 기대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원화환율 900원 기준으로 올해 수출목표를 4300억원으로 설정했는데, 환율 상승으로 수출목표치를 4700억원으로 상향조정했다"고 말했다.

환위험을 헤지하기 위해 가입한 통화옵션 거래에서 손실이 발생했지만, 동시에 환율 상승 덕분에 통화옵션 거래에 따른 환차손을 상쇄할 수 있을 만큼의 환차익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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