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상은 왜 80여 년간 고택 대청마루 밑에 누워 있을까[여행]

문익점 선생 후손이 이룬 인흥마을
자식들도 몰랐던 독립운동가 문영박
집수리 중 나온 문서 보고서야 알아
대구 전체 조망 가능한 앞산전망대
일제가 없앤 대견사…다시 재건하다
전망 하나로 떠오른 풍차·하늘전망대
  • 등록 2023-05-19 오전 6:00:00

    수정 2023-05-23 오전 10:12:21

수백당 대청마루 아래 누워 있는 문인석
[대구=이데일리 김명상 기자] 대구는 외지인들에게 적지 않은 오해를 받고 있다. 거대한 쇼핑몰, 높은 빌딩, 빼곡한 아파트로 가득한 대도시 이미지가 커 호젓함과는 거리가 있다는 편견이다. 그러나 조금만 대구 도심을 벗어나도 숨어 있는 자연친화적 속살이 드러난다. SNS에 올려도 좋을 유서 깊고 예쁜 마을과 수려한 대구의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곳곳에 숨어 있다. 명소들을 다니면서 대구에 가졌던 콘크리트 도시라는 이미지는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선조들의 애민·애국정신 깃든 ‘인흥마을’

문익점 선생의 18대손이 터를 잡아 만든 인흥마을
달성군에 자리한 ‘인흥마을’(남평문씨본리세거지)에 가면 큰 동상이 하나 보인다. 주인공은 1363년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온 인물인 문익점 선생. 인흥마을은 문익점 선생의 18대손이 1840년대에 터를 잡아 만든 마을로 남평 문씨 일족이 모여 살던 집성촌이다. 지금은 조선 후기의 전통가옥을 포함해 70여 채의 기와집이 한옥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얇은 삼베옷을 입고 추위에 떨던 백성을 따스하게 해준 목화의 하얀 물결이 넘실대는 마을. 여름이면 능소화가 담벼락을 수놓고 마을 앞 연못 인흥원에는 연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주머니에서 절로 카메라를 꺼내게 만드는 정경이다.

독립운동가인 수봉 문영박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지은 수백당
이곳의 대표 건물은 입구에 있는 정자 ‘수백당’이다. 독립운동가인 수봉 문영박 선생(1897~1930)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1936년에 지은 것으로 손님을 맞이하거나 문중의 모임 장소로 쓰였다. 특이한 것은 대청마루 아래 놓인 문인석(능 앞에 세우는 사람의 형상을 한 입석상)이다. 지금까지 80여 년째 쓰지 않고 보관 중인데 문영박 선생이 병석에 들자 후손들이 장례를 위해 마련했으나 선생이 무덤을 소박하게 하라고 지시해서 세우지 못하고 지금까지 누워만 있다고 한다.

대구 인흥마을 앞에 있는 문익점 선생 동상
대구는 애국지사의 성지이기도 하다. 대구 형무소에서 순국해 서훈 받은 독립운동가가 202명. 악명 높던 서울 서대문형무소 순국 서훈자(175명)보다 많다. 그중에서 문영박 선생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시기부터 1930년에 별세할 때까지 13년간 극비리에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지원하며 독립운동을 도운 인물이다. 후손들은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저 문영박 선생이 인재 양성을 위해 많은 책을 사들였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왜 책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샀는지도 베일에 싸여 있었다.

비밀은 나중에 알려졌다. 1963년 경남 창원의 한 가옥 천장을 뜯었는데 낡은 보자기가 발견된 것. 193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작성한 독립운동 관련 문서가 세상에 나타난 순간이었다. 보자기를 숨긴 이는 독립지사 이교재였다. 국내에서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벌이다 일제에 붙잡혀 부산 형무소에서 복역 후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 전 급히 임시정부의 문서를 집 천장에 숨겼는데 이것이 30여 년 후 집수리 과정에서 드러난 것이다.

보자기 안에는 수신처가 대구 달성 인흥마을로 표기된 문서가 있었다. 문영박 선생의 사후 임시정부가 조의를 표한 추조문이었다. 추조문에선 문 선생을 ‘대한국춘추주옹’(大韓國春秋主翁)이라 높여 불렀는데 ‘대한민국 역사의 주인이 되는 어른’이란 뜻이다.

인흥마을의 고즈넉한 흙담 골목
문서는 발송 32년 만에 인흥마을에 살던 문 선생의 아들에게 전달됐다. 편지를 받고서야 가족들은 고인이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문영박 선생은 중국에서 책을 구입하는 방법으로 일제의 눈을 피해 독립자금을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문영박 선생의 공을 기려 1980년에 건국포장,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목화를 가져와 백성을 따뜻하게 한 문익점 선생과 독립운동가 문영박 선생의 흔적이 짙은 인흥마을. 고즈넉한 정취로 가득한 이곳의 이야기를 알고 나면 누구나 선조들의 깊은 은혜에 감사를 표하게 될 것이다.

◆해발 510m 산 정상에 전망대 품은 ‘앞산’

앞산전망대에서 대구 시내를 바라보는 외국인 관광객
대구광역시 남쪽에 있는 앞산(해발 660m)은 특이한 이름이 궁금증을 더하는 산이다. 좋은 이름 대신 왜 앞산이라고 불리는지 묻자 동행한 문화관광해설사는 “경상감영의 앞에 있는 산이라서 앞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름만 들으면 작은 언덕 같은 느낌이 들지만 케이블카가 놓인 번듯한 산이다. 1974년에 개통된 앞산 케이블카는 남산, 설악산에 이은 국내 3호 케이블카다. MZ세대가 태어나기도 전에 생겼지만 해발 180m 정류장을 출발해 510m 높이의 전망대까지 5분 만에 닿을 만큼 힘이 넘친다.

토끼 조형물이 있는 앞산전망대
도착 후 조금만 걸어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계묘년을 맞아 전망대 가운데에는 노란색 토끼조형물을 제작해 놓았다. ‘건강하세요’, ‘소원성취’, ‘부자되세요’ 등 각종 소원 문구를 새긴 토끼조형물은 인기 포토존이기도 하다. 전망대 주변을 둘러보면 가릴 것 하나 없는 도시 모습이 빼곡하게 펼쳐진다. 정면의 팔공산과 치솟은 건물이 대도시 대구의 번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서쪽 끝으로 눈을 돌리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비슬산 참꽃군락지와 대견사
앞산은 비슬산(해발 1084m)에서 뻗어 내려온 줄기에 있다. 비슬산은 산 정상의 바위 모양이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산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서기 810년에 창건된 ‘대견사’가 있다. ‘크게 보고, 크게 깨우친다’는 의미를 담은 대견사는 고려시대에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 스님이 주지로 22년간 재임한 절이기도 하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적멸보궁이라 따로 불상을 모시고 있지 않지만 부처님의 모습을 닮은 사찰 앞 ‘부처바위’가 인간세계를 굽어살피고 있다.

원래 사찰은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폐사됐다. 당시 대견사의 대웅전이 일본 쪽으로 향해 일본의 기를 꺾는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조선총독부가 강제로 없애 버린 것이다. 석탑만 남은 폐허에 달성군이 2014년에 새로 건물을 지었고, 이후 부처님의 가호가 깃들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많은 이가 찾는 기도 도량으로 떠올랐다.

대견사를 품은 비슬산의 참꽃군락지
봄의 비슬산은 꽃 대궐이다. 중생을 구제하려는 부처님의 마음을 닮았는지 산 정상은 넓디넓고, 봄마다 온통 만개한 참꽃이 뒤덮는다. 비슬산을 보노라면 ‘진분홍 천상화원’이라는 말이 그냥 붙은 수식어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눈이 황홀해진다…화산마을 풍차전망대

이국적인 분위기의 풍차전망
대구 북쪽에 자리한 군위군은 7월 1일부터 대구시에 편입된다. 군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 828m의 화산이다. 이곳에서 커다란 카메라를 든 사진가들이 즐겨 찾는 곳은 100여명의 주민이 모인 화산마을이다. 화전민들이 일군 작은 마을로, 고랭지배추 생산지로 알려진 이 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주변에 있는 풍차전망대와 하늘전망대 때문이다.

전망대로 가는 길은 무척 구불구불하고 험난해서 운전 시 주의해야 한다. 좁고 아슬아슬한 길을 고생해서 올라가면 방문객의 수고에 보상이라도 하듯 빨간 지붕의 풍차가 보인다. 이국적인 풍차 주변에는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서 보는 주변 풍광이 일품이다. 산지 마을 특성상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많지만 치매 환자가 거의 없다고 한다. 주민들은 마을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가진 치유의 힘 덕분이라고 믿는다.

수려한 풍광을 자랑하는 군위호 주변 풍경
멀리 보이는 푸른 호수는 2010년 군위 댐 건설로 생긴 군위호다. 인공호수지만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의 백미라 해도 무방할 만큼 아름답다. 빨간 풍차와 함께 파도치듯 일렁이는 군위호 주변 산세의 장관을 담으려는 사진사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하늘전망대는 풍차전망대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는데 차로 1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징비록을 쓴 서애 류성룡 선생은 화산의 풍경에 반한 나머지 칠언절구의 ‘옥정영원’이라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시는 하늘전망대 옆 바위에 원문으로 새겨져 있으며 서애 선생이 받은 감흥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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