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득 칼럼]구도자의 길, 명예회복의 길

  • 등록 2023-07-07 오전 5:00:00

    수정 2023-07-07 오전 5:00:00

놀라움을 넘어 ‘충격’이었다. 1974년 초겨울, 조그만 흑백TV 화면을 타고 전해진 대학입학 예비고사 전국 수석 학생의 인터뷰 소식을 접했을 때 동급생 필자가 느낀 감정은 그랬다. 장래 포부를 묻는 질문에 수재 중의 수재들이 내놓은 그동안의 답들과 전혀 다른 답변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훌륭한 법조인, 과학자,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말이 왜 안 나왔을까. 무슨 이유로 외롭고 힘든 역사학도의 길을 가겠다고 했을까. 공부로 이름을 떨치고 싶었던 전국의 ‘범생이’ 수험생들에게 그의 희망은 뜻밖의 길이었다.

반백년의 시간이 흐른 2023년. 희미한 기억 속에서 찾아낸 그 학생은 국내 사학계의 거목으로 우뚝 서 있었다. 발해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존경받는 송기호 서울대 국사학과 석좌교수. 그가 전인미답의 길을 걸으며 쌓은 학문적 성과와 업적이 얼마나 찬사와 경외의 대상이 됐을지는 긴 설명이 필요치 않을 듯하다. 발해의 영토가 북한과 중국 일대에 퍼져 있어 현지 답사는 물론 연구 주제마다 난관이 수두룩했을 테니 물질적 풍요는 고사하고 인생 여정 자체가 구도자의 길 같았을 것이다. 존경과 함께 ‘길 없는 길’을 걸은 송 교수에 생각이 닿은 것은 “지도도 나침반도 없는, 길 없는 길을 가겠다”고 한 조국 전 법무장관의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서다.

자녀입시 비리 등 크고 작은 범죄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데 이어 서울대 교수직에서 파면당한 후에도 뉴스를 몰고 다니는 그와 송 석좌교수의 발자취는 비교 대상이 못 된다. 서로 부딪칠 일도, 얼굴 붉힐 일도 전혀 없는 구도자 학자와 권력 지향적 현실 참여 교수의 제각각 ‘마이 웨이’다. 하지만 여러 논란을 다 떠나 그의 본업은 교직이다. 학문의 길을 밝히고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주는 게 본분이다. 그런 일을 하라고 서울대는 ‘교수’의 영예를 그에게 안겨주고 월급도 꼬박꼬박 챙겨주었다. 2019년 12월 불구속기소되고 1개월 후인 2020년 1월 직위해제됐지만 강의를 하지 않은 그에게 지난 6월 파면될 때까지 1억원이 넘는 급여를 지급했다. 다른 이유로 기소됐던 서울대 교수들보다 징계 처분까지 걸린 기간(928일)이 7배가 넘어 징계마저 특혜를 받느냐는 비판이 꼬리를 물었다. 이런 그가 내년 4월 총선 출마 여부로 또 뉴스의 중심에 섰다. 각종 여론 조사에서 반대 의견이 상당한 것과 달리 정치권에는 조 전 장관이 꼭 출마해 명예를 회복하겠다고 벼르는 중이라는 관측이 파다하다.

그러나 ‘위리안치(圍籬安置)된 극수(棘囚)’라는 탄식이 그의 끓어오르는 분노와 한을 충분히 짐작케 했지만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과 지금의 처지를 되짚어 보지 않으면 안 된다. 환호하는 지지자들의 함성을 조금만 뒤로 물려도 세상은 그를 ‘위선’ ‘내로남불’의 대명사로 기억하는 민심이 훨씬 우세해서다. 부인 정경심 교수의 거듭된 범행 부인, 의전원 입학 허가 취소에 반발하며 소송을 건 것도 모자라 여기서 패하자 바로 항소한 딸 조민 등 가족의 낯 두꺼운 행각도 ‘가붕게’(가게 붕어 개구리)보통 사람들의 뇌리엔 선명하다.

그가 명예회복을 한다며 국회의원 배지를 탐한다면 이는 추한 욕심이다. 나라와 지역을 위해 봉사할 자리가 왜 한풀이와 입신 영달의 수단으로 쓰여야 하나. 드라이버 티 샷의 자세가 조금만 달라져도 골프공은 엉뚱한 곳에 처박힌다. 하물며 잘못된 생각을 갖고 총선 티 박스에 올라 표에 손을 내민다면 나라도, 그도 제대로 될 리 만무다. 조 전 장관은 사립학교 재단을 운영하는 지역 명망가 집안 출신이다. 출사표를 던지기 전 일제 강점기에 구국의 일념으로 미래 세대 교육에 헌신했던 선각자들의 일생을 참고해 주면 좋겠다. ‘가붕게’ 민초들이 넘보지 못할 자산을 두루 갖춘 그가 정치판의 불쏘시개로 돌변해 천박한 언어와 거짓말을 달고 다닌다면 국민 모두의 큰 손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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