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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 이데일리 SPN 송지훈기자] 허정무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은 축구인들 사이에서 '승부사'로 불린다. 평소에는 온화하면서도 넉넉한 인심을 자랑하지만 중요한 순간이나 결단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누구보다도 냉철한 인물로 변신하는 까닭이다.
승부사적인 면모가 빛을 발한 대표적인 예가 2010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 3차예선을 앞두고 지휘봉을 잡은 허정무 감독은 과감한 전력 개편을 통해 대표팀의 구성을 상당 부분 바꿔놓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무리한 승부수', '과욕이 부른 실수' 등 비난이 적지 않았지만 결국 허정무호는 새 얼굴들을 바탕으로 아시아지역예선을 무패로 통과하는 성과를 이뤘다.
1차 목표를 달성한 허정무 감독은 이제 '본선 16강'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위해 어떤 도전을 준비하고 있을까. 남아공 현지 답사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대표팀 담금질을 준비 중인 허 감독을 14일 오전 이데일리가 만났다. 참고로 남아공 답사 이후 허정무 감독이 국내외를 통틀어 언론사의 독대를 허락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먼저 허정무 감독은 최근 축구계의 이슈로 떠오른 이동국(전북) 재발탁 여부와 관련해 "기대감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숨김 없는 속내를 드러냈다. 허 감독은 "이동국에 대해 쓴 소리를 많이 한 것은 나름의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라며 "그럴 필요가 없었다면 애초에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싫은 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충고도 들려줬다. 선수의 태도 변화와 그에 따른 성장을 기대하고 있음을 드러낸 대목이다.
아울러 조재진, 설기현, 최성국, 차두리 등 이른바 '올드보이'로 불리는 선수들에 대해서도 "기존 선수들을 능가하는 경쟁력을 보여주기만 한다면 언제든 선발할 의향이 있다"며 대표팀 구성과 관련해 정해진 틀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허 감독은 한때 불거진 '외국인 감독설'에 대해서도 당당히 맞대응할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외국인 감독과 관련한 논란이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긋고 싶다"며 "능력 있는 지도자가 나타난다면 당장이라도 자리를 내놓을 의향이 있지만 '한국인 지도자는 안 되고 외국인 지도자는 된다'는 식의 이분법적 논리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지도자 전체를 대신한다는 각오는 물론, 내 자존심도 걸려 있는 문제"라며 강한 의욕을 드러냈다.
이와 관련해 허 감독은 "전지훈련 기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목표 달성을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협회 측에 전지훈련 기간을 연장해달라고 요청할 것"이라면서 "월드컵은 전국민이 기대하는 이벤트인 만큼 대승적인 차원에서 대한축구협회와 프로축구연맹이 합의를 이뤄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전지훈련이 비 시즌 중에 열리는 만큼 양해를 구하는 것이 가능하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현지 적응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허 감독은 "컨페드컵을 통해 확인한 바 있듯이 남아공은 고지대일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낯선 환경을 지닌 나라인 만큼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며 "내년 1월 또는 2월에 실시할 전지훈련 기간 중 짬을 내 선수단과 함께 현지를 방문해 적응력을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잘 준비한다면 우리에게 유리한 변수들도 충분히 생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타냈다.
남은 기간 동안의 준비 과정에 대해 허 감독은 "지더라도 강팀들과 맞붙어 경험과 자신감을 쌓아나갈 것"이라며 "12월에 조 편성이 완료되면 상대팀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파악해 16강행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에 본격 돌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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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감독 인터뷰 전문
-남아공에서 1승 또는 16강을 거둔다면 한국인 지도자로서는 최초다.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하자마자 ‘외국인 감독설’이 일부 언론에서 나왔다. 당시 분노하지 않았나.
▲ 그렇진 않았다. 어떤 분은 이란전 직후 기자회견장에서 같은 질문에 내가 대답하는 모습을 보고 '화를 낸 것 아니냐'고 물어보더라. 그보다는 분명하게 선을 긋고 싶었다. 국내파냐 해외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가 우리 대표팀에 가장 필요한 지도자인지를 따져야 한다. 남아공월드컵에서 16강, 8강, 4강 등의 성적을 틀림 없이 거둘 수 있는 지도자라면 무조건 모셔와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하지만 '한국인 지도자는 안 되고 외국인 지도자는 된다'는 식의 논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능력 있는 외국인 지도자가 있다면 히딩크, 퍼거슨, 무리뉴, 베니테스 등 이름을 지목해서 그 분의 장점을 따져야지, 외국인이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지 않은가. 아직도 그러한 편견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다.
- 이동국, 조재진, 설기현, 최성국, 차두리,안정환 등 올드보이들의 발탁 가능성이 화제다. 선수 선발과 관련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해달라.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여론에는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꼼꼼하게 원칙대로 갈 것이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언제든 뽑겠다. 이동국 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들에 대해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것이다. 이동국이 요즘 화제이다보니 유난히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어 있는 느낌인데, 다른 선수들 또한 마찬가지다.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선수인지의 여부가 먼저다. 기량이 뛰어나야 하고, 팀 전술에 어울리는 플레이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동료들과의 호흡도 맞아야 한다. 희생정신도 필요하다. 그라운드에 나서면 투쟁력을 가지고 팀에 도움을 줘야 한다. 한편으로는 선수들 사이에서의 융화 문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팀에 녹아들 수 있는 선수를 원한다. 앞서 이동국에 대해 쓴 소리를 한 것이 이슈가 됐지만, 내 입장에서 필요한 부분을 지적하고 고칠 수 있는 여지를 준 것이다. 싫은 소리가 나오는 것 자체를 나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고맙게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만약 그럴 필요가 없었다면 아예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다.
- 최근 이적과 관련해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바 있는 이천수의 대표팀 컴백 가능성은.
▲어느 한 선수의 이름을 꼬집어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선수단과 한 덩어리가 될 수 있는지를 꾸준히 살필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잘 판단할 것이다.
- 김남일은 허 감독이 발탁했던 선수지만 현재로서는 A팀 복귀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데.
▲ 세대교체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일 뿐, 특별한 이유는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 감상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2002월드컵 당시 크게 활약했던 홍명보, 황선홍, 김남일 등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어떤 선수든 세월을 속이지는 못 한다. 펠레나 지단이 지금 다시 나와서 뛴다면 좋은 플레이가 가능하겠는가. 김남일이든 이천수든 이동국이든 마찬가지다.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뿐이다. 현 대표팀 멤버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면 된다. 경기장에서 더 잘 할 수 있다면 발탁할 여지는 분명 남아 있다.
- 곽태휘가 복귀하면 중앙수비라인에 합류할 것으로 기대하는 시선이 많다.
▲ 조만간 곽태휘와 강민수가 부상에서 돌아오면 이정수, 조용형, 김형일, 황재원 등과 경쟁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그 모든 선수들이 아직은 세계수준과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남은 시간 동안 이 선수들이 최대한 발을 맞춰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것이 중요하다. 축구협회에 훈련 기간을 충분히 확보해달라고 요청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수비라인의 경우는 조직력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평가전이나 전지훈련 등을 통해 꾸준히 가다듬어야 한다.
- 최종예선 8경기서 12골을 기록했는데, 공격진은 5골에 그쳤다. 박주영-이근호 조합에 대한 감독의 평가가 궁금하다.
- 대한축구협회에 해외전지훈련 기간 연장을 요청했다. K리그 감독들을 어떻게 설득할 생각인가.
▲한국축구를 위해 프로연맹과 축구협회가 잘 협의해야 할 시점이다. 시즌 중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더 힘들겠지만 다행히 비 시즌 중이라 양해를 얻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직접 구단들을 찾아 도움을 구하겠지만 그것으로 결정될 사안은 아니고, 축구협회와 프로연맹의 높은 분들이 교류를 통해 결정해야한다. 월드컵은 전국민이 기대하는 이벤트다. 국민적인 사기도 고려해야 한다.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보겠다.
- K리그가 선수 차출에 끝내 불응할 경우에 대한 대안이 마련돼 있는가.
▲규정을 내세워 끝까지 거부한다면 방법은 없다. 하지만 한국축구를 위해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대표팀은 한국축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존재이며 대표팀과 K리그는 남이 아닌 만큼 충분히 도와주실 것으로 믿고 있다. 그동안 대표팀도 K리그에 대해 나름대로 많은 배려를 해왔다. 대표팀 소집기간 중에도 선수들이 프로경기에 나설 수 있도록 배려하지 않았나. 서로 돕는 자세가 필요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 최근 남아공 현지 상황을 직접 겪어보고 왔다. 우리 선수들이 빠르게 적응하려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 내년 1월 또는 2월로 예정된 전지훈련 기간 중 선수단을 이끌고 남아공에 직접 가보려고 한다. 연초와 월드컵이 열리는 6월은 기후가 상당히 다르지만 고지대라는 환경적 요소는 마찬가지고, 현지 상황에 대해 충분히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특별한 적응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누가 잘 적응하느냐의 여부는 분명 경기력의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컨페드컵에서도 약체들이 약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변수로 작용할 수 있는 요소들을 최대한 우리 것으로 만들고 싶다. 잘 준비한다면 우리에게 유리한 변수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
- 강팀과의 평가전을 적극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혹시나 크게 질 경우엔 감독의 입지가 흔들릴 수도 있는데.
▲만약 정말 평가전 결과로 인해 감독의 지위가 흔들리게 된다면 흐름에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지더라도 강한 팀들과 맞붙어야 한다는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본선 무대를 앞두고 고전도 해보고 골도 많이 먹어 봐야 도움이 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어제 우리가 강팀에게 졌다고 해서 오늘 또 지리라는 법은 없다. 뿐만 아니라 만약 내일도 지게 된다면 이건 큰 잘못이다. 어제는 졌더라도 오늘은 비길 수 있고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경험과 자신감을 쌓아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 유럽 두 팀이 한 조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했는데, 스페인-포르투갈과 독일-잉글랜드는 완전히 스타일이 다르다.
▲조 편성이 되면 구체적인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상대가 결정되면 그 나라 축구에 정통하고 기술적으로 분석이 가능한 인력을 채용해 현지에서 선수 개인이나 팀에 대한 분석을 시작하려고 한다. 이미 축구협회에 이와 같은 시스템을 갖춰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12월에 조 추첨이 실시되고 상대팀의 윤곽이 드러나면 보다 적극적인 준비 작업에 나설 생각이다. 유럽의 경우 지역별로 스타일에 차이가 나타나는 것은 맞다. 잉글랜드를 포함한 북유럽은 힘에 의존하는 축구를 하고, 남부쪽은 유연성과 기술에 의한 플레이를 즐겨 구사한다. 하지만 빠른 템포 등 유럽 축구를 한데 묶을 수 있는 공통점들도 분명 존재한다. 전반적인 유럽축구의 흐름에 대해 철저히 파악한 뒤 상대팀이 결정되면 세부적인 대비에 나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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