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우의 축구&] 2002년 월드컵 4강, 한국축구에 약인가 독인가

  • 등록 2007-08-31 오후 3:30:41

    수정 2007-09-02 오후 1:14:46


"아니 어떻게 2002년 한일월드컵 때와 비교할 수 있나."

지난 29일 탄천 종합운동장에서 만난 성남 일화의 김학범 감독은 이렇게 핏대를 세웠다. 한국을 떠난 핌 베어벡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최근 네덜란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히딩크 감독 시절에는 모두가 대표팀 운영에 협조적이었지만 이후 많은 게 달라졌다”며 한국 축구의 황금기는 이제 지나갔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김 감독은 “2002년 월드컵 때는 대한축구협회는 물론 프로구단들도 국내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최상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인 비상한 시기였다” 며 이후 국가대표팀에 같은 수준의 지원을 기대할 수 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에 따른 소집 일정에 따라 대표팀 훈련을 진행하는 게 순리하는 것이다.

그는 “프로구단들은 이 규정에 맞춰 선수들을 대표팀에 보내는 등 할일을 다했는데 베어벡 감독이 K리그 구단들의 비협조를 탓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당시의 소중했던 경험으로 한국축구가 얻은 것도 많다. 하지만 그 추억이 한국 축구에 끼치고 있는 악영향은 유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 유령은 국가 대표팀부터 대한축구협회, K리그, 언론, 축구팬 등 한국 축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베어벡처럼 한국 대표팀을 맡았던 외국 지도자들에게까지 나타난다. 베어벡을 비롯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 대표팀을 지휘봉을 잡았던 움베르토 코엘류, 본 프레레 감독 등 불명예 퇴진한 감독들이 중도에 한국을 떠나면서 공통적으로 던진 불만이 있다. “훈련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표팀이 받았던 지원을 거론한다. 그때와 같지 않다고.

베어벡 감독 또한 히딩크와 함께 했던, 그들이 원하는 대로 환경이 조성됐던 그 당시의 향수에 취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코엘류, 본 프레레, 베어벡 등이 유럽의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맡았다면 이런 불만들을 가졌을까.

국내 축구계에는 2002년 월드컵 4강 유령은 더 강하게 느낄 수 있고, 쉽게 찾을 수 있다. 본 프레레는 한국을 떠나기 전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 축구계는 월드컵 4강에 진출한 팀이니 모든 경기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기대한다. 어떤 경기든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월드컵 이후 그런 믿음 속에서 꿈을 꾸면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착각에 빠졌다.”

이후 한국은 각종 국제대회서 거듭되는 실패로 착각에서 깨어나고 있지만 아직 완전하지는 않다. 여전히 ‘월드컵에서 4강을 했는데’라는 인식이 남아 있다. 2007 국제축구연맹(FIFA) 청소년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16강 진출에 실패한 17세 이하 대표팀을 바라보는 기저에도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한국 축구의 총체적 위기가 거론 될 만큼 있을 수 없는 일로 지적된다. ‘월드컵 4강국’이라는 인식을 토대로 각급 대표팀의 성적을 이리저리 재단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대목이다.

인프라, 축구 행정 등을 대할 때도 이런 인식이 잣대가 된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월드컵 4강국의 인프라와 행정이 이것 밖에 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기대 수준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17세 이하 대표팀의 부진을 두고 한때 논란이 됐던 K리그 드래프트제도의 배후에도 월드컵 4강의 유령이 어른거린다. 프로구단들이 드래프트제를 부활시킨 이유는 한해 예산의 80% 가까운 인건비(선수 연봉 등) 탓에 생존 자체에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다.

프로구단의 인건비가 60% 이상이 되면 구단 재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K리그 14개 구단은 예외 없이 60%가 넘는다. 인건비가 이렇게 치솟은 데도 2002 월드컵 4강이 한몫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2002년 월드컵 이후 선수들의 몸값이 4배나 늘었다“며 ”특히 대표팀에 한번이라도 뽑히면 터무니없이 높은 몸값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2002년 월드컵 직후 선수들은 4강국에 걸맞은 몸값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구단들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에 올려줬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당시 구단들이 선수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사회적인 분위기였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인건비는 구단들이 생존을 걱정해야 할 만큼 솟아버렸다.

선수들은 부메랑에 얻어맞고 있다. K리그에서 워낙 높은 몸값을 받다보니 해외 진출이 어려워졌다. 유럽클럽에서 한국 선수에게 제시하는 몸값은 K리그에서 그들이 받는 연봉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선수들로선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 수 밖에 없다. 최근 스타급 선수들의 일본 J리그 진출이 뜸해진 까닭도 이제는 J리그에 간다고 금전적으로 이득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유령이 여기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결국 한국 축구가 제 자리를 찾아 발전하기 위해서는 월드컵 4강 유령을 떨쳐내는 게 우선인 것이다. 냉정하게 현실을 인정한 다음 차분하게 고칠 것은 고치고, 보완할 것은 보완해 나가는 일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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