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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수단은 역대 최악의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암울한 평가를 딛고 32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한국 선수단이 단일 올림픽에서 메달 30개 이상을 따낸 것은 2012년 런던 대회(31개) 이후 12년 만이다. 특히 이번 올림픽에서 Z세대(2000년 이후 출생자)가 획득하거나 합작한 메달은 32개 중 절반을 훌쩍 넘는 25개에 달한다.
반효진, 오예진, 양지인(이상 사격)과 박태준, 김유진(이상 태권도) 등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어린 선수들이 예상을 깨고 대활약한 덕분에 목표를 크게 웃도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올림픽 전 이들은 확실한 금메달 후보라고 내세우기 어려운 유망주였다. 그러나 악바리 근성은 물론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까지 갖춘 이들은 생애 첫 올림픽에서 패기와 무서운 집중력으로 생애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또 3년 전 도쿄올림픽에 10대 선수로 출전해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들이 한국을 이끄는 중추로 성장하면서 희망을 보였다. 도쿄 대회 8강에서 탈락해 눈물 흘렸던 안세영은 파리올림픽에선 28년 만에 한국 배드민턴 여자단식 금메달을 따내며 금빛 릴레이를 이끌었다. ‘탁구 신동’으로 불렸던 신유빈은 도쿄 대회 여자 단체전 8강에서 역전패를 당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혼합복식과 여자 단체전 동메달을 일구며 한국 여자 탁구 간판으로 우뚝 섰다.
지옥 훈련을 해내는 건 기본이다. 안세영은 앳된 고등학생 때부터 배드민턴 코트 대신 모래밭을 설치해, 그 안에서 땀을 비 오듯 쏟아내며 셔틀콕을 받아냈다. 남자 선수들 못지않은 지옥훈련을 견뎠다. 덕분에 이번 올림픽에서 안세영을 상대하는 선수들이 지치지 않는 그의 수비에 스스로 무너졌다. 양궁 3관왕을 이뤄낸 임시현은 고교 시절부터 주말에 집에 갈 수 있어도 학교에 남아 훈련에만 집중했다고 한다. 하루에 화살을 1000발씩 쏜 성실함이 지금의 임시현을 만들었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어린 선수들의 활약이 ‘시대의 흐름’과 무관치 않다고도 평가했다. 최 평론가는 이데일리에 “어릴 때 아이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이를 지원해주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또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도와줄 환경도 갖춰졌다”며 “우리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을 마음껏 지원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현실적으로 그것이 가능하도록 경제력이 뒷받침된 것이 이번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이 난 비결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0대 후반~20대 초반에 불과한 이들에게 4년 뒤가 더 기대된다. 이번 파리올림픽의 특징은 메달을 따낸 종목들이 모두 세대교체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양창훈 양궁 여자대표팀 감독은 “임시현, 남수현이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 양궁을 이끌 것”이라고 기대했다. 파리올림픽 최대 반전으로 불리는 사격 대표팀도 “2028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에는 이번 대회를 넘어서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각오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