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 때 재택근무를 했다가 최근 정상 출근을 하고 있다는 박모(31)씨는 최근 달력이 꽉 찼다. 대부분 업무상의 저녁 일정이다. 코로나가 터지기 직전 취업해 회사 생활 대부분을 코로나 시국 속에서 보냈던 그는 요즘 회사 생활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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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넘게 지속됐던 코로나19 유행의 끝이 보이면서 우리 사회는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일부는 ‘엔데믹 블루’를 호소하고 있다. ‘엔데믹 블루’는 팬데믹이 휩쓸고 간 후 일상이 회복되면서 우울감이나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거리두기 방역 강화로 외부활동이 줄어들면서 우울·스트레스를 겪었던 코로나 블루와 정반대의 양상이다.
우울·스트레스의 한 원인은 상대적 박탈감이다. 취업준비생 이모(29)씨는 “코로나19 시국엔 회사가 어려워져 무급 휴가를 가는 친구들도 있었고, 실직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다 같이 힘든 줄 알고 버텼는데 코로나19가 끝나고, 다들 직장으로 돌아가고 일상을 즐기니까 나만 동떨어진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20대 대학생 A(25)씨도 “주변에서 해외 여행 가겠다고 비행기표 사고 축제도 놀러가는데 나는 그럴 여유가 없고 우울해서 단체 채팅방을 안 보게 된다”고 했다.
가뜩이나 커지는 우울감에 기름을 붓는 ‘회식 갑질’도 등장했다. 직장갑질119는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이후 ‘회식 갑질’ 제보가 급증하고 있다”며 “제보된 사례 중에는 회식 불참 등을 이유로 연봉을 동결시키거나 회식 비용을 월급에서 제외하고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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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데믹에 따른 우울·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들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 연구팀이 시간제 근로를 하거나 실업자이면서 실제 취업 의지가 있는 국내 체감실업자 717명을 대상으로 지난 3월 11~20일 ‘코로나19로 인한 실직의 경험과 건강 영향’을 조사한 결과에서다.
코로나19 이후의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체감실업자의 응답률은 2020년 1월 23.1%에서 올해 3월 63.3%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이 울분이나 우울을 호소하거나 극단적 선택을 생각하는 경우도 일반인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 대상자를 상대로 ‘자가보고형 우울척도(PHQ-9)’ 9개 문항을 활용해 최근 우울 수준을 파악한 결과 ‘우울증 수준’ 비율은 40.7%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엔데믹 블루’를 과도기적 증상으로 보고, 일상에 점진적인 변화를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급변하는 환경에 몸을 억지로 맞춰 적응하면 스트레스나 우울감 등이 발생해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며 “지금 생활 환경에서 점진적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가거나 일부러라도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을 조금씩 늘리는 등 적응에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