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혁명 오나…한국은행도 흔드는 블록체인(종합)

젊은 한은맨 중심으로 디지털통화 업무 '인기'
해외는 한발 앞서 연구…민간도 "디지털 연구"
인터넷 혁명에 비견…"경제 영향력 검토 필요"
  • 등록 2017-02-13 오후 6:35:51

    수정 2017-02-14 오전 10:14:23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이데일리DB


[이데일리 김정남 기자] 한국은행의 한 고위인사는 지난달 중순께 방한한 스테판 잉버스 스웨덴중앙은행 총재 등 방문단과 만나며 짐짓 놀랐다.

방문단이 ‘동전 없는 사회’ 추진 계획 등을 한은 간부들에게 유독 구체적으로 물어서다. 이는 한은이 오는 4월부터 시범사업에 나서려는 것인데, 방문단은 외신을 통해 두루 접했다고 한다. 블록체인 등도 화제에 올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웨덴이 지급결제 수단의 미래에 관심이 높은 나라이기는 하다. 스웨덴은 지난 2012년부터 버스 지하철 등 대중교통에 현금 이용 자체를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솔직히 의외였다”는 게 이 고위인사의 말이다.

또다른 고위관계자는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이미 틀이 잡혀있지만 지급결제 이슈는 새로운 먹거리라는 인식이 한은 내에도 빠르게 퍼지고 있다”면서 “해외와 비교하면 오히려 늦었다”고 했다.

“제2의 인터넷” 블록체인

블록체인 분산원장 비트코인…. 보수적이라는 평가가 많은 한국은행 내부에 최근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어 주목된다.

1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초 인사 때 한은 금융결제국 조사역의 경쟁률은 10:1에 육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5명 정원에 수십명이 몰린 것이다. 조사역은 통상 6~7년차의 한은 ‘막내 직책’이다.

금융결제국에 지원했던 한 조사역 직원은 “블록체인은 장차 금융권을 넘어 경제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기술”이라면서 “연구 초기라는 점도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올해 한은 신입공채 면접 때도 “지급결제 분야에서 꿈을 펼치고 싶다”는 지원자들이 다수 있었다고 한다. 한은 내 전통적인 선호 부서인 통화정책국 조사국 국제국 등에 못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은 한 집행간부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찾기 어려웠던 변화”라고 했다.

블록체인은 2008년 고안된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성공에서 출발한다. 은행을 거치지 않고 개인과 개인이 직접 거래할 수 있는 방식이다. 누군가에게 돈을 보낼 때 은행을 가지 않는다는 건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비트코인 사용자들은 P2P(다자간 정보공유) 네트워크에 접속해 똑같은 거래장부 사본을 나눠 보관하는 식으로 보안을 유지한다. 블록체인이 ‘공공거래장부’로 불리는 이유다.

거래 내용을 기록한 장부인 원장(ledger)을 정부 주도의 기관에서 집중 관리하는 게 아니라 중개기관의 개입 없이 서로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탈중앙화된(분산된) 기술, 이른바 분산원장 기술이 그 바탕에 있다.

금융권과 정보기술(IT)업계 등에서는 이미 블록체인을 두고 “제2의 인터넷”이라고 할 정도로 혁신적인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해외도 민간도 “디지털”

한은의 대응은 늦은 감도 없지 않다. 최근 한은을 찾은 스웨덴의 경우 블록체인을 활용해 토지 소유권과 이전 내역을 기록하는 스마트계약 플랫폼을 만드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영국 영란은행은 지난해 3월 디지털화폐 ‘RS코인’을 발표했다.

한은 한 고위관계자는 “이번에 금융결제국으로 발령을 낼 때 가장 중요하게 본 게 영어 능력”이라면서 “해외에 관련 회의가 워낙 많다보니 영어로 토론이 되지 않으면 업무 자체가 어렵다”고 말했다.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된 민간 금융회사들은 이미 디지털을 내세우고 있다. 조수연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과거 디지털 조직의 역할이 현업과 IT 조직 간 연계로 제한됐다면, 지금은 디지털 전략을 주도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면서 “대부분 디지털 조직을 기존의 현업 혹은 IT 조직 내에 두지 않고 별도 분리하고 있다”고 했다.

또다른 한은 관계자는 “블록체인에 대해서는 참고할 만한 자료도 많지 않다”면서 “금융권에서는 한은 보고서에 대한 수요가 높다”고 했다.

경제 전반 흔들 디지털통화

더 주목되는 건 이런 변화상이 경제 전반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분산원장 지급시스템 하에서는 전체 거래기록이 실시간으로 거래자뿐 아니라 정책당국자에게도 제공된다. 예기치 못한 외부 충격이나 각종 정부 정책의 변화에 대한 반응을 즉각 관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거시경제 안정성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거래비용 감소 등으로 경제성장률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일각의 학계 주장도 있다.

다만 ‘낯선’ 디지털화폐를 과연 현재 법정화폐처럼 쓸 수 있을 지에 대한 전환 리스크도 엄연히 있다. 사이버 보안 문제도 계속 화두가 될 수 있다.

금융권 한 인사는 “디지털통화가 거시경제와 금융시장 등에 미칠 영향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민간 부문을 넘어 해외 중앙은행들과도 충분히 교감하면서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용어설명

<블록체인>

환전 혹은 송금을 할 때 지금은 은행을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은행 등 기존 금융회사가 돈이 오고간 거래내역을 관리하는 식으로 모든 금융거래가 이뤄진다. 은행 서버는 각종 보안 장비 등에 둘러싸여 있다.

블록체인은 이런 상식을 깬 것이다. 모든 거래자들이 거래장부를 함께 관리해도 안전하지 않겠냐는 발상(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의 논문)이 출발이었다. 은행의 중앙집중형 서버에 거래기록을 보관하는 게 아니라 거래 참여자에 내역을 보여주며 대조해 위조를 막자는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비트코인을 통해 이미 현실에서 실현됐다.

비트코인은 누구나 볼 수 있는 장부에 거래내역을 투명하게 기록한다. 비트코인을 사용하는 여러 컴퓨터가 10분에 한 번씩 이 내역을 검증하면서 해킹을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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