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에는 90일로 (규정)돼있습니다”(3월 6일, 정부서울청사, 장석영 과기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
정부는 지난해 ‘규제로 인해 막힌 혁신성장의 물꼬를 트겠다’며 규제에 구애받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할 수 있게 한다는 취지로 이른바 ‘규제 샌드박스’ 제도 도입을 천명했다. 모래상자(샌드박스) 안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이런저런 것들을 만들어보듯이, 기업도 자유롭게 다양한 시도를 해보라는 목적이었다.
해가 바뀌고, 샌드박스 제도 실행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1월 17일까지 제안서를 접수했다. 여기에는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매개로 한 송금 서비스업체 ‘모인’과, 배달 오토바이 등에 디지털 박스를 부착해 광고를 보여주는 광주 소재 ‘뉴코애드윈드’도 참가했다.
당초 유영민 장관은 2월 첫 선정 대상 브리핑에서 “필요하면 원격회의라도 소집해 처리해 60일 내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한 달 가량이 지난 지금 과기정통부는 “관련 법 규정이 90일내 처리하게 돼있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모인이 제출한 신청서에 대해서는 다음달 금융위원회 등이 주관하는 금융분야 규제 샌드박스 선정과 연계해 처리하겠다며 아예 다음달까지 보류 상태로 두겠다고 밝혔다.
관계 부처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게 과기정통부의 해명이지만, 이마저도 석연치 않다. 1, 2차에 걸쳐 통과된 규제 샌드박스 선정 과제를 보면 국토교통부나 산업통상자원부 등 다른 부처와 빠르게 협력해 처리된 사안이 대부분이다. 금융위원회가 유독 협조해주지 않는다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지만, 과기정통부는 “부처간 충분한 협의를 거치는 과정으로 봐달라”고 설명하기 바쁘다.
유 장관은 지난달 브리핑에서 “이런 정도의 사업도 샌드박스를 거쳐야하나 싶은 점도 많았다”며 “적극적인 행정에 나서겠다”고 말했지만, 실무조직은 여전히 경직되고 소극적인 모습이라는 평가가 업계에서 터져나온다. IT 기업 출신으로 혁신 바람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유 장관의 말이 공언(空言)으로 그치지 않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