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국립경주박물관은 ‘경주 동궁과 월지’ 출토품을 재정리해 종합 연구하는 ‘월지 프로젝트’를 통해 16세기에 제작된 백자에서 ‘용왕’(龍王)을 비롯한 다양한 내용이 적힌 묵서(墨書)를 처음으로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 ‘용왕’명 묵서가 쓰인 백자(사진=국립경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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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왕’명 묵서가 쓰인 백자(사진=국립경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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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동궁과 월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8000여 점의 조선 자기편 중 130여 점에서 묵서를 확인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대체로 백자의 굽 안에 묵서를 남겼으며 가마에서 포개어 구워야 하므로 굽 부분에 유약을 시유하지 않은 점을 활용해 먹으로 글씨를 썼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묵서의 내용은 △‘용왕’, △‘기계요’(杞溪窯), △‘기’(器), △‘개석’(介石), △‘십’(十) 등이다. △‘졔쥬’, △‘산디’ 등 한글도 발견했다. 이 중 학계가 가장 주목하는 건 ‘용왕’ 명 묵서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가 멸망한 뒤 월지 일대가 폐허처럼 변하면서 월지의 용왕 제사도 사라진 것으로 여겨왔으나 ‘용왕’이란 묵서가 쓰인 백자가 출토되면서 적어도 16세기까지는 월지가 용왕과 관련한 제사 또는 의례 공간으로 활용되었음이 분명해졌다”고 의미를 짚었다. 이어 “제사의 주재자를 뜻하는 ‘졔쥬’라는 한글 묵서가 확인된 점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고 부연했다.
16세기 백자의 굽 부분에 남겨진 묵서는 조선 전기 경주 지역의 생활상과 월지가 갖는 의미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글 묵서명 백자는 16세기 경주 지역의 한글문화를 연구하는 기초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통일신라시대 월지 주변 건물에 사용된 금속 장식에서도 명문을 확인했다. 문의 모서리 부분을 마감한 띠쇠로 추정되는 금속 장식의 내면에서 서체가 다른 ‘내간’(內干)이라는 명문을 발견한 것이다. X선을 촬영한 결과 한 글자만 날카로운 도구로, 다른 세 글자는 끌을 짧게 쳐서 선이 점선처럼 보이는 축조 기법으로 새겼음이 밝혀졌다. ‘내간’은 통일신라시대 왕실과 궁궐의 사무를 관장한 내성의 관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 ‘의일사지’가 새겨진 금동판(사진=국립경주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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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마의 서까래 또는 난간의 마구리 장식으로 추정되는 금동판에서는 ‘의일사지’(義壹舍知)라는 명문을 확인했다. 이 명문은 종래에 ‘의일금지’(義壹金知)가 새겨진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X선 촬영을 통해 ‘의일사지’임을 확인하였다. 동궁과 월지의 창건이나 중수 시 공사에 직접 관여한 관리의 인명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사지’(舍知)는 신라의 17관등 가운데 13관등이고 ‘의일’은 ‘사지’의 수식어일 가능성도 있으나 인명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월지에서 출토된 ‘조로 2년’ 명 전돌에서 한지벌부의 ‘군약’(君若)이라는 인명이 등장하는데, 와전(瓦塼) 공방에서 근무한 관리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이번에 확인한 조사 성과를 내년 재개관 예정인 월지관 개편 전시에 반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