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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가상자산(암호화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제도화를 위한 입법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암호화폐 투자자와 거래액이 늘어나는 가운데 투자자 보호장치가 전무하단 지적이 이어지자 여당 의원을 중심으로 관련 법안이 연달아 나올 분위기다.
이용우, 김병욱 의원 잇단 입법 움직임…‘코인 민심’ 의식?
3일 국회에 따르면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르면 이번 주 가상자산업 관련 법안을 발의할 전망이다.
카카오뱅크 공동 대표를 지내기도 한 이 의원은 “이번 주 법안을 발의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거래소가 신규 자산(코인)을 상장할 때 백서를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하고, 예치금을 별도 계좌에 관리해 거래소 파산 등 문제가 생겼을 경우 고객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법안의 골자다. 투자자 실명 확인을 통한 자금세탁방지, 시세 조작 시 처벌 조치 등도 담길 예정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인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달 내 투자자 보호를 위한 가상자산업법을 발의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25일부터 시행된 개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을 대표 발의한 김 의원은 일찌감치 가상자산 관련 법안을 준비해왔다.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 내용 등은 아직 다 정리가 안 돼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이번 달(5월) 내에는 법안을 발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 의원을 중심으로 가상자산 관련 입법에 속도를 내는 건 2030세대의 이른바 ‘코인 민심’을 의식한 영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통령선거을 앞두고 2030세대의 여론이 악화될 것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코인 투자자의 60%는 20~30대 젊은 층이다.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발의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8년도에도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 ‘가상화폐업에 관한 특별법안(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 ‘암호통화 거래에 관한 법률안(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 등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가 모두 폐기됐다.
업계에서는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블록체인협회 관계자는 “20대 국회에서는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큰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다르다”며 “합리적인 가상자산업법이 잘 정립될 수 있도록 국회에서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금융위 “달라진 것 없다”…전문가 “아직도 내재가치 운운 황당”
다만 암호화폐 제도화에 관한 정부의 시각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정부는 암호화폐 과세 자체는 필요하다면서도 가치 등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암호화폐는 화폐나 금융자산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투자자 보호장치가 없을뿐더러 주무부처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주소다. 현재 암호화폐를 규제하는 법안은 자금세탁 방지에 초점을 맞춘 특금법과 암호화폐 수익에 22%를 과세하는 소득세법 뿐이다.
전문가들은 암호화폐 투자자와 산업은 커지는데 더 이상 손을 놔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이미 미국에서는 지난 4월 암호화폐 거래소(코인베이스)가 나스닥에 상장하며 ‘비주류의 주류화’ 가능성을 열었다.
김형중 고려대학교 정보보호대학원 특임교수(암호화폐연구센터장)는 “미국에서는 코인베이스가 나스닥에 직상장하는 상황에서 아직도 우린 내재가치를 운운하니 황당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