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해줄 의사가 없다” 응급실 거절에 발만 동동[르포]

■의정 갈등 장기화 속 서울 대형 병원 가보니
병상 충분해도 치료해줄 담당 의사 부족해
구급대원 십 수번 전화·기다림에 지친 환자
응급실 위기는…“추석 후 고령자 취약 겨울”
  • 등록 2024-08-28 오후 5:47:22

    수정 2024-08-28 오후 6:59:17

[이데일리 황병서 김세연 박동현 기자] “운 좋으면 병원 한두 곳만 전화해서 가기도 하는데 스무 곳 이상 전화를 돌릴 때도 잦아요.”

7년 차 서울 지역 119구급대원인 A(40)씨는 전공의 파업 이후 지금이 ‘역대급 기간’이라고 표현했다. 응급실 병상이 충분해도 치료해줄 담당 의사가 없어 환자 이송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28일 오전 9시께 서울 구로구의 고대구로병원 권역 응급 의료센터에 환자를 이송하러 온 A씨는 “사전에 이송 가능한 병원 리스트가 있어서 미리 연락을 돌리는데도 예전보다 구하기 어려워져 답답하다”면서 “코로나 때랑 맞먹을 정도로 정신없고 바쁜데 앞으로가 더 걱정된다”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응급실 거절에…집에서 20㎞ 떨어진 병원 이송

2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 119대원들이 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사진= 방인권 기자)
이데일리가 이날 고대구로병원 등 서울 지역의 대형병원을 둘러본 결과, 의정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응급실 운영에 차질을 빚는 경우가 속속 나타나고 있었다. 환자가 치료받을 곳을 찾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 상황이 잦아진 것이다. 구급대원은 수용 가능한 응급실을 찾느라 분주했고 1분 1초가 아까운 환자는 기다림에 지쳐 내원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A씨와 같은 구급대원들은 환자 이송을 위해 병원 응급실에 십수 번씩 전화를 거는 경우는 예삿일이라고 했다. 기다림에 지친 환자 불만이 커지다 보니 구급차 내부에는 ‘의사 집단행동으로 병원 선정이 지연되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는 문구도 써 붙였다. 서울 지역 119구급대원인 30대 B씨는 “기존에도 병원에 전화를 다 돌려보고 가는 것은 변함없었다”면서도 “전보다 전화 돌리는 수가 많아졌고 많을 때는 십수 번도 넘게 돌리고 가는 편”이라고 말했다.

민간 구급대 사정도 비슷하다. 서울의 한 민간 구조대에서 일하는 송모씨는 최근 혀에 출혈이 생긴 환자를 이송하는 과정에서 서울의 3개 병원에서 퇴짜를 맞았다고 했다. 환자를 맡겠다는 병원이 없어서 결국 경기도의 한 병원으로 이송했다고 했다. 송씨는 “지혈을 하긴 했으나 급한 상황이었는데 담당 의사가 없다 보니까 뺑뺑이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민간 구조대에서 일하는 정모씨도 “요양병원의 고령자들을 이송하는 일을 담당하는데 담당 의사가 부족해서인지 응급실에 가서도 3~4시간 기다린다”면서 “대기하는 도중에 다른 곳에 가서 진료를 보라는 안내도 받았다”고 말했다.

분투를 다투는 환자들의 불만도 쌓여만 간다. 8년째 간암과 투병 중인 모친을 모시는 이시원(52)씨는 자택에서 2㎞ 떨어진 강남세브란스병원을 두고 20㎞ 떨어진 서울 아산병원을 찾았다고 전했다. 응급센터에서 모친을 받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이씨는 “이날 오전 12시 30분께 어머니가 위험해서 119구급대를 불렀는데 강남 세브란스병원이랑 삼성병원에서 안 받아준다고 했다”면서 “진통제를 맞고 통증을 빨리 완화해야 하는 위급한 순간에 멀리 떨어진 병원으로 왔다”고 했다.

서울 아산병원의 응급실을 찾은 60대 중반의 C씨는 지난 27일 4시간이 지나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신경 정신에 문제가 있어 병원을 찾은 C씨는 “원래 다니던 병원에서 이 병원에 내가 위급한 환자라고 알려줘 그나마 시간이 꽤 흘러서라도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픽=문승용 기자)
“병원에 남은 의사들은 죽을 맛…추석·겨울은 재앙일 것”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병상은 있지만 응급처치 이후 배후 진료를 해야 하는 의료진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서울의 한 감염내과 교수는 “응급실에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해당 진료과 교수나 전문의에게 환자를 넘겨야 하는데 지금 사람이 없어서 넘기지 못한다”면서 “각 담당과 교수와 전문의 인력들이 빠지면서 이미 기존의 환자들만 해도 벅차니까 응급실 콜을 안 받는다. 그러니 응급의학과 교수들도 좌절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도 힘에 부치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신경과 전문의인 의사는 “힘든 정도를 표현하자면 6개월 전보다 최소 300%는 (힘든 강도가) 증가했다”면서 “할 일이 3배는 늘어 병원 남아서 일하는 사람들은 죽을 맛”이라고 했다. 통증 클리닉 전문의인 한 의사도 “말도 못할 정도로 바쁘다”면서 “현장에서 인력 부족을 체감하고 있다. 다들 그저 버틴다는 생각 뿐”이라고 말했다.

28일 서울 시내 한 응급의료센터 앞에서 의료진이 구급대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 방인권 기자)
더 나아가 추석과 겨울철 응급실 대란을 걱정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추석 4일 동안 동네 병원들이 쉬니까 응급실도 비상일 것”이라면서 “힘든 재앙은 겨울이다. 겨울이 되면 심근경색과 뇌졸중 환자도 느는 데다 폐렴에 걸려 인공호흡기를 달거나 빙판길에 넘어지는 고령자들이 많아 응급실 수요가 많은데 그때는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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