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함께 창업했고 제가 공동창업자가 아니란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습니다. 그런데 발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복수의결권 발행 요건을 맞추지 못하게 됐습니다.” (벤처기업 A사 대표)
오는 17일 복수의결권 제도 시행을 앞두고 벤처·스타트업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복수의결권은 창업주가 지분 희석 우려 없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제도지만 발행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로워 현장 안착에 의문이 제기된다.
|
중소벤처기업부는 13일 서울 서초구 엘타워에서 간담회를 열고 벤처기업들과 만나 복수의결권 제도에 관한 현장 의견을 청취했다. 복수의결권 도입을 희망하는 벤처기업 8개사와 벤처기업협회 등이 자리에 참석했다.
복수의결권은 비상장 벤처·스타트업 창업주에게 1주당 최대 10개의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벤처업계 숙원으로 꼽히던 이 제도는 중기부가 2020년 12월 법안 발의 후 2년 넘게 국회에 계류하다 지난 4월 국회 문턱을 넘었다.
특히 간담회 참석자들은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하기 위해 정관개정을 거쳐야 하는 방식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발행주식 총수의 4분의 3 이상의 주주가 찬성해야 하는데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투자자를 설득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문천수 오버테이크 인사총괄은 “주주들이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제도 도입은 언감생심”이라며 “본인들의 의결권이 다소 약해지는 것에 동의를 할 지 의구심이 든다”고 전했다.
스타트업 B사 대표는 “복수의결권 도입을 검토해봤지만 발행요건이 쉽지 않게 느껴진다”며 “투자를 집행한 벤처캐피털(VC) 등 주주들과 마찰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특히 보수적인 금융기관의 동의를 받는 게 굉장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복수의결권 도입은 창업주와 주주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점을 홍보해달라”고 요청했다.
발기인 미등록으로 인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데 대해서도 아쉽다는 의견이 나왔다. 문 총괄은 “당사 대표는 회사 설립 당시 발기인 등록을 하지 못했는데 형식적인 사유로 인해 복수의결권을 도입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호소했다.
벤처기업 A사 대표도 “친구와 함께 창업을 준비하다가 정부 과제에 선정되면서 예상보다 일찍 법인을 설립했다”며 “법인 설립 당시 투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발기인 등록을 못했는데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 요건이 안 된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최근엔 개인 주주가 많아졌는데 이들의 동의를 전부 얻는 건 사실상 불가능”이라며 “정관개정이 어려울 경우 복수의결권 주식을 신주 발행해야 하는데 벤처·스타트업 창업자들은 빚을 내서 주식을 사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중기부는 현장 의견을 반영해 제도 안착에 힘쓰겠다는 방침이다. 복수의결권이 다른 주주들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주주평등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발행요건을 지키되 불합리한 사항은 바꿔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임정욱 중기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은 “증권거래소에서는 기업 상장 시 창업주의 지분이 낮은 것을 깐깐하게 본다”며 “VC들도 이를 잘 알기 때문에 복수의결권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복수의결권 도입 과정에서 주주들을 설득하기 수월하도록 중기부가 제도의 이점을 적극 홍보하고 인센티브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보완이 필요한 지점은 국회와 논의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