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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위험한 거래’ 현실로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위해 러시아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 도착한 자리에서 취재진과 만나 ‘북한의 위성개발을 도울 것이냐’는 질문에 “그래서 나와 김 위원장이 여기(우주기지)에 왔다”며 “김 위원장은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우주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푸틴 대통령의 언급은 러시아가 보유한 인공위성 발사, 궤도 안착, 첨단기능 장착 등의 기술을 북한으로 넘기겠다는 점을 강력 시사한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군사 정찰위성을 확보하는데 계속 실패했는데, 러시아의 기술이 이전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정찰위성은 핵 탄두를 보유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투발 시스템의 역량을 키우는데 일조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방명록에 “첫 우주 정복자들을 낳은 로씨야(러시아)의 영광은 불멸할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기면서 첨단 기술 확보 의지를 내비쳤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 역시 “우리는 공개할 수 없는 매우 민감한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1946년 출범한 안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가까이 전후(戰後) 질서를 정한 최상위 국제기구다. 안보리는 사안의 심각성에 따라 제재 수단을 동원해 각국에 관여하는 식으로 무력 분쟁을 억제해 왔다. 그런데 안보리 상임이사국(러시아)이 자신이 직접 참여한, 국제법적 효력이 있는 제재를 뒤집는 ‘자기 부정’을 했다는 점에서 무용론은 더 거세질 전망이다. 북러 무기 거래가 다자에 기반한 국제 질서의 변곡점으로 여겨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엔 소식 전문지인 ‘유엔 디스패치’의 마크 레온 골드버그는 “북한의 핵 개발 야망을 막으려 했던 지난 15년의 외교적 노력이 뒤집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과 무기 거래는 2006년 이후 지속한 안보리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 행위다. 그는 그러면서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핵무기에 대해 점차 더 무신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대북 제재를 주도했던 미국은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최근 북러 정상회담 관련 기밀 정보를 일부러 흘리면서까지 이를 막으려 했지만, 결국 무위에 그쳤다. 사실상 안보리가 무너진 상황에서 미국이 연일 ‘유엔 제재 위반’을 경고하는 것은 모호하고 선언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북한 기업과 개인을 제재 리스트에 올리는 독자 제재 카드 △한국, 일본, 유럽 등 주요 국가들과 공조를 통한 대북 압박 등이 또 다른 수단으로 거론되지만, 이 역시 북한이 지난 10여년간 국제 제재망을 우회해 왔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 블룸버그는 “(미국의 북러 경고가 모호한 것은) 북한의 셈법을 바꿀 수 있는 옵션이 거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심지어 김 위원장은 미국 등을 겨냥해 ‘서방 제국주의’라고 칭하면서 “이에 맞선 러시아의 신성한 싸움을 지지한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 역시 “미국의 경고는 우리의 관심 사항이 아니다”며 무시하는 어투로 말했던 적이 있다.
이에 따라 국제 질서 자체가 ‘힘대힘’ ‘강대강’ 국면으로 급변할 수 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골드버그는 “북러가 제재를 위반해 무기를 거래하면 북핵에 대한 국제 공조 노력이 멈추고 실질적인 대안이 없어질 것”이라며 “새로운 외교 질서가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