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타벅스 직원이 QR코드를 내밀자, 한 고객이 스마트폰을 갖다 대 결제한다. 현금도, 신용카드도 아닌 비트코인으로 커피를 구매한 것이다. 중남미 최빈국으로 알려진 엘살바도르에서는 7일(현지시간)부터 이런 일들이 가능해졌다. 전 세계 국가 가운데 최초로 비트코인을 공식 화폐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스타벅스뿐 아니라 맥도날드, 피자헛 등 어디서나 비트코인으로 결제하고 세금도 내게 된다.
비트코인이 등장한 지 12년만에 국가 법정 통화가 되면서 최대 시험대에 올랐다. ‘작은 나라’의 ‘별난 행동’으로 끝날 지, 통화가 불안정한 국가로 연쇄 반응이 뒤따를 지 주목된다.
|
화염병 시위에 전자지갑 ‘먹통’까지…불안한 첫날
엘살바도르 ‘비트코인 데이’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엘살바도르 정부가 자정을 기해 비트코인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전자지갑 ‘치보’를 제공하기 시작했지만, 서버 용량이 부족해 5시간만에 먹통이 되며 시민들의 원성을 샀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엘살바도르 국민의 3분의 2가 높은 변동성과 범죄 악용 가능성 등을 이유로 비트코인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과거 엘살바도르의 자국 화폐인 ‘콜론’도 높은 변동성으로 국민들의 외면을 받은 끝에 도태됐다.
공교롭게도 최근 5만 달러를 재돌파하며 상승세를 보여온 비트코인 가격까지 급락했다. 암호화폐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 기준 이날 오후 2시께 비트코인은 4만6000달러대에 거래 중이다. 24시간 동안 11% 이상 급락한 것이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비트코인 가격이 급락하자, 추가 매수에 나서기도 했다. 부켈레 대통령은 이날 비트코인 150개를 더 사들이면서 엘살바도르 정부의 비트코인 보유량은 550개로 늘어났다.
일부에선 비트코인 사용으로 인한 송금 수수료 개선 등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산살바도르에 사는 루이스 알레만(61세)씨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항상 모든 일에 결함은 있기 마련”이라며, 미국에 사는 자녀들로부터 치보를 통해 비트코인으로 송금을 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실험을 보는 시선은 갈린다. 일각에서는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법정 통화 채택이 통화 주권을 강화할 뿐 아니라 향후 남미, 아프리카 등 다른 국가들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화인 금융감독원 블록체인 발전포럼 자문위원은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받아들인 이유는 미 달러 중심의 단일 법정 통화가 가진 한계 때문”이라며 “기존 통화시스템은 달러의 금리 변화에 상당히 취약하며, 해외 송금시 발생하는 거래 수수료도 국내총생산(GDP)의 24%에 달해 통화 주권을 갖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미 탄자니아, 가나 등에서 비트코인 도입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자국 통화의 공신력과 통화 주권을 회복하려는 국가들에게 비트코인은 유효한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별다른 기반 산업을 갖지 못했던 엘살바도르 입장에서는 채굴업체, 비트코인 ATM 관련 업체 등 암호화폐 산업을 국내로 유치할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시중 통화량이 작아 당장 비트코인 시세에도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회의적인 목소리도 있다. 비트코인이 ‘자산’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있다는 이유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지정한 건 예외적인 케이스”이라며 “거의 모든 국가가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화폐가 아닌 자산으로 간주하고, 구매자 입장에서도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엘살바도르의 움직임을 따르는 국가가 더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얘기다. 현재 선진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도입을 추진하거나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