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최근 국회에서 10번째 사형폐지법안이 발의된 가운데 사형제 폐지 논의가 재점화됐다.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23명의 사형수에 대한 마지막 집행 이후 27년간 사형 집행이 중단된 상태다. 형사법학계에서는 사형제 존폐 이슈의 해법으로 ‘50년 후 가석방이 가능한 종신형’ 도입을 통한 점진적 전환을 제안했다.
| 지난달 30일 세계 사형 반대의 날 22주년 기념 행사에서 천주교 수원교구 정자동주교좌성당 외벽에 사형제도폐지 빔버타이징(조명퍼포먼스) 메시지가 표시되고 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제공. |
|
2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세계사형반대의날(11월30일)을 하루 앞두고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했다. 박 의원 포함 총 65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한 이 법안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한 헌법 제10조와 ‘기본권 제한 시에도 본질적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 제37조 제2항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사형을 폐지하는 대신 가석방 없이 사망 시까지 교도소에 수감하는 종신형을 대체 형벌로 제시했다.
사형제 존폐 이슈와 관련해 대체 형벌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행 무기징역은 20년이 지나면 가석방이 가능하다. 이번 법안은 가석방을 전면 금지하는 ‘절대적 종신형’을 제시했다. 형사법학계에서는 50년 후 가석방을 허용하는 ‘상대적 종신형’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이에 대해 천주교인권위원회는 “국제앰네스티 등 국제인권단체들도 가석방이 불가한 절대적 종신형이 사형제도와 같은 인권침해적인 형벌이라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종신형은 감춰진 사형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대법원도 지난해 ‘가석방 없는 종신형’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의견조회에서 “선진국에서는 가석방없는 무기징역의 위헌성을 이유로 폐지하는 추세”라며 “사형제 폐지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박 의원은 이번 법안을 발의하면서 “과거 한강 인도교 폭파, 진보당 사건 등에서 정치적 목적의 조작이나 사법부의 잘못된 판단으로 억울하게 사형이 집행된 사례가 있었다”며 유엔(UN)의 조사결과를 들어 사형의 범죄예방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세계적 인권운동단체인 국제엠네스티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형 존치국은 16개국까지 줄어든 상황이다. 한국 정부도 2009년 유럽평의회 형사사법공조협약에 가입하면서 EU 회원국 등으로부터 인도된 범죄인에 대해서는 사형을 집행할 수 없게 됐다.
| 한국형사법학회 형법전면개정연구위원회에서 사형제 폐지 및 종신형 도입 여부를 놓고 투표한 결과. 한국형사법학회 제공. |
|
사형제 폐지 이슈는 최근 형사법학계에서도 심도 있게 논의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형사법분야의 대표 학회인 한국형사법학회는 지난 1년간 형법전면개정 작업을 진행하면서 사형제 폐지와 관련해 투표한 결과 찬반이 각각 22표로 동률을 기록했다. 결론적으로 학회 총괄위원회는 국민여론과 최근의 남북한 긴장상황, 주변국의 사형제 존치 및 집행 정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형제 존치를 1안으로, 폐지를 2안으로 제안하면서 ‘50년 이후 가석방이 허용되는 종신형’을 신설하는 안을 제시했다.
한국형사법학회장을 맡고 있는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국은 사형을 집행하고 있고, 일본도 최근까지 집행하고 있어 유사시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최근 10년간 1심 기준 사형 선고는 연평균 1.2건 수준으로 파악된다”며 “종신형 도입으로 연간 1.2건 정도를 흡수해 향후 10년 정도 사형 선고가 없어진다면, 서서히 사형 제도가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정부는 2020년과 2022년 유엔총회에서 ‘사형집행 모라토리움(유예)’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으며, 유엔 자유권위원회(2023년)와 고문방지위원회(2024년)는 연이어 한국 정부에 사형제도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 이학영 국회 부의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인권에 기반한 사형제도의 대체형벌은 무엇인가’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연례 세미나 2024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