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오현 기자] 위안부 할머니의 활동을 위해 기부한 돈이 다른 용도로 사용됐다며 후원자들이 청구한 후원금 반환 소송에서 대법원이 원고 패소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의 이같은 결정으로 후원자들이 후원금을 반환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 대법원 전경.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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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1일 오후 ‘위안부 할머니 후원금 반환소송 대책모임’(대책모임) 소속 회원들이 대한불교조계종 ‘나눔의집’을 상대로 낸 후원금 반환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선 ‘특정한 목적’을 위한 기부 증여계약에서 그 목적이 민법 제109조에서 정한 계약의 ‘중요 부분’에 관한 것인지가 쟁점이 됐다. 민법 109조에 따르면 의사표시는 법률행위 내용의 중요부분에 ‘착오’가 있는 때에는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1심과 2심에서는 ‘착오’를 원인으로 한 후원계약 취소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피고가 표시하고 원고가 인식했던 후원계약의 목적과 후원금의 실제 사용 현황 사이에 착오로 평가할 만한 불일치가 존재하고, 원고는 이러한 착오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후원계약 체결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원고의 인식은 단순한 예측이나 기대가 아니라 그 예측·기대의 근거가 되는 현재 사정에 대한 인식도 포함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그 인식이 실제로 있는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착오로 다룰 수 있다”고 했다.
나눔의집 후원금 유용 의혹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6)할머니가 2020년 5월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이 피해자들을 위해 후원금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나눔의집 직원은 운영사가 후원금을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부동산과 현금자산으로 보유해 향후 노인 요양사업에 쓰려 한다며 경기도 광주시,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에 공익 신고했다.
경기도 민관합동수사단의 조사 결과 후원금의 대부분이 타 법인의 계좌로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전체 후원금 88억원 중 불과 2억원만 실제 생활하는 나눔의집 양로시설에 지원됐다. 또한 할머니들에 대한 정서적 학대 정황도 발견됐다.
이에 대책모임은 2020년 6~8월 2차례에 걸쳐 후원금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차 후원금 반환 소송에는 총 23명이 동참했으며 나눔의집을 상대로 5000여만원을 청구했다. 2차 소송에는 32명의 후원자가 참여해 정의연의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정의연 이사장을 지낸 윤미향 전 의원, 나눔의집에 3600여만원을 청구했다. 대책모임은 소송 제기 당시 기자회견에서 “막대한 후원금이 모금됐지만 정작 할머니들을 위한 치료 및 주거, 복지 등에는 쓰이지 않았다는 보도를 접하고 착잡하고 참담했다”며 “후원금의 사용처를 명확하게 확인하고 취지와 목적에 맞게 조치하는 건 후원자의 당연한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1심과 2심에선 원고가 모두 패소했다. 나눔의집 측이 후원금을 개인적 용도로 사용하거나 유용하려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1심 재판부는 “피고가 후원금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생활·복지·증언활동 지원에 사용할 의사가 없었는데도 이런 용도로 사용할 것처럼 원고들을 기망했다거나 착오에 빠뜨려 후원 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대책모임 측은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2심 또한 원심 판결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