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오상용기자] 꼬여만 가던 LG카드 처리가 9일 타결됐습니다. LG카드는 채권단과 LG그룹의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회생절차를 밟게 됐고, 카드발 금융대란 위기는 겨우 고비를 넘겼습니다. 경기가 살아나도 부실기업은 언제든 생겨나는 법. LG카드 사태가 남긴 과제와 의미를 경제부 오상용 기자는 부실기업 처리의 원칙에서 찾고자 합니다.
연말연초 금융시장을 뒤흔들었던 LG카드 사태는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정부와 은행, 나아가 국민들은 톡톡히 대가를 치뤄야 했습니다.
LG카드 정상화 방안은 하루하루 바뀌기를 밥먹듯 했습니다. LG카드 처리가 이처럼 혼미를 거듭한 것은 왜일까요. 대부분 부실기업처리가 그러했듯 `누가, 무엇을, 얼마나 책임질 것이냐`에 대한 이해당사자간 갈등 때문입니다.
당사자들의 `이해`는 각자가 신봉하는 원칙과 명분으로 포장됐습니다. 정부와 채권단, LG그룹간의 힘겨운 줄다리기를 조종했던 원칙들은 `주주이익 중시`(국민은행)와 `대주주 유한책임`(LG그룹) `시장안정을 위한 금융기관 역할론과 국민부담 최소화`(정부) 등으로 요약됩니다.
이 때문에 LG카드 처리과정은 시장의 핵심준칙들이 일대 격돌하는 혼란의 장이 됐습니다. 어떤 명분이 보다 잘 먹혀드느냐에 따라 책임소재도 오락가락했습니다. 일례로 LG그룹과 산업은행이 막판에 추가 부담을 뒤집어 쓴 것은 어떤 명분도 주주이익에 앞설 수 없다는 국민은행 명분의 버티기가 주효했던 탓입니다.
채권은행들은 자기들이 망할 것을 예상하고도 LG카드에 대출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LG카드 방만경영의 책임이 은행에 있을리 만무하고, 은행도 엄연히 소액주주와 외국인 대주주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권익이 우선일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시장안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정부의 명분에는 공감하지만 능력밖의 짐을 지우지 말라고 반발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방만경영의 책임을 져야 할 LG그룹도 할 말은 많습니다. LG측 주장대로 구본무 회장은 `한번 주주면 영원한 주주`는 아닙니다. 상법이 정한 주주는 투자한 만큼, 보유한 지분에 해당하는 손실을 지면 됩니다. LG카드 경영을 좌지우지해 온 만큼 구본무 회장과 특수관계인이 사재를 털어 손실책임을 져야 한다는 근거는 `상법이 아니라 국민정서법` 때문이라는 항변도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관치의 비난을 무릅쓰고 은행들의 동참을 압박해 온 정부의 논리는 "시스템 위기는 시장참여자들의 공조를 통해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중은행들은 카드정책 실패의 책임이 큰 만큼 정부가 국책은행(산업은행)을 통해 총대를 메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이같은 해법은 결국 불특정 국민다수의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정부의 방어논리였습니다.
정부와 채권단, LG그룹의 주장중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거나 시장자본주의에 어긋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기업과 금융기관 부실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당국이 감독을 강화하고, 기업들의 방만경영을 차단할 지배구조를 수립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부실기업·금융기관 처리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부실기업은 언제든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때마다 우리 시장과 국민들은 마음 졸이며 신물나는 벼랑끝 대치를 지켜봐야만 하는 것일까요. 부도유예협약이나 워크아웃,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은 더 이상 정답이 아닙니다.
원칙과 명분이 충돌할 때 이를 어떻게 조정하고, 불가피한 손실을 누가, 어떻게 분담할 지 새 기준과 관행을 만들지 않으면 앞으로의 부실처리 과정은 불 보듯 뻔합니다. 지긋지긋한 처리과정이었지만 LG카드 사태에서 그나마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