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오석 기자] 윤석열 정부 들어 외교 기조가 미묘하게 변화하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통상 ‘한중일’(한국·중국·일본)로 불렀던 방식을 ‘한일중’으로 바꾼 데 이어, ‘북러’(북한·러시아)를 ‘러북’으로 표현하면서다. 외교적 우선 순위의 변화를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8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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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1일(현지시간 20일) 뉴욕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러가 아닌 러북으로 얘기한 까닭’에 대한 질문에 “여러 가지 해석을 낳을 수 있겠다”면서 “북한을 맨 앞자리로 불러줘야 한다는 건 우리 정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유연대, 법치가 얼마나 한국과 협력하느냐가 1차적 기준”이라고 설명했다.
제78차 유엔총회 고위급 회기 참석을 위해 지난 18일부터 미국 뉴욕을 순방 중인 윤 대통령은 이날 기조연설을 통해 “러시아와 북한 군사 및 핵거래는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안보와 평화를 직접적으로 겨냥한 도발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국을 비판하면서 ‘러시아-북한’ 순으로 지칭한 것이다.
관례적으로, 정부 발표 혹은 언론 보도는 그간 두 국가를 ‘북러’ 순서로 표기했었다. 이를 바꿔버린 윤 대통령의 이번 발언에 어떤 의도성이 있는지 다양한 주장이 나왔다. 해당 관계자는 “북한이 러시아와 협력하면서 더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단락이었기에 북한이 뒷자리에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현 정부의 외교 기조가 과거와는 다르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은 이전에도 있었다. 앞서 윤 대통령은 이달 초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동북아 3국을 ‘한중일’이 아닌 ‘한일중’으로 언급하면서 일본을 중국보다 먼저 표기했다. 동북아 3국 회의에서 자국을 가장 앞에 두고 차기 의장국을 먼저 표기한다는 원칙이 있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나 이는 명분에 불과하며, 한일 관계가 정상화된 상황이 표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이 ‘러북’ 순서로 언급한 이유는 무력 도발로 한반도 안보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