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고교 무상교육 비용의 약 47%를 정부가 부담하는 내용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정법에 대해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향후 국회 재의결이 무산돼도 학생·학부모가 부담할 일은 없을 전망이다. 중앙정부·시도교육청 중 누가 예산을 부담하느냐의 문제일 뿐 고교 무상교육 지원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현행 초·중등교육법은 고교 교육비를 무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 작년 10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조정훈 국민의힘 교육위원회 간사를 비롯한 의원들이 이날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고교 무상교육 재원 분담 기간 연장 법안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안을 위원회 대안으로 의결한 것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성국, 김대식, 조정훈, 김민전 의원.(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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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14일 국무회의를 열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개정법률안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교육부는 “해당 법안의 개정 여부와 관계없이 고교 학비는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학생과 보호자로부터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고교 무상교육은 앞으로도 지속된다”고 밝혔다.
고교 무상교육은 입학금·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교과서비를 모두 지원하는 제도로 2019년부터 시행됐다. 예산 중 47.5%는 정부가, 나머지 52.5%는 교육청(47.5%)과 지방자치단체(5%)가 부담한다. 올해 고교 무상교육에 투입되는 전체 예산은 1조9920억원, 이 중 47.5는 9462억원이다.
현행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고교 무상교육 예산의 47.5%를 ‘정부 부담’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제도 안착을 위해 정부 부담을 3년간 명시한 것으로 작년 말 일몰(법률 효력 상실)될 예정이었다. 이날 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한 개정법률안은 정부 부담을 3년 더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의 거부권 행사로 이를 국회에서 재의결하려면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재적 의원 전원(300명) 출석 시 가결에 200명이 필요한데 범야권(192명)이 모두 찬성해도 재의결이 불가능하다. 개정법률안의 재의결이 무산되면 고교 무상교육 예산(1조9920억원)은 모두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우리 교육청의 경우 개정법안이 시행되지 않으면 국가·지자체가 부담하던 약 1850억원을 매년 추가 부담하게 된다”며 “향후 재정적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교육부 관계자는 “중앙정부보다는 각 시도교육청의 재정적 여력이 더 크다”며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이 3조원 이상 늘었으며 재정안정화기금도 전체 교육청에 6조원 이상 쌓여 있다”고 반박했다.
교육교부금은 학생들이 전국 어디에서나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방 교육을 지원하는 재원이다. 매년 내국세 수입의 20.79%와 교육세 일부가 교육교부금으로 편성된다. 교육부에 따르면 각 시도교육청으로 배정되는 교육교부금 규모는 올해 72조3000억원으로 전년(68조9000억원)보다 3조4000억원(4.9%) 늘었다. 교부금 축소로 교육청 예산이 줄었을 때 쓸 수 있는 재정 안정화 기금은 전년(11조2000억)에 비해 줄긴 했지만 아직 6조원이 남은 상태다. 여기에 담배소비세의 지방교육세(약 1조6000억원) 전입을 규정한 지방세법 조항의 일몰 기한도 2년 연장됐다.
반면 교육부의 경우 개정법률안 시행 시 고교 무상교육 예산을 예비비(1조6000억원)에서 부담할 수밖에 없다. 전체 예비비 1조6000억 중 59%에 달하는 9400억 이상을 고교 무상교육에 사용할 경우 올 한해 생길 지 모를 재난·재해나 전염병 대응에 지원할 예비비가 부족할 수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개정법안이 무산될 경우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정부가 부담해온 9400억원 정도를 나눠 부담하게 되는데 전년 대비 교육교부금 증액 등을 감안할 때 가능한 수준”이라며 “특히 교육청들의 현금성 복지지출 등 재정 낭비를 줄이면 추가 부담에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