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것 같던 '가습기살균제' 사건 다시 원점…"공동정범 아냐"(종합)

옥시와 다른 성분…제조·판매 과정 서로 몰랐다 판단
공소시효 문제 재검토…면소 가능성도 제기
단독사용 피해자 사망·상해 인과관계 재심리
  • 등록 2024-12-26 오후 3:11:27

    수정 2024-12-26 오후 7:20:56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대법원이 98명의 사망·상해 피해를 낸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직 대표들에게 실형을 선고한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했다. 파기환송심에서는 SK케미칼·애경 제품만을 사용한 피해자들에 대한 사망·상해 인과관계가 추가 심리될 것으로 보인다. 공소시효 완성 여부에 따라 면소 가능성도 점쳐진다.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가 지난 1월 11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가습기살균제’ 관련 항소심 선고공판을 마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6일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홍지호 전 SK케미칼(285130) 대표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018250) 대표 등에 대한 상고심에서 금고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앞서 옥시의 신현우 전 대표는 2018년 1월 같은 혐의로 징역 6년이 확정된 바 있다.

대법원은 SK케미칼·애경과 옥시 등이 서로 다른 성분의 제품을 독자적으로 개발·판매했기 때문에 과실범의 공동정범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형법 제30조는 ‘2인 이상이 공동으로 죄를 범한 때에는 각자를 정범으로 처벌한다’는 공동정범 조항을 규정하고 있다. 법적으로 책임능력이 있는 2명 이상이 서로 공동으로 죄가 될 사실을 실현하는 경우 전원을 교사범이나 종범이 아닌 정범으로 처벌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관련 사건 피고인들(옥시)의 제품 주원료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고, 이 사건 제품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로 성분과 체내분해성, 대사물질 등이 전혀 다르다”고 판시했다.

이어 “어떤 제품이 개발·출시된 후 경쟁업체가 ‘기존 제품과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른 대체 상품’을 독자적으로 개발·출시한 경우에는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공동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며 “서로의 제품 개발·출시를 인식했다거나 의사를 연락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픽= 김일환 기자
성분이 다른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회사와의 공동정범은 성립하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단에 따라 향후 이 사건 파기환송심에서는 크게 3가지 쟁점이 다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공소시효 문제다. 2심은 옥시 사건 피고인들과 공동정범 관계에 있다고 보고 공소시효가 중단됐다고 판단했지만, 대법원이 이를 부정함에 따라 일부 공소사실에 대해서는 시효가 완성돼 면소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 사건 피해자 상당수가 2010∼2011년에 숨졌다. 검찰은 홍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를 2019년 기소했다. 업무상과실치사죄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또한 SK케미칼·애경 제품만의 단독 사용자들에 대한 사망·상해 인과관계를 새롭게 심리해야 한다. 1심은 이 부분 인과관계를 부정했지만 2심은 이를 인정해 판단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여러 제품을 함께 사용한 피해자들의 경우 SK케미칼·애경 제품만의 위험성과 피해 간의 인과관계를 별도로 심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앞서 1심은 “CMIT·MIT와 피해자들의 질환 사이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며 전원 무죄를, 2심은 “안전성 검사도 하지 않은 채 제품을 판매한 것은 주의의무 위반”이라며 홍·안 전 대표에게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2011년 4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임산부들이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숨지면서 드러났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 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피해 신청자는 7977명으로, 이 중 1883명이 사망했다.

한편 SK케미칼은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한다. 이번 판결과 별개로 피해자분들의 고충이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죄송스러운 심경”이라며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전했다.

대법원 (사진= 방인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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