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국립극단이 신작 연극 2편을 나란히 선보이고 있습니다.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이 불안한 집’,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에 오른 ‘스고파라갈’입니다.
두 작품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한국 연극계가 주목하는 젊은 연출가인 김정(‘이 불안한 집’), 임성현(‘스고파라갈’)의 작품이라는 점인데요. 두 연출가 모두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두 작품의 공연 시간입니다. ‘이 불안한 집’은 공연 시간만 무려 5시간에 달합니다. 개막 직전 우려(?)도 많았지만, 개막 이후엔 5시간이 지루하지 않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반면 ‘스고파라갈’의 공연 시간은 80분입니다. 짧지만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독특한 형식으로 충격(?)과 여운이 오래 갑니다. 무엇을 골라 보더라도 연극의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피의 복수에 5시간이 ‘순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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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막이 ‘버라이어티 쇼’ 같은 느낌이라면 2막은 ‘가족 드라마’입니다. 아가멤논을 끝내 살해한 클리템네스트라, 그리고 가족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는 딸 엘렉트라의 이야기가 펼쳐지는데요. 2막은 이들 가족의 이야기에 보다 집중합니다. 밀도 높은 심리 드라마를 통해 빠져나오고 싶어고 그러지 못하는 ‘피의 굴레’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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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이후 3막에 대해 다소 호불호가 엇갈리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무대 구성과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원래 그리스 비극에서 3부는 2부까지 벌어진 사건들을 둘러싼 신들의 재판이 그려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니 해리스는 이 문제를 인간이 해결하는 이야기로 풀어내기 위해 이런 각색을 선택한 게 아니었을까요. 무엇보다 정교한 연출과 강렬한 이미지로 5시간이 ‘순삭’ 되는 신비로운 체험이 됐습니다. 공연은 오는 24일까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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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제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스고파라갈’은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단어인데요. 거꾸로 읽으면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갈라파고스죠. “뒤집힌 세상 속에서 우리는 제대로 알고, 보고 있는지, 이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지 묻는다”는 의미인 듯 합니다.
일반적인 연극에서 볼 수 있는 ‘기승전결’ 구조의 스토리는 없습니다. ‘갈라파고스 땅거북’과 이를 둘러싸고 7명의 배우들이 나누는 대화가 80분을 가득 채웁니다. 땅거북은 계속해서 바다로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7명은 왜 땅거북이 바다로 가야 하는 건지, 바다로 간다면서 왜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대화를 이어갑니다. 반복되는 단어로 이루어진 대사, 그리고 의미를 좀처럼 알기 힘든 퍼포먼스가 계속해서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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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말미에는 관객에게 도발(?)적인 제안도 합니다. 배우들은 자신들이 국립극단에서 계속 공연하려면 관객들이 ‘한줄평’을 남겨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즉석에서 한줄평을 남겨주면 티켓을 현금으로 바꿔주겠다고 제안합니다. 황당하면서도 흥미로운 퍼포먼스였는데, 공연이 끝나고 곱씹어 보니 예술마저도 자본주의적인 거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풍자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무튼 (좋은 의미에서) 이상하고 재미있는 연극입니다. 공연은 오는 17일까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