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김시대 풍미 `킹메이커` 김윤환 타계

"양지만 좇아" vs "중용상덕의 정치인"..평가 엇갈려
  • 등록 2003-12-15 오후 3:00:44

    수정 2003-12-15 오후 3:00:44

[오마이뉴스 제공] "킹메이커"로 3김시대를 풍미했던 허주(虛舟) 김윤환 전 의원이 15일 오전 10시50분께 타계했다. 향년 72세. 지난 6일부터 김 전 의원의 모든 장기는 정지상태였으며 이에 가족과 측근들은 임종에 대비해왔다. 그동안 그를 병문안했던 인사들은 11월 초께부터 "오늘 내일 하는 것 같다"며 그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감지해왔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차려지며 발인은 18일 이루어질 예정이다. 장지는 구미시 장천면에 위치한 선영. 김 전 의원은 작년 대선이 한창이던 9월께 등 부위에 극심한 통증을 느껴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해 정밀검진과 치료를 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암 진단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올초 병원측으로부터 신장암 판정을 받았다. 그는 암 판정을 받은 직후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그는 미국에서 한쪽 콩팥을 떼어내고 척추수술도 받았다. 신장암이 척추에까지 전이됐던 것. 미국에서 항암치료를 받으며 요양하던 김 전 의원은 지난 10월 귀국해 일산의 암센터에서 치료를 받다가 방배동 자택으로 들어와 암과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돼 다시 일산 암센터에 입원해 생의 마지막을 준비해왔다. 지난 10월 28일에는 미국에서 잠시 귀국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투병중인 김 전 의원을 전격 방문해 화제가 됐다. 이 만남은 이 전 총재가 2000년 "2·18 공천파동"(일명 "학살공천" 혹은 "개혁공천")을 겪는 과정에서 그를 공천에서 탈락시킨 악연이 있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이 전 총재는 한인옥 여사와 함께 방배동 자택을 찾아가 부인인 이절자 여사에게 "여러가지로 미안하다, 너그러이 용서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절자 여사(64)와 윤미·윤경 등 두 명의 딸이 있다. 장녀 윤미씨의 남편이자 김 전 의원의 맏사위는 송재빈 전 타이거풀스 인터내셔널 대표로 2002년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차녀 윤경씨는 현재 프로골퍼로 활약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생전에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및 서청원 전 대표와 함께 대표적인 <조선> 출신 정치인으로 꼽혔다. 그는 1960년 <조선> 정치부 기자로 입사해 주일·주미특파원을 거쳐 정치부장과 편집부국장, 편집국장 대리를 지냈다. 김 전 의원은 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고향인 경북 선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의 나이 당시 41세였다. 하지만 고향선배였던 박정희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79년 유정회(10대) 멤버로 국회에 입성했다. 김 전 의원은 5공과 6공을 거쳐 YS의 문민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하며 줄곧 권력실세로 통했다. 그는 79년 국회에 입성한 이래 24년간 5선 국회의원 경력에 정무장관 3회, 원내총무 2회, 집권여당 사무총장 2회, 집권당 대표위원을 2회 지냈다. 말년에는 미니정당인 민국당의 최고위원과 대표를 지냈다. 김 전 의원은 정치권에서 "킹메이커"로 통했다. 특히 집권여당 다수파로부터 견제를 받았던 후보들을 지원해 대통령 후보로 만드는 데 성공해 주목을 받았다. 92년에는 YS를, 97년에는 이회창 전 국무총리를 집권당의 대선후보로 만들었다. 작년 대선 때는 "공천배제"라는 악연에도 불구하고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킹메이커로서 세 번 중 한 번만 정권재창출에 성공한 셈이다. 20여년간 유지해온 김 전 의원의 "양지권력"은 2000년 2·18 공천파동을 기점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탈당해 신상우·이기택·김상현 의원 등과 함께 민국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본인은 낙선하고 민국당은 겨우 2석밖에 얻지 못하는 참패를 당했다. 그는 특히 공천탈락 직후 "권력은 자신이 가져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타협과 조정의 명수" "마지막 로맨티스트 정치인" "변화와 적응의 달인" "변신의 천재" "물렁뼈" "권력의 중간상인" "소신없이 양지만을 좇는 킹메이커" "구시대 정치인의 표본"…. 김 전 의원에 대한 평가는 이렇게 극과 극을 달린다. 민정계의 핵심인사였던 그는 신군부의 국가보위 입법회의 문교공보위원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으며 청탁비리와 공천헌금비리 의혹에 시달렸다. 특히 92년과 97년 대선 때는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영남지역주의를 자극해 당시 국민회의측으로부터 "킹메이커로 위장한 희대의 지역감정 메이커"라는 혹평을 받았다.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지난 16대 총선 때 총선시민연대로부터 "공천 부적격자"에 선정됐고 자신의 오랜 텃밭이었던 경북 구미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도 없진 않다. 그를 따르는 한 의원은 언젠가 "허주는 합리성과 상식을 바탕으로 정치를 물 흐르듯 한다"며 "그를 따라가서는 최소한 손해보지는 않는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김 전 의원을 5년여 보좌했던 허성우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허주는 3김과 차별되는 정치인"이라며 "3김은 여유가 없는데 허주는 여유있게 정치를 해왔다"고 그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허 부대변인은 "많은 기자들이 그의 인간적인 매력에 호감을 가졌다"며 "사람을 아주 편안하게 해주는 기술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김 전 의원은 격식을 따지지 않고 친화력이 뛰어난 것으로 잘 알려졌다. 그는 자신이 즐겨 먹던 개고기 전골을 직접 요리해 집에 찾아온 손님들을 손수 대접했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김 전 의원이 문단에 등단한 시인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1960년 초 시인 허만화씨와 함께 <시와 비평>이라는 시 전문 계간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도 시를 닮아야 한다"고 얘기하곤 했다. 정신과의사인 정혜신씨는 자신의 저서 <남자 VS 남자>에서 김 전 의원을 "변화를 좇는 빈배"라며 "변화를 품는 거목" 김윤식 교수와 대비시켰다. 정씨는 특히 "(그의 변화는) 특유의 유연함과 어울리지 않아 불길하다"고 적었는데 그의 지적은 결국 적중한 것 같다. 한나라당 공천탈락에 이어 총선에서 낙선했고 민국당 실험도 실패했으며 두번에 걸쳐 지지했던 이회창 후보도 두번 모두 대권을 거머쥐는 데 실패했기 때문. 생전 김 전 의원의 좌우명은 "중용상덕"(中庸常德)이었으며 존경했던 인물은 중국의 혁명가로 항상 "2인자"의 자리에 머물렀던 주은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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