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아마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그런 생활일 겁니다. 2년 반동안의 연애끝에 이번 달에 결혼하게 된 저는 요즘 이런저런 설렘으로 가득합니다.
결혼 준비는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쌍춘년때문인지 예식장 잡기도 만만치 않았는데 전세대란까지 겹쳐 신혼집 구하는 데도 눈물이 쏙 빠질만큼 힘들었습니다.
여름휴가 기간동안 서울 각지를 헤매며 "매물이 없어 우리도 손놓고 있다"는 부동산 중개업소들의 한결같은 대답을 뒤로하고 돌아설때면 하늘이 노랗게 보일 지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쌍춘년의 태클과 전세대란이라는 장애물을 뚫고 간신히 예식장과 신혼집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덩그러니 빈 집에 채워놓을 살림살이를 조금이라도 싸게 장만할 심산에 저와 예비 아내는 직접 발로 뛰어다녔습니다. 가구단지로 백화점으로 할인매장으로 직접보고 결정하자는 원칙에 충실하게 말이죠.
하나 둘씩 함께 살림살이를 장만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런데 살림살이를 장만하면서 하나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백화점이건 할인매장이건 "현금으로 하시면 더 싸게 해드릴게요"라는 말을 꼭 하더군요. 그것도 아주 넌지시 말이죠.
그래서 아예 전략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른 후 "현금으로 할건데.."하고 운을 떼보는 겁니다. 역시 백발백중, 반색하며 좋아하더군요. 단, 조건이 있습니다. 현금영수증 발급은 절대 안된다는 겁니다.
"뭐 현금영수증 안받으면 어때, 싸게 샀으면 됐지"하는 마음에 얼마 되지는 않지만 현금 들이대기 전략을 밀어 붙였습니다. 커튼가게나 가구점 같은 소매상에서야 흥정이 당연하다지만 유명 백화점에서도 이 전략이 통할 줄은 몰랐습니다. 실로 놀라운 `약발`이었습니다.
물론 연말정산때 생각지도 않은 `공돈`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눈 앞의 이익이 더 가까웠습니다. "현금영수증 필요하세요?"라고 물어 볼 때마다 그 순간만 망설임이 교차할 뿐 이내 "아뇨"라고 대답해 왔으니까요.
커튼집에서였습니다. 그날도 저희는 물어물어 싸고 잘 한다는 집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좋은 물건을 찾아 역시 `현금`으로 에누리해 구입했습니다. 포장을 기다리고 있는데 주인 아주머니가 전화통화를 하시더군요. "손님 왜 이러세요? 처음부터 현금영수증은 안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깎아드렸는데".
가게를 나서 커튼 뭉치를 들고 오는데 이상스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현금으로 구입하고 현금영수증을 달라는 것은 소비자의 당연한 권리인데 잠시동안 에누리의 유혹에 빠져 권리를 찾지 못한 것 같아 내내 씁쓸했습니다.
현금영수증을 정착시켜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의 소득파악을 분명히하고 세금을 제대로 부과해야 한다며 핏대 높였던 제 자신이 순간 부끄러워졌습니다. 비록 의사나 변호사처럼 고소득자는 아니더라도 저 스스로 현금영수증 챙기기에 소홀했으니 말이죠.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내년 7월부터 현금영수증을 거부하는 행위를 적발해 신고할 경우, 한 건당 5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됩니다. 소위 `稅파라치`제도가 생기는 셈입니다.
내년 7월이 오기 전에 저부터라도 이제 꼬박꼬박 현금영수증을 챙기는 습관을 길러야겠습니다. 연말정산을 노린 사전포석이 아니라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기꺼이 많이 내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일은 이런 사소한 실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