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노래 ‘아침이슬’의 작사·작곡가이자 소극장 학전 대표로 30여 년간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이끌었던 김민기가 21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소극장 학전 김민기 대표의 빈소. (사진=학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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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학전에 따르면 김민기는 전날 오후 8시 26분 지병인 위암 증세가 악화해 세상을 떠났다. 김민기의 조카인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림 카페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금요일 상태가 안 좋아졌다”며 “보고 싶은 가족들을 다 기다려 만나시고 편안히 떠나셨다”고 말했다.
김민기는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경기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1969년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에서 획일적인 수업 방식에 거부감을 느꼈고,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 고등학교 동창 김영세와 포크송 듀오 ‘도비두’로 활동을 시작했다. 1970년 명동 ‘청개구리의 집’에서 공연을 하며 대표곡 ‘아침이슬’을 작곡했다. 이후 양희은이 노래한 ‘아침이슬’은 저항정신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1987년 민주항쟁 당시 광장에 모인 군중들이 부르기도 했다.
1971년 데뷔 음반 ‘김민기’를 발표했다. 그러나 ‘꽃 피우는 아이’, ‘늙은 군인의 노래’, ‘상록수’ 등이 금지곡으로 지정됐고 음반 또한 압수당했다. 생계를 위해 봉제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노래로 담아냈다. 1984년에는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결성해 프로젝트 음반을 발매했다.
연극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1973년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와 이듬해 마당극 ‘아구’ 제작에 참여했다. 1978년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시작으로 1983년 연극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등을 연출했다.
1991년에는 대학로에 소극장 학전을 개관했다. 학전(學田)은 ‘배움의 밭’이라는 이름처럼 한국 문화예술계에 씨앗을 뿌리고 이를 키워온 ‘못자리’였다. 고(故) 김광석·동물원·들국화 등 가수들은 물론, 황정민·김윤석·장현성·조승우·방은진 등 많은 배우가 학전을 통해 예술가로 성장했다.
| 김민기 학전 대표. (사진=학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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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에는 독일 그립스 극단의 작품을 한국적으로 각색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초연했다. 이 작품은 2023년까지 8000회 이상 공연, 7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한국 뮤지컬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남았다. 또한 어린이극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을 올리며 아동 공연 문화 발전에도 기여했다. ‘의형제’로 2001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분 대상과 연출상을 받았고, ‘지하철 1호선’으로 한국과 독일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독일 정부로부터 괴테 메달을 수상했다.
김민기는 지난해 가을 위암 진단을 받았다. 건강 악화와 경영난으로 공연장을 더 이상 운영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올해 3월 15일 학전블루 소극장의 문을 닫았다. 그러나 학전의 레퍼토리를 다시 무대에 올리겠다는 강한 의지로 투병해 왔고, 21일 별세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 씨와 슬하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학전 측은 “고인과 가족의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하오니 너른 양해 부탁드린다”며 “한평생 좋은 작품으로 관객과 만나고자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