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천년 희망에 들떴던 2000년, 전세입자는 달음박질치는 전셋값에 몸서리쳤습니다. 4000만원하던 전셋집이 계절이 바뀌기 전에 8000만원이 되었습니다. 전세대란이 찾아온거죠.
IMF외환위기 때 고꾸라지는 전셋값에 한숨지며 역(逆)전세대란을 경험했던 집주인들은 당시 쾌재를 불렀지만 서민들에게는 이 때 일이 지금도 악몽의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올 가을 전세시장을 노크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징후에 불과하지만 분위기는 심상찮습니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약보합세를 보이던 전셋값이 8월 들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통계치로는 강북 0.6%, 강남 0.2%(국민은행 8월 집값 통계)에 불과하지만 체감상승률은 이미 1%를 넘어섰습니다. 찾는 사람은 많은데 물건이 없으니 값이 오르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서울의 경우 신규 입주물량은 예년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쌍춘년 결혼 특수와 재건축 이주수요로 줄을 서 있는 대기수요는 넘쳐납니다.
참여정부는 부동산정책의 목표로 집값 안정과 서민 주거복지 증진을 내세웠습니다. 8.31대책 1주년을 맞아 '서민 중산층을 위한 주거복지정책 추진방향'도 의욕적으로 내놓았습니다. 집값의 고삐는 잡았으니 서민들을 위한 주거복지에 힘쓰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지요.
정부가 마련한 서민 주거복지 방안은 ▲최하층(소득1분위)에게는 소형 국민임대주택을 싼값에 제공하고 ▲하층(소득2-4분위)에게는 중소형 국민임대주택과 전월세 자금을 확대하며 ▲중산층(소득5-6분위)에게는 공공임대주택과 전월세형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같은 계획으로는 발등의 불을 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정부가 올해 공급키로 한 임대주택은 모두 12만6000가구(2012년까지 116만가구 공급)에 달하지만 이들 물량은 2-3년 후에나 수요자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집주인의 횡포를 막을 수 있는 수단도 서둘러 강구해야 합니다. 한꺼번에 수천만원씩 올려달라는 요구에 제동을 걸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 2004년 6월 제출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참고할 만합니다. 개정안의 골자는 ▲10년 범위에서 조세·공과금·경제사정의 변동이 있을 경우에 한해 전월세 인상률 연 5%로 제한 ▲10년간 세입자 계약갱신 청구권 보장 ▲임대료 과다인상 등 임대인의 부당행위에 대한 시정명령제 도입 등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개정안은 2년 동안 심의조차 안 되고 있습니다. 쏟아지는 정책 속에서 정작 서민들에게 직접 도움이 될 방안은 사장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추석 명절이 다가 오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서민들에게는 `명절의 기쁨` 대신 `전세 대란`의 공포만 깊어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