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박동석기자] 17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22일 막을 내렸다.
국민들은 올 국감이 시작되기 전 17대 국회는 전체의원의 3분의2가 새얼굴로 물갈이가 확실하게 된 만큼 참신하고 생산적인 결과가 쏟아져나오길 고대했다.
국감이 올해로 17년째 성년기에 접어들면서도 온갖 투정과 정쟁, 폭로로 얼룩져왔기 때문이다. 피감기관만도 457개로 사상 최대였고 증인만도 1000명이 넘어 기대는 여느 때보다 컸다.
그러나 기대는 결국 무산됐다. 여(與)와 야(野)의 샅바싸움외에는 좋은 기억으로 남을만한 정책 대안이라든가, 송곳 지적은 찾아볼 수 없다는 게 17대 국회 첫 국감을 지켜본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일부 의원들의 눈부신 활약이 돋보이긴 했으나 진정 민생과 국가의 미래를 위해 여와 야가 머리를 맞대고 손을 잡는 모습은 이번에도 없었다.
그나마 종반에 터진 헌법재판소의 신행정수도 이전 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의 파장에 가려 국감은 있었는 듯 없었는 듯 흐지부지 막을 내린 느낌이다. 17대 국회 첫 국감의 핵심 이슈들을 정리한다.
◇환율방어 득실 논란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편법사용에 대한 논란은 이번 국감의 최대 논쟁거리였다. edaily가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 각각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비교해 1조8000억원의 외평기금이 행방불명됐다는 보도를 한 뒤 주요 언론과 국회의원들의 집중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파생거래관련 이자비용이 1000억원 수준에서 올해 18배나 급증한 점과 국제통화기금(IMF)에는 파생거래 내역을 지난 8월부터 보고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외환시장과 국회의원들을 다시금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여야는 재경부 국감이 시작된 지난 11일부터 국감 마지막날이 22일까지 외평기금 문제를 중점적으로 거론했고 위법 여부에 대해서도 따져 물었다. 그러나 재경부가 외평기금 내역을 끝까지 공개하지 못하겠다고 버티며 공방은 한층 가열됐다.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은 "정부가 환율방어를 위해 파생시장에 개입, 대규모 손실을 입었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며 "한국은행이 추정하고 있는 외환안정비용보다 상당히 많은 1조8000억원정도 비용이 사용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차액의 실체를 요구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외평기금 내역의 보고 체계 마련과 환율정책의 한은 이관 필요성을 제기해 재경부를 긴장시켰다. 또 여야는 재경부의 불투명한 외환정책을 빌미로 한국투자공사(KIC) 설립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KIC법 국회통과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헌재 위헌 결정 놓고 신경전
국회 운영위의 22일 대통령 비서실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정국 최대현안으로 부상한 신행정수도 건설에 대한 헌재의 위헌결정이 도마에 올랐다.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5월 헌재의 탄핵기각 결정후 대국민성명을 통해 `민감한 상황에 대해 냉정하고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시킨 데 대해 국민 모두가 높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말한 사실을 상기시킨 후 "헌재의 결정에 불복한다면 다시 탄핵 정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인가"라고 목청을 드높였다.
열린우리당 전병헌 의원은 "한나라당이 16대 국회에서 자신들이 통과시킨 법안에 대해 헌재가 위헌결정을 내린 데 대해 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국회의 입법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17대 총선을 앞두고 지역득표 전략의 일환으로 국가적 명운이 달려 있는 대사를 다뤘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김우식 대통령비서실장은 헌재 결정에 대해 "법리의 내용과 타당성을 심층적으로 분석해봐야 한다"며 "우선은 차분하게 검토하고 대책을 수립하겠다"고 차분하게 대응했다.
건설교통위에서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신행정수도 이전 정책 실패에 대한 정부와 여당의 책임론이 집중 거론됐다. 행자위와 재경위에서도 헌재의 위헌 결정에 따라 국가균형발전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것과 "위헌충격"을 방지할 수 있는 경제대책을 시급히 마련하라는 주문이 쏟아졌다.
◇성장 vs 분배
전반부 국감의 백미는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성장 위주냐 아니면 분배위주냐를 둘러싼 공방이었다. 성장-분배 논란은 현 정부의 핵심 브레인으로 꼽히고 있는 이정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이 일반 증인으로 채택될 때부터 이미 예견됐었다.
분배보다는 성장이 우선이라고 주장해 온 이 부총리와 성장보다는 분배가 먼저라는 경제철학을 견지해 온 이 위원장이 국감장에서 맞대결한다는 것부터가 관심사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을 좌파적, 반시장적”며 이 부총리와 이 위원장을 몰아붙였다. 또 “참여정부가 분배를 강조하고 있지만 서민경제는 붕괴되고 분배는 오히려 악화됐다”는 비야냥을 던지기도 했다.
이 부총리는 이에 대해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절대로 반시장적이나 좌파적이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최근 미국 대선후보들의 경제정책과 비교해보면 민주당 케리후보보다 훨씬 보수적이라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또 "참여정부는 친노적이라던가 반시장적인 정책을 쓰지 않고 있다"며 "정책수립과정에서 일부 진보적인 정책이 나오고 있지만 실제 집행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 부총리는 분배정책을 “안썼다”고 말한 반면 이 위원장은 “분명히 썼다”고 말해 대조를 보이기도 했다.
◇방카슈랑스 2단계 도입 강행하나
내년 4월로 시행될 예정인 2단계 방카슈랑스는 재경위와 정무위의 주요이슈였다. 재경위와 정무위 국회의원들은 방카슈랑스 시행을 통해 대출과 보험가입을 연계시키는 이른바 `꺾기`는 물론 불완전판매가 심각하다고 점을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이와 함께 설계사들의 대량실업이 예상된다는 점도 2단계 시행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이유로 제시했다. 재경부는 정치권의 이같은 요구에 대해 현행 일정대로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은행권의 특정보험사 상품비중을 조정하고 보험설계사에 대한 별도의 대책은 강구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부총리는 "방카슈랑스의 각종 문제점과 현안에 대해 금감위를 통해 조사하도록 했다"며 "절대불변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현 시점에서는 합리적인 수준으로 예정대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강행의지를 피력했다.
◇한화 대한생명 특혜인수 아닌가
공적자금관리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에 대한 재경위의 국감에서는 한화그룹의 대한생명 인수에 대한 특혜의혹이 핵심 이슈로 다뤄졌다. 야당 의원들은 대한생명 매각과정에 정경 유착 의혹이 있다며 국정 조사를 촉구한 반면 여당 의원들은 매각 과정이 거의 종결돼가고 있는 시기에 또다시 특혜 의혹을 거론하는 것은 금융시장의 불안을 초래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국감을 통해 ‘스타의원’으로 부상한 한나라당 이종구 의원은 "정부가 지난 2002년 대생을 무자격자에게 거의 공짜로 매각해 사실상 특혜를 줬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김정부 의원도 대생은 매각직전인 2001년 8천648억원, 2002년 9천794억원, 2003년 6천150억원 등의 순이익을 낼 정도로 경영여건이 호전되고 있었지만 정부가 대한생명의 가치를 불과 1조6000억원으로 저평가해 매각했다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열린우리당 김종률 의원은 "잔금결제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대한생명 매각 특혜 의혹을 거론하는 것은 금융시장에 불필요한 불안을 초래한다"며 한나라당측의 특혜 의혹 제기를 비판했다.
◇與野 삼성전자 M&A가능성 놓고 대리전
지난 18일 열린 국회 정무위의 공정거래위원회 국감에서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핵심골자인 재벌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축소 문제를 놓고 여야가 한치의 양보없는 백병전을 전개했다. 여야의 이 논쟁은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적대적 인수합병(M&A) 가능성 여부를 둘러싼 공방으로 커지면서 관심을 증폭시켰다.
야당은 금융·보험사 의결권이 15% 이내로 축소되면 삼성전자의 경영권 방어가 힘들어져 외국자본에 적대적 인수합병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열린우리당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일축하고 산업-금융자본 분리차원에서 의결권 축소는 반드시 달성해야할 과제라고 버텼다.
여야는 또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핵심인 출자총액제한 제도의 존폐여부를 놓고 극단적인 대립양상을 연출했다.
한나라당은 출자총액제한 제도가 기업에 족쇄를 채워 투자를 가로 막고 있다며 즉각적인 폐지를 주장했고 우리당은 재벌의 무분별한 사업확장과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로 맞대응했다.
◇카드 사태 책임론과 LG카드 지원 관치 논란
카드 사태의 책임을 둘러싼 공방도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한나라당은 카드대란이 내수부양을 위한 정부의 정책에서 비롯됐다며 정부의 책임을 부각시키려 노력했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은 "정부가 카드사태와 관련해 고의가 없었다는 말을 믿기 어려운 증거들이 있다"며 "2001년과 2002년 금융정책협의회 문건들을 보면 정부는 카드문제에 대한 인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수를 위해 묵과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같은당 최경환 의원은 "정부는 당초 규제건의가 나온이후 1년이 지난 2002년에야 규제에 나섰다"며"정부가 규제를 미룬 1년사이에 신용카드 발급장수는 3000만매에 달했다"며 정부를 질타했다.
우리당 송영길 의원도 "제일 논란이 되는 것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음에도 정부가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라며 "정책적 판단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모처럼 야당과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카드대란과 연관이 있는 전현직 관료들은 책임에 관한 한 `모르쇠`로 일관해 빈축을 샀다.
지난 21일 증인으로 참석한 진념 전 부총리는 카드사태의 1차 책임은 카드사이며 정부의 3번이라며 정부의 책임을 부인했다.
지난98년부터 2000년초까지 금감위원장을 맡았던 이 부총리도 “당시 금감위는 카드사를 직접 감독할 수 있는 권한도 없었다”는 이유로 책임을 회피했다. 우리당 강봉균 의원은 "현금대출 한도를 폐지한 것은 자신이 장관직을 맡기 20일 전의 일이고 카드사들이 무질서하고 무리한 과당경쟁이 1차적 원인"이라며 카드사태의 책임을 카드사로 전가했다.
산업은행에 대한 재경위 국감에서는 LG카드 손실보전에 대한 관치논란과 LG카드 대주주의 `모럴 해저드" 등 LG카드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뤄졌다.
이외에도 서울시에 대한 국감에서 관제데모에 대한 이명박 서울시장의 책임론을 두고 여야가 전면전을 치른 것과 국가보안법 개폐를 둘러싼 공방도 이번 국감의 주요 장면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