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조진형기자]
불황의 골이 깊어지면서 서민들이 소주로 시름을 달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지난 상반기 소주 판매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정도니까요. 그런데 이제 서민들은 바로 그 `소주` 때문에 근심이 하나 더 늘게됐습니다. 산업부 조진형 기자가 `진로소주` 얘기를 전해드립니다.
"이젠 참이슬 먹기도 힘들어진 거 아니냐"는 우려가 앞섭니다. 노조의 부분파업으로 전국 소주시장의 54%, 수도권의 94%를 차지하고 있는 진로의 소주생산량이 수요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기 때문입니다. 도매상들이 물량확보 전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동네 앞 구멍가게에서조차 참이슬 구하기가 힘들어지겠죠.
애주가들은 벌써 "이젠 소주도 못 먹겠구먼"이라며 불만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음식업이나 소매업 등 참이슬과 관련된 업체들도 가뜩이나 장사가 안되는 판국에 이게 웬 난리냐는 반응입니다. 특히 최근 지하철 파업, LG정유 파업 등 이른바 `귀족파업`으로 심기가 불편했던 서민들은 이번 파업을 달갑게 보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노조의 파업사태는 그동안 우리가 마신 참이슬만큼이나 관심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진행됐던 파업과는 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단 진로 노조는 일반적으로 파업이란 이미지가 연상되는 이른바 `강성 노조`가 아닙니다. 지난 80년 동안 노사분규를 일으킨 적이 한번도 없었고 재작년에 경기도 산업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5월에 법원의 진로 법정관리 결정에 반발해 진로 노조원들은 참이슬 소주 생산라인을 중단시켰다가 `참이슬 품귀` 현상을 막기 위해 이틀만에 업무 복귀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노조는 올들어 사측과 13차례에 걸친 임단협에 실패, 중앙노동위원회에 처음으로 쟁의조정 신청을 했습니다.
지난 5일 열린 중노위 본조정회의에서 노조는 기존 요구사항에서 한발 양보해 중노위의 조정안을 받아들였지만 사측에서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날 참여했던 중노위 관계자는 "노사가 마치 뒤바뀐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중노위 조정안도 사측의 요구사항과 부합되는 것이 많았고 통상 중노위의 조정안을 노조쪽이 거부해 온 타 사업장의 관행과 비교하면 이례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진로가 법원의 관리를 받는 법정관리기업이기 때문입니다. 사측은 일련의 결정에 법원인가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권한이 없다고 합니다. 진로 파업이 일반 파업과 다른 두번째 이유입니다.
일반적으로 법정관리기업이 파업사태로 가는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노사가 힘을 모아 채무를 탕감, 하루 빨리 법정관리에서 탈피해야 하기 때문이죠. 진로를 관리하는 서울지방법원 파산 3부도 이런 입장입니다. 법정관리중에 노조의 파업은 얼토당토하지 않다는 것이죠. 이런 정서때문인지 중노위 중재안조차 가볍게 무시할 정도로 법원은 `법논리`에 충실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장진호 진로 전 회장의 무리한 사업확장으로 부도가 난 97년 이후 노조원의 희생이 만만찮았다는 게 노조의 입장입니다. 지난 97년부터 99년까지 3년 동안 임금을 동결하고 복리후생 예산은 50%를 삭감했습니다. 지난해엔 법정관리에 들어가 임금이 동결되기도 했습니다. 그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진로는 소주 시장점유율이 30%대에서 54%로 급성장하고 영업이익도 매년 1000억원이상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사를 살리는 것도 노조원들의 사기가 살아난 후에 가능하다는 얘기를 할만 하죠.
결국 지난 16일 준법투쟁으로 파업에 들어간 노조는 19일 저녁근무부터 부분파업에 들어갔습니다. 18일에는 노사가 이천공장에 모여 마라톤 협상을 벌여 합의에 거의 도달했지만 다음날 오전 법원을 다녀온 사측 대표가 입장을 바꿔 결국 결렬됐다고 노조원들은 가슴을 치고 있습니다.
진로 본사에 가보면 1층 복도에 참이슬 박스가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박스에 보면 직원들 이름이 하나씩 붙어있답니다. 97년 화의결정 이후 노조원들의 임금을 많이 못 올려주는 대신 참이슬을 제공하는 것이죠.
저도 소주대란이 현실화할까봐 참 걱정이 큽니다. 그렇지만 이번 진로 파업사태를 지켜보면서 소주를 못 마실 수 있겠다는 걱정보다는 엉뚱하게도 노조원들의 집에 소주가 넘쳐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제 법원과 사측은 그동안의 미온적인 태도를 버리고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무엇보다 칼자루를 쥔 법원이 보다 많은 고려를 해야할 때입니다. 법원이 `법대로`만 외치기엔 경제현장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너무 많은 변수에 노출돼있기 때문입니다.
마침 오늘 금요일이군요. 일과 마친 후 선술집에서 소주 한잔 하면서 이번 사태가 잘 해결되길 바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