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마리 굶겨 죽인 학대범에게 개 버린 번식업자들[헬프! 애니멀]

韓 반려동물 생산업, 규제 없는 ‘허가제’
전국 동물생산 허가업체만 2137개소
농식품부, 현장점검 나서기로 했지만 현행법 한계 뚜렷
英 10년 간 운동 끝에 펫숍 거래 금지하는 루시법 통과
독일·캐나다·스웨덴 등도 펫숍 거래 금지
  • 등록 2023-03-08 오후 1:46:07

    수정 2023-03-08 오후 1:55:05

[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의 한 주택에서 1000마리 이상의 개가 굶어 죽는 ‘역대 최악의 동물 학대’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내서도 어린 동물을 대량 생산해 판매하지 못하게 하자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동물권 단체를 중심으로 어리고 품종 있는 동물만을 원하는 인간의 그릇된 욕심을 통제하지 않는 한 번식장의 잔인한 현실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펫숍 동물 매매를 금지하는 등의 일명 ‘루시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기 양평군에서 1000여마리에 달하는 개를 굶겨 죽인 남성 자택 마당에 쌓여 있는 개 사체 (사진=동물권단체 케어)
허가제가 야기한 무분별한 생산, 예견된 참극

8일 동물권 단체 등에 따르면 지난 5일 경기 양평군의 한 주택에서 1000여마리의 개가 집단으로 굶어 죽은 채 발견됐다. 방 곳곳에는 사체와 두개골 뼈가 나뒹굴었다. 어떤 사체들은 썩어 문드러져 바닥에 들러붙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카펫처럼 보였다. ‘역대 최악의 동물 학대’라고 명명되는 이 사건에서 가장 기이한 점은 사체로 발견된 개 대부분이 ‘품종견’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국내 반려동물생산업계가 생산 능력이 떨어진 모견(어미 개)의 사후 관리를 외주화함으로써 값싸게 처리해 왔음을 뜻한다. 즉,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60대 남성 A씨는 반려동물 생산업자들이 쓸모없다고 판단한 개들을 처리하는 하청업자인 것이다.

국내서 반려동물을 번식시키고자 하는 자는 농림축산식품부령에 따라 해당 지자체에 구비 서류를 내고 영업을 허가받아야 한다. 지난 1월 발표된 ‘동물보호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에 따르면, 오는 4월 27일부터 동물생산업·수입업·판매업자는 매월 취급한 등록 대상 동물의 거래 내역(동물 종류와 마릿수 등)을 다음달 10일까지 관할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만일 영업 허가·등록 취소 처분을 받았음에도 영업을 지속할 경우 사전 통보 등을 거쳐 영업장이 폐쇄될 수 있다.

이달 기준 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등록된 동물생산업 허가 업체는 2137곳이다. 이들은 반려동물을 생산하고 영업할 자격을 허가받았다. 그렇기에 반려동물을 얼마나 생산하고 취급하는지와 같은 동물 복지의 핵심 요소를 규제받지 않는다. 이는 반려동물이 동물보호법으로 보호받는 대상인 동시에 민법상 ‘물건’에 준하기 때문이다. 물건(개·고양이) 생산에 제약을 가하는 것이 재산권 침해로 여겨질 소지가 있어서다.

농식품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달부터 지자체와 함께 동물생산업의 모견 관리(개체관리카드)와 번식 능력이 없는 동물의 처리 실태 등을 집중적으로 살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역시 법 한계 내에서 이뤄지는 만큼 생산업자들의 무분별한 생산 실태를 점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10년 걸친 운동 끝에 英 “펫숍 매매 금지”

허가됐다는 이유로 동물 복지는 등한시되고 있다. ‘허가’를 통해 동물이 보장받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합법 번식장 속 모견들은 수많은 임신과 출산으로 몸이 망가지고 새끼를 빼앗길 뿐이다. 이 때문에 동물보호단체에선 종모견 개별 등록 및 연간 판매 마릿수 제한 등을 골자로 한 ‘루시법’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합법 번식장에서 죽어간 한국의 루시(왼쪽)와 영국의 번식장에서 구조된 루시(오른쪽) (사진=동물권행동 카라)
영국의 동물단체 ‘펍 에이드(Pup Aid)’는 2013년 영국의 번식장에서 루시를 구조한 뒤 공장식 번식 실태를 폭로했다. 6년 간 반복된 임신·출산으로 척추가 휘고, 뇌전증과 관절염을 앓다 사망한 루시의 사연은 ‘루시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영국에선 6개월령 미만의 강아지와 고양이를 펫숍에서 구입할 수 없다. 사실상 어린 동물을 대량으로 생산해 판매하는 일이 금지된 것이다. 이 밖에 미국 뉴욕주·캘리포니아주·메릴랜드주·일리노이주와 독일, 오스트리아, 영국, 스웨덴, 네덜란드, 캐나다 등에서 펫숍 동물 매매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영향을 받아 국내서도 한국판 루시법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주된 내용으로는 △펫숍·경매장의 동물 매매 금지 △반려동물 인터넷 거래 및 매매 금지 △자격 있는 사육자에 의한 번식과 모견(묘)과 자견(묘)의 상호작용 및 사육환경 확인 후 영업장에서의 직접 분양만 허용 △종모견 개별 등록 및 연간 판매 마릿수 제한 등이 요구되고 있다.

“1500여 구 넘는 사체 있을 수도”…국내도 루시법 캠페인 진행 중

국내서 루시법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동물권행동 카라는 논평을 통해 “불법을 저지르고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한 A씨와 이를 교사한 번식업자는 현행법에 의거 엄중히 처벌받아 마땅하다”면서도 “처참한 죽음이 A씨와 번식업자들만이 빚어낸 비극이냐. 애초에 대규모 동물 생산과 펫숍에서의 제3자 판매가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라는 “펫숍에서의 제3자 판매 행위가 허용되고, 번식장 종사자 수에 따라 수백 마리까지 번식장에서 사육하도록 ‘생산업이 허가’되는 한 음지서 신음하는 동물들은 또 발생할 것”이라며 “루시법은 전혀 급진적 내용이 아니다. 여러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2022년 동물권 단체가 구조활동을 벌인 국내 합법 번식장의 모습. 합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환경이다 (사진=동물권행동 카라)
이번 사건을 첫 공론화한 동물권단체 케어도 “첫날 사체를 400여 구로 추정했으나 결정적인 증인 2명을 만나 대화해 보니 1500여 구가 넘는 사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수사팀도 두개골을 찾아낸 것만 1200구는 무조건 넘는다고 말했다”며 사태의 심각성을 전했다.

동물자유연대도 “어리고 품종 있는 동물만을 원하는 그릇된 욕심과 동물을 사고파는 물건처럼 취급하는 인식이 계속되는 한 번식장의 잔인한 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반려동물 입양 문화 확산 등을 당부했다.

농식품부 역시 이번 사건의 엄중함을 통감하며 “‘고의로 사료 또는 물을 주지 않아 동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동물보호법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며 “동물 생산업자(번식업자)가 이를 교사한 경우에는 형법상 교사범으로 같이 처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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