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편집부] 한반도의 등뼈로 일컬어지는 태백산맥의 천 미터가 넘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곳, 앞산과 뒷산을 이어 빨랫줄을 걸었다는 그곳, 한없이 푸르고 발밑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어지럼증이 이는 그곳, 그곳이 바로 강원도 정선이다.
| ▲ (좌)정선으로 넘어가는 비행기재, (우)비행기재를 넘어 들어가는 정선 땅 - 여행작가 이동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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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으로 들어가려면 험준한 고개를 넘어야 한다. 그나마 지세가 수월한 서쪽 성마령(星摩嶺) 쪽 비행기재는 긴 세월 동안 정선 사람들이 오갔던 고개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듯 공중에 둥둥 뜬 것처럼 아슬아슬 어질어질하여 비행기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재를 넘으면 ‘아리랑의 고장 정선입니다.’라는 이정표가 반긴다. 더불어 구슬픈 정선아리랑 한가락과 아우라지에 얽힌 청춘남녀의 사랑, 그들의 삶이 담긴 곤드레 나물밥과 올챙이 국수가 서리서리 펼쳐진다. 골 깊은 정선 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 아우라지 강변의 전경 - 여행작가 이동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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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발길 닿는 곳은 아우라지다. 뱃전에 부딪히는 물살처럼 끝없이 구수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아우라지 뱃사공이 전해주는 사랑 이야기가 여기 있다. 옛날 옛날 여량리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 그리고 아우라지 강 건너 유천리에는 믿음직한 총각이 살았다. 아우라지는 물살이 빠르고 힘차 남성성을 지닌 송천과 물살이 느리고 젖빛이라 여성성을 띤 골지천이 어우러지는 곳으로 폭은 얼마 안 되지만 나룻배를 타야 건널 수 있었다.
| ▲ (좌)아우라지 강가를 찾은 가족 여행객 , (우)아우라지를 건너주는 뱃사공 - 여행작가 이동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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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몰래몰래 사랑을 키워갔는데 어느 날 싸리골로 동박 꽃 구경을 가기로 약속했다. 헌데 갑작스러운 홍수로 아우라지에 배가 뜨지 못하게 되니 두 연인은 애타는 마음으로 발만 동동 굴렀다 한다. 그때 나루터엔 소리 잘하고 장구도 잘 치는 지장구 아저씨가 있었으니 두 사람의 안타까운 마음을 노랫가락에 담아 주었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쌓이지 / 잠시 잠깐 님 그리워 나는 못살겠네.” 애닮은 둘의 이야기는 입으로 입으로 전해져 정선 아리랑의 ‘애정편’이 되었다.
| ▲ 아우라지 역 카페 `어름치 유혹` - 여행작가 이동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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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장터에서 만난 아주머니는 더불어 올챙이 국수 이야기도 곁들여준다. 해가 뜨자마자 넘어가 버린다는 정선은 강원도 산골 중에서도 두메산골로 들판이라 부를 만한 평지가 없이 그저 손바닥만 한 땅뙈기가 있을 뿐이다. 하여 눈만 뜨면 산비탈에 매달려 옥수수 심고 감자 키워 먹을 것을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일이었으니 여량리 처녀 또한 마찬가지, 식구는 많고 먹을 것은 항상 부족했다. 매일매일 올챙이 국수를 해먹었으니 올챙이 국수 만드는 것은 바쁜 부모와 많은 동생을 둔 여량리 처녀의 몫이었다.
| ▲ (좌)올챙이 국수와 메밀전병, (우)곱게 간 옥수수를 체에 걸러 올챙이국수를 만든다 - 여행작가 이동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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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말린 옥수수를 물에 불렸다. 불린 옥수수를 맷돌에 넣고 물을 한 수저씩 넣어 주며 곱게 간 다음 체에 걸러 건더기를 걸러낸 후 가마솥에 붓고 눌어붙지 않도록 저어주면서 뭉근히 끓였다. 그러면 묵을 쑤듯 걸쭉해지는데 박을 쪼개 만든 바가지에 구멍을 숭숭 뚫고 이것을 붓고 나서 숟가락으로 비비면 구멍을 지나 걸쭉한 덩어리가 뚝뚝 떨어진다. 힘이 많이 들어간 첫 부분은 굵고 통통하지만, 끝 부분은 가늘고 힘없는 모양으로 떨어지니 마치 올챙이 형상이다.
양념간장을 얹어 한 그릇 후루룩 먹으면 씹을 것도 없이 목구멍으로 술술 넘어가며 올챙이마냥 금세 배가 불뚝해진다. 옥수수 두어 통이면 온 식구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고마운 구황식품이었다. 하지만, 맷돌질을 하고 가마솥에 끓이고 바가지에 비비고 하는 일련의 작업들은 팔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힘든 노동이니 올챙이 국수 한 그릇에 담긴 삶의 무게는 올챙이 국수 맛만큼 밍밍하고 매끄럽진 않다. 척박하고 고단한 맛이며 먹을 땐 배부르지만 돌아서면 배가 고픈 슬픈 음식이다.
| ▲ 곤드레 나물밥 한 그릇 - 여행작가 이동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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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 총각은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무를 하고 약초와 나물을 뜯었다. 곰취, 참나물, 산마늘, 어수리를 비롯해 두릅을 따고 엄나무 순을 뜯었다. 이 중 곤드레 나물은 고산에서 자라는 야생나물인데 봄이 무르익는 오월쯤 곤드레 나물을 따다가 쌈 싸먹고 무쳐 먹고 말려서 저장해 두었다가 겨울이면 밥을 해 먹었다. 물에 불린 곤드레 나물을 얹어 지은 밥에 양념간장을 얹어 쓱쓱 비벼먹으면 반찬이 없어도 한 그릇 뚝딱 이다. 지금이야 단백질, 칼슘, 비타민 A 등 영양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당뇨와 고혈압, 혈액순환을 개선해 성인병에 좋은 웰빙식품이라며 인기지만 그때는 주린 배를 늘리기 위해 밥에 넣었던 눈물겨운 나물일 뿐이었다. 이리 저러 얽긴 모습 때문에 곤드레라 이름을 얻었지만, 지금은 취할 정도로 맛이 좋다 하여 곤드레만드레의 앞부분을 언급하니 격세지감이 따로 없다.
| ▲ ①아우라지 강가에 쌓은 사랑의 돌탑, ②여량리 처녀 동상이 서 있는 아우라지, ③뗏군으로 떠나는 유천리 총각을 배웅하는 여량리 처녀의 그림, ④아우라지 강가의 여량리 처녀 동상 - 여행작가 이동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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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박한 땅에서 살던 이들의 사랑 또한 척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기 어려울 뿐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꽃같이 예쁜 여량리 처녀를 색시로 맞고 싶었던 유천리 총각은 뗏군이 되기로 결심한다.
둘이 만나 시간을 보내던 아우라지는 강을 건너는 나루이기도 했지만 송천과 골지천이 만나 조양강(朝陽江)이 되니 ‘아침 햇빛’이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이 강은 한민족의 젖줄인 한강의 대표 원류 중 하나이자 뗏목의 출발지점이기도 했다. 골 깊은 정선 땅에 질 좋은 나무가 많으니 대원군 또한 경복궁 중건 시 필요한 목재를 육로보다 빠른 남한강 물길을 이용해 조달했다. 소나무를 새끼줄로 이어 뗏목을 만들고 여기에 뗏군이라 불리는 뗏사공이 타고 1천 리 남한강 물길을 내려가면 한양의 광나루나 마포나루에 도착했다.
하지만, 물살이 험하기로 유명한 동강의 동서 여울이나 황새 여울 등에서 뗏목이 뒤집혀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았으니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양에 도착하면 뗏목을 팔아 한밑천 챙길 수 있었으니 이 떼돈을 벌기위해 각지에서 뗏군들이 모여들었다. 뗏군이 머물던 주막은 밤만 되면 아라리가 울려 퍼졌고 적막감을 달래고 무사한 운행을 속으로 빌며 뗏군들은 또 다른 아라리를 불러댔다. 유천리 총각도 그렇게 떠났다. 하지만, 하루 이틀.. 열흘 보름.. 해가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았으니 아우라지 강가에는 유천리 총각을 기다리는 여량리 처녀의 동상이 서 있고 바로 옆 여송정(餘松亭)에는 그들의 애타는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햇살 가득한 여송정 난간에 걸터앉으면 바람결에 노랫가락이 들려온다. "눈이 올려나 비가 올려나 억수장마 질려나 /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 든다 /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 오백 가지가 넘는 정선아리랑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구성진 노랫가락은 정선 어느 곳엘 가도 귓가에 맴돈다.
| ▲ 반점재에서 내려다본 물줄기 - 여행작가 이동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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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방치에서 내려다본 굽은 물길 - 여행작가 이동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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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지로 가는 반점재에 올라 굽어보면 유천리 총각이 뗏목을 타고 굽이를 돌았을 문곡과 송오리 사이의 굽은 월천 물길이 보이고 병방치에 오르면 그 물줄기는 더욱 심하게 구부러져 아라리 가락처럼 휘어져 있다. 그렇게 정선 아리랑은 유천리 총각이 힘겹게 따오던 곤드레 나물처럼 칭칭 사연이 엉켜 있으며, 여량리 처녀가 만들던 올챙이 국수처럼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비행기재 고갯길처럼 어질어질 애잔한 가락이다.
| ▲ (좌)정선아리랑이 울려퍼지는 정선오일장터, (우上)레일바이크가 출발하는 구절리역, (우下)흥겨운 정선 오일장터 - 여행작가 이동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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