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독자 엔진’ 꿈 현실로…美 항공엔진 심장부 파고든 한화에어로

미국법인 HAU, 코네티컷주 4개 사업장 풀가동
2019년 ‘이닥’ 인수로 고부가 회전체 기술 확보
5년 만에 ‘항공 앨리’ 생태계 핵심 일원 급부상
원자재 조달부터 개발까지…“엔진 국산화 기여”
  • 등록 2024-07-01 오전 11:00:00

    수정 2024-07-01 오후 7:00:50

[체셔(미국 코네티컷주)=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북동부 코네티컷주. 항공엔진 부품을 생산하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HAU) 뉴잉턴 사업장은 금속을 가공하는 예민한 기계음을 내며 24시간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이곳에선 항공엔진 회전체와 고정체 중 고부가·고난도 제품인 회전체를 주력으로 생산한다.

회전체는 오작동 시 비행 중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기술 난도가 높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012450)가 항공엔진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78년이지만 회전체 생산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을 정도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19년 미국 항공엔진 부품 업체 이닥(EDAC) 지분 100%를 인수하면서 회전체 기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는 국내 사업장인 경남 창원에서도 해당 부품을 생산 중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HAU) 미국 코네티컷주 체셔 사업장 전경.(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곳의 주요 생산 품목인 일체식 로터 블레이드(IBR)와 디스크는 항공기 엔진 팬에서 빨아들인 공기를 압축시키는 핵심 부품이다. 이날 표면이 거친 원자재 상태의 쇳덩어리가 오차범위 0.001mm 이하의 정밀한 공정을 거쳐 최첨단 기술 집약체인 항공엔진 부품으로 재탄생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항공엔진 부품 생산은 ‘원재료 검사-기계 가공-특수공정-최종 검사’ 과정을 거치는데 정밀한 작업이 필요한 만큼 IBR을 1개 만드는 데만 약 50시간이 걸린다. 김종훈 HAU 글로벌엔지니어링 팀장은 “제품을 1000배 확대했을 때 표면이 매끄럽게 나와야 잘 만든 제품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품질 기준이 까다롭다”고 했다. 완성한 부품은 세계 3대 항공엔진 업체로 불리는 프랫앤드휘트니(P&W)와 GE, 롤스로이스에 납품한다. 이 중 절반 이상이 P&W 물량이다.

생산설비 15대를 보유한 7648㎡(약 2310평) 규모의 이 공장 연간 생산능력(CAPA)은 IBR(1400개)과 디스크(1000개)를 더해 총 2400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향후 민수에 600만달러, 군수에 3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해 이를 각각 2200개, 10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코네티컷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HAU) 체셔 사업장에서 직원이 항공엔진 부품 중 하나인 케이스를 기계로 가공하고 있다. 케이스는 엔진 가동 시 회전하는 다른 부품들을 감싸는 ‘뼈대’ 역할을 한다.(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HAU는 뉴잉턴을 포함해 체셔, 글래스톤베리, 이스트윈저 등 총 4개 사업장·5개 팀을 운영 중이다. 전체 직원 수는 550명으로 규모에 비하면 많지 않다. 뉴잉턴에서 차로 30여분 달려 2만6454㎡(약 80000평) 규모의 가장 큰 사업장인 체셔로 이동했다. 해당 사업장에서는 엔진 가동 시 회전하는 다른 부품들을 감싸 ‘뼈대’ 역할을 해주는 케이스 등 정밀 고정체 생산이 한창이었다.

이 사업장의 핵심 설비는 무인 대차 시스템을 적용한 ‘FMS(플랙시블 매뉴팩처링 시스템)’다. 이 라인에 원자재를 투입하면 사람이 직접 작업물을 옮기지 않고도 자동으로 밀링·터닝 공정으로 제품이 운반된다. 예전엔 작업자 한 명이 장비 한 대에서만 작업할 수 있었다면 이제 한 사람이 장비 4대를 동시에 볼 수 있어 작업 효율을 크게 높였다.

해당 라인에서는 중형 화물차 타이어 크기만 한 둥근 쇳덩어리가 연신 뿜어져 나오는 액체(절삭유)에 잠긴 채 천천히 회전하며 가공되고 있었다. 드릴은 반복되는 밀링-터닝 작업을 통해 원재료에 일정한 간격의 구멍을 촘촘히 뚫어 나갔다. 액체는 쇠끼리 마찰하며 발생하는 열을 식혀주는 용도다. 가공이 끝난 거대한 엔진 케이스는 그 크기만으로도 완제품인 항공엔진 규모를 가늠케 했다.

지난달 25일(현지시간) 미국 코네티컷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HAU) 체셔 사업장에서 직원이 항공엔진 부품 중 하나인 케이스를 기계로 가공하고 있다. 케이스는 엔진 가동 시 회전하는 다른 부품들을 감싸는 ‘뼈대’ 역할을 한다.(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코네티컷주는 P&W 본사가 있는 미국 항공엔진 중심지다. GE 본사가 있는 매사추세츠주와도 인접해 있다. 글로벌 항공엔진 심장부에 현지 생산 거점을 세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현지 진출 5년 만에 생태계 일원으로 완전히 녹아든 모습이었다.

이날 HAU 파트너사인 버케(Burke)에어로스페이스 사업장에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 회사는 HAU 하청업체로 첨단 3차원(3D) 프린팅 기술을 도입해 높은 생산성을 자랑한다. 코네티컷주는 91번 국도를 중심으로 수백 개의 항공 엔진 제조 업체들이 밀집해 있어 ‘항공 앨리’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HAU만 해도 이곳에서 100여개에 달하는 파트너사를 보유 중이다. 현지 업체들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기술력을 끌어올려 독자 항공엔진 개발에 성공하는 것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현지 진출 목적이자 중장기 목표다.

현재 독자 항공엔진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우크라이나·중국 등 6개국뿐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코네티컷주는 현지 업체가 몰려 있어 영업하기 수월하고 원자재 조달부터 연구개발(R&D)까지 가능한 최적의 입지”라며 “HAU는 3대 엔진 제조사와 긴밀히 협력 중으로 첨단엔진 개발 기간을 단축해 우리나라 독자 엔진 개발에 기여할 예정”이라고 했다.

미국 코네티컷주 ‘항공 앨리’ 주요 기업.(자료=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 코네티컷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HAU) 뉴잉턴 사업장 전경.(사진=한화에어로스페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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