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미술품이 하나 있다고 가정하자. 여러 명의 애호가가 서로 사겠다고 경쟁을 벌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다른 변수가 없다면 마지막 사람이 남을 때까지 미술품 가격이 올라갈 게 뻔하다.
시장경제 체제에선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전셋값 급등문제 역시 같은 방식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전셋집을 구하려는 사람은 많은데, 전세 물건이 많이 달리는 상황이다. 즉 수요는 많은 데 공급이 부족해 가격이 오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전세 물량이 왜 갑자기 동맥경화에 빠졌는지에 대해선 정부와 시장의 시각이 엇갈린다. 전셋값 급등현상에 대한 진단이 다른 만큼 처방도 다를 수밖에 없다.
국토해양부는 24일 전월세 동향 및 대책 자료에서 최근 전세가 상승은 작년에 서울 강남의 대규모 입주 여파로 급락했던 전세가격이 현실화되는 측면이 크다고 주장했다. 최근의 전세대란은 이 같은 일시적인 요인에 따른 것으로 주택 수급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전세시장이 안정을 되찾을 것이란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내놓은 전셋값 안정대책은 ▲영세민 근로자 전세자금 대출 확대 ▲오피스텔 85㎡ 이하 바닥난방 허용 ▲도시형 생활주택 기금 지원 ▲중·장기적인 임대주택 확대 등에 그쳤다.
반면 시장 전문가들은 전셋값 급등현상은 상당히 '구조적인' 문제이며, 정부 주택정책의 부작용인 만큼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분양가 상한제 등 정부 규제로 주택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던 게 전세난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이다.
결국 시장 전문가들은 전세난은 수요·공급이란 시장원리로 풀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실제 2000년 이후 서울 입주 물량과 전셋값 동향을 살펴보면 이같은 전문가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12.89%가 오른 서울 전셋값은 2001년 22.03%가 올라 집 없는 서민들을 몸서리치게 했다. 또 2002년에는 14.11%가 올라 전세대란의 여진이 이어졌다.
당시 서울지역 입주물량은 IMF 외환위기 당시 착공 물량이 대폭 줄어들면서 2000년 7만6218가구를 기록한 뒤 2001년 5만8208가구, 2002년 5만1795가구로 급격히 줄었다.
2002년까지 이어지던 전셋값 급등은 2003년 서울 입주물량이 7만8078가구로 늘어나면서 -1.68%를 기록, 안정세를 회복했다. 또 2004년에는 -4.21%를 나타내면서 더 이상의 전세대란은 사라지는 듯했다. 당시 서울 지역 입주 물량은 6만2000가구에 육박했다.
하지만 주택공급 위축을 불러온 8·31 대책이 발표된 뒤 2006년 입주물량이 4만7472가구로 급격히 줄어들면서 그 해 전세가격은 11.60%로 급등했고, 2008년 서울지역 입주물량이 5만4000가구(5만4278가구)선을 회복하면서 전세가격은 -3.09%로 안정세를 보였다.
하지만 오피스텔은 바닥난방이 금지되면서 몇 년 전부터 공급이 크게 줄었고, 다가구(원룸)도 공급이 예전만 못했다. 최근의 전세대란은 이 같은 주택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낳은 결과란 게 전문가들의 이야기다.
혹자는 서울 및 수도권의 주택보급률 100%가 임박한 상황에서 이 같은 주택공급이 자칫 공급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국토해양부가 내놓은 새로운 주택보급률에 따르면 작년 말 전국 주택보급률은 100.7% 수준. 서울은 93.6%, 경기도는 96.0%로 조사됐다.
이 수치만 보면 서울이나 경기도 모두 외형적으로는 1가구1주택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일부의 주장처럼 공급과잉을 우려할 수준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집에 살고 있는 가구를 따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가구·주택부문)에 따르면 자가 보유 가구는 55.6%에 불과하다. 4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점을 감안해도 자가 보유는 60%가 채 안된다는 게 주택업계의 설명이다.
즉 전 국민의 40%는 집주인이 전셋값을 인상할 경우 좀 더 싼 집으로 이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주택업계 한 전문가는 "열 가구 중 네 가구 이상이 전·월세로 살고 있다는 점은 전세대란이 일시적 현상이 아닌 홍수처럼 매년 반복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며 "실수요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아파트의 공급을 크게 확대해 가격 안정을 꾀하는 길만이 전세대란을 해결할 수 있는 근본대책"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정부가 추진 중인 양질의 보금자리주택이 하루빨리 공급돼 집값과 전셋값 안정의 기틀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