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업무 제한은 있지만 자동화기기가 정상 작동돼 소매고객들이 크게 난감해할 일은 발생하지 않았으며 기업 고객도 큰 불편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리 알려진 파업으로 인해 당장 `대란`은 없었다. 그러나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진정 문제다.
한국씨티은행의 영업력이 차츰 떨어지는 등 기업가치 훼손이 심각할 정도가 되고 있지만 정작 눈에 보이는 위기가 안보이다 보니,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노력 또한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예고된 파업에 미리 대비..여수신 변동도 미미
전국의 점포 중 3분의 1가량이 문을 닫았고 파업 참가율이 90% 이상으로 꽤 높은데도 전반적으로는 이상할 정도로 큰 혼잡이 없다.
이처럼 조용한 것은 단기 파업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파업이 길어지면 당좌 결제나 어음 교환등에 문제가 생기고, 중소기업 등의 만기 대출이 연장되지 않으면서 중소기업 등의 자금 상황에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한미 노조 관계자도 “대출 만기 연장 등 중요한 업무는 미리 처리하고 파업에 참가하고 있으며, 시금고 등 주요 지점 인력은 파업에 참가하지 않도록 제외시켰다”고 말했다. 또 “은행 압박이 목적이지 가능한 고객에게는 불편을 주지 않으려는 전략"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중요한 전산시스템도 정상 가동되고 있다. 과거 은행권 파업에서는 전산시스템 중단과 그로 인한 대규모 고객 인출 사태 등으로 상황이 급박하게 진행되곤 했었다.
그러나 이제 비정규직이 많고 은행도 충분히 대비가 된 만큼 은행 파업에서 전산을 멈추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졌다게 금융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년 전 한미노조가 최장기 18일 파업을 벌였을 때도 전산시스템은 안정적으로 운영됐다. 한미 노조 관계자는 "전산을 멈추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며, 또 그럴 생각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직원 "`이러다 은행 망하겠다` 소리 저절로 나와요"
그러나 당장의 혼란이 없다고 타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통합 과정에서부터 장기 노사 갈등을 겪으며 한국씨티은행의 영업력은 눈에 띄게 저하된 상태다.
또 이전달인 10월에는 하루 평균 147억여원이던 투자상품 신규금액은 11월 8일 이후 23일까지 하루평균 8억여원으로 뚝 떨어졌다.
본격적인 태업에 돌입하기 전, 노조가 올 상반기부터 계열사지원, 변동금리 부동산담보대출 문제 폭로 등 `여론투쟁`은 결과적으로 한국씨티은행의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렸다.
태업이 시작된 10월 4일 전에도 통합 몸살을 앓으면서 한국씨티은행의 올 9월까지의 성적표도 좋지 않았다.
1분기 당기순익 1344억원, 2분기 1236억원, 3분기 1145억원등으로 분기마다 100여억원씩 당기순익이 줄어들었다. 올들어 9월까지 총자산대비 이익률(ROA)가 0.73%로 자산 10조원이 넘는 11개 은행 중에서 10번째였다. 노조 태업 결과가 반영되는 4분기 실적은 이보다 더 악화될 전망이다.
현재 한국씨티은행의 갈등 양상에서 단기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는 이들은 별로 없다. 1년 전 파업 때와 견주면 노측의 전략과 전술이 크게 달라진 것 외엔 근본적으로는 양쪽 모두 양보없이 굳건하게 버티고 있는 모양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조합원도 아니고 경영진도 아닌 중간관리자급의 한 직원은 "요즘 `이러다가 은행 망하겠다`는 얘기가 저절로 나온다`며 사태를 걱정했다.
결국 노사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 하루속히 타협책을 찾지 않는 한 이런 걱정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적지않다. 스멀스멀 위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자존심을 내세운 노사 모두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