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들인 현금에서 고작 63%만 투자

세계적 성장기회 축소 + 보수적 경영
과도한 투자요구나 저금리 효과 제한적 가능성
  • 등록 2006-02-06 오후 12:13:14

    수정 2006-02-06 오후 2:30:39

[이데일리 강종구기자] 현금이 넘쳐나는 기업들이 과거처럼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이 분석한 결과 기업의 성장기회 자체가 축소되고 `보수적 경영`이 유행하면서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인 것으로 드러났다.

90년대 이후 성장엔진인 정보통신(IT)산업은 이미 성숙기에 접어들었고 뒤를 이를 차세대 성장엔진은 아직 없는 상태라 투자를 하고 싶어도 마땅한 곳이 없다. 또 외환위기와 IT거품 붕괴 등을 거친후 기업들이 몸을 움츠리고 있는데다 주주들의 입김이 세지면서 눈앞의 실적을 더 중시하는 풍토도 확산되다 보니 미래를 위한 과감한 투자는 더 힘들어졌다.

◇ 현금흐름대 투자 비율, 외환위기 이전 200%대에서 작년 63%로 급락

6일 한은 금융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최근의 기업투자와 현금흐름간 관계분석`에 따르면 상장기업(거래소와 코스닥 기업)들은 외환위기 직전 연간 영업활동에서 벌어들인 현금흐름의 2배 이상을 투자에 썼으나 지난 2004년 현재 63.4%로 급격히 줄었다.



기업 수익성이 급속도로 개선되면서 영업현금흐름(이하 현금흐름)도 2002년 이후 몰라보게 좋아졌지만 투자는 기대만큼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태수 한은 금융경제연구원 경제제도연구실 과장은 "(현금흐름 개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투자활동으로 상장기업의 현금흐름 대비 투자비율이 외환위기 이후 하락추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95~97년에는 현금흐름 대비 투자규모가 200% 이상이었으나 99~2001년 80%대로 급락했고 2002년 이후 다시 50~60%대 수준으로 떨어졌다.

12월 결산 상장법인 1388개사(금융기관, 관리기업 제외)의 현금흐름은 1999~2001년 연평균 48조원에서 2002~04년 연평균 65조원으로 한단계 올라섰다.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 연평균 9조원에서 35조원으로 거의 4배 증가했다. 수출이 호조를 보였고, 저금리기조로 이자비용을 줄었으며 구조조정으로 부채규모도 감소했기 때문이다.

현금흐름은 당기순이익에서 자산처분이익이나 재고자산 증가처럼 현금이 유입되지 않는 이익이나 순자산증가분을 빼고, 감가상각비나 매출채권감소처럼 현금이 유출되지 않는 비용이나 순자산감소를 더한 것. 말하자면 현금흐름으로 본 당기순이익이라고 할 수 있다.

현금흐름 개선이 모든 기업에 골고루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대부분 수출 대기업에 집중됐다.

2002~04년중 현금증가액에서 5대기업(삼성전자 하이닉스반도체 포스코 LG필립스LCD LG전자)이 차지하는 비중이 70.3%, 10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88.9%에 달한다.

투자도 2003년 이후 늘기는 했지만 현금흐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2004년 현재 상장기업 투자규모는 47조9000억원으로 2000년 46조7000억원이나 지난 97년 45조3000억원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강 과장은 "IT호황으로 99~2000년에 크게 증가했다가 2001~2002년에는 IT거품 붕괴로 급속히 위축된 투자규모가 2003년 이후 다시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 투자부진은 세계적 현상..성장기회 자체가 축소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미국 등 주요 선진국 기업의 투자규모 역시 현금흐름을 크게 밑돌고 있다는 것.

지난해말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의 기업은 현금흐름의 50% 내외만을 투자에 쏟고 있다. 독일이나 캐나다 등은 그 비율이 75%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64%는 주요 선진국의 평균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장기적인 추세를 보면 주요 선진국의 현금흐름 대비 투자비율도 90년대말~2000년대초 높아졌다가 이후에 비교적 크게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한 모습이다. 현금흐름이 2002년 이후 크게 개선된 것이나 투자가 그에 뒤따르지 못한 것이나 우리나라와 매한가지다.

강 과장은 "국내 기업의 투자지출이 기대에 못미치고 있는데는 구갠 대기업의 경쟁상대인 주요 선진국 기업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수익은 증가하는 반면 성장기회는 축소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기업의 투자가 외환위기 이후 현금흐름을 지속적으로 하회하고 있지만 미국 등 주요 선진국 기업과 비교해 크게 낮은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할된다"며 "그러나 우리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상당기간 선진국 이상의 성장을 해야 하므로 활발한 기업투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벌어들인 안에서만 투자.."제촉해 봐야 효과 없을 수도"

한은 금융경제연구원이 내놓은 투자부진 이유는 크게 다섯가지 ▲90년대말 IT거품 당시의 과잉투자 조정 ▲차세대 성장산업 부재 ▲ 지정학적 위험 증대 등 불확실성 확대로 인한 기업경영 보수화 ▲대규모 자금이 소요되는 투자수요 축소 ▲주주중시 경영으로 인한 단기실적 위주의 경영경향 등이다.

실증분석을 해 보니 실제로 기업의 투자행태가 외환위기와 IT거품 붕괴를 거치면서 현금흐름에 크게 의존하는 보수적인 형태로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가 심했다.

기업이 투자재원을 조달할 때 외부자금보다 현금흐름을 선호하는 경향이 99~2001년과 2002~2004년사이에 3배이상 높아졌다.  특히 대기업의 현금흐름 의존도는 무려 5배 높아졌으나 중소기업은 의미있는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강 과장은 "앞으로도 기업의 투자는 현금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과도한 투자요구나 저금리 등이 투자에 미치는 영향은 과거에 비해 제한적일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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