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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지난 26~2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북한 인권을 주제로 한 영화 상영과 강연 행사에 참석해 북한에서의 삶과 탈북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들을 전했다.
그는 평양에서 태어나 비교적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며 평양체육대에서 탁구선수로도 활동했다. 그럼에도 그는 북한 사회가 살만한 사회가 아니라고 꼬집었다.
A씨에 따르면 최근 북한 내부에서는 경제난 때문에 당국의 배급이 끊겼다. 이에 ‘장마당’이라고 불리는 종합시장에서 생활필수품을 구입한다고 했다. 그는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사회”라며 “대학에서도 교수에게 뇌물을 주면 좋은 성적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또 남한 문화에 대한 북한 당국의 과도한 규제는 북한 청년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은 암암리에 퍼진 한국 드라마를 단속하기 위해 길거리에서도 불시 검문을 했다고. A씨는 “길을 걸을 때마다 경찰이 불러 세워 휴대전화로 ‘오빠’ 같은 남한식 단어를 사용하진 않았는지 조사했다”며 “한국 드라마를 본 청년들에 대한 공개 재판도 있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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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북한 당국의 이러한 삼엄한 태세에도 한국 드라마를 포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고된 삶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 젊은 세대의 꿈은 “자신의 행복”이기에 “한국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 처형을 시키는 김정은에게 충성심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국에 맹종하지 않는 것이 우리 세대의 특징이다. 북한 사회의 변화는 시작됐다”고 말했다.
A씨는 탈북 당시를 떠올리기도 했다.
그는 “(탈출하면서) 두려움보다 기쁨이 더 컸다”며 “배 타고 떠난 지 44시간 만에 동해안 속초 앞바다에서 만난 한국 어민이 ‘탈북했냐’고 묻더니 ‘잘 왔다’고 해줘서 감동했다”고 밝혔다.
이어 “캄캄한 세상에서 빛이 가득한 세상으로 온 것 같아 눈부셨다”고 전하며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을 같은 민족으로 여기고 도우려 한다는 것과 남한에 가면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